
subject	봄이 오는 길목에서

1. 이른 봄 풍경
　꽁꽁 언 땅을 딛고 옷깃을 여미며 서 있는 사람들에게 봄은 유일한 희망으로 다가왔습니다.
　3월 13일 수은주는 영하 8℃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소리소문 없이 찾아오던 봄이 안스럽기도 합니다.
　봄이 오는 것을 그냥 보고 있지 못하는 북풍은 심술을 부리려 길목을 지키고 섰습니다.
　언 땅을 녹여야 할 따스한 봄볕은 동해의 백두대간을 넘어오지 못하고 대관령 산고개에서 눈을 만났습니다.
　3월 5일 눈송이가 설악산 계곡에 130cm 두께로 내려앉았습니다.
　눈은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강릉， 봉화， 영주， 안동， 청송， 영양， 울진， 포항 그리고 부산까지 종횡무진으로 심술을 부렸습니다.
　봄에 내린 눈은 길을 막았고， 구슬땀을 흘리며 힘들게 제설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고도 아이들은 좋아라고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며 눈을 뭉쳐 눈싸움을 하다가 이내 힘을 모아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어제까지의 토라진 미움과 다툼도 잊어버리고 함박웃음을 웃으며 눈 위를 함께 뒹굽니다.
　아이들에게는 길이 막히고 애써 가꾼 비닐하우스가 폭삭 내려 앉아 생계가 막막한 어른들의 눈물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눈 덮인 세상이 한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로 보일 뿐입니다.
　101년 만의 푸짐한 눈이 내린 부산의 아이들은 마냥 즐겁고， 해맑은 표정은 천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3월 12일 강원 산간 벽지에는 86cm가 넘는 눈이 내렸고， 아이들은 우수 경칩이 지났는데 왜 개구리가 잠을 깨고 같이 놀아주지 않는지 이상할 뿐입니다.
개구리 대신 놀아주려고 눈이 찾아왔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2. 봄은 어디서 오는가?
　높은 산 계곡 양지 바른 곳에 자리 잡은 옹달샘에서 시작된 실개천의 돌 사이로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잠든 나무들이 깰까봐 숨을 죽여 아주 작은 소리로 봄이 오는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깊고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난 산속의 나무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산새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에서도 봄이 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엄동설한의 혹한을 이기고 언 땅을 뚫고 나온 연한 싹들은 순박한 농민들의 땀이 배어있는 생활의 터전 위에 봄을 기다리는 이들의 염원을 한아름 안고 있습니다.
　따스한 봄기운이 배어 있는 저 연한 초록빛의 보리 싹은 우리의 희망이기도 합니다.

3. 봄을 시샘하는
　깊은 잠에 빠진 만물을 새롭게 약동시키는 따사로운 기운 앞에 선잠을 깬 듯 눈 비비며 일어나는 새싹들을 불러 모으려는 움직임을 봅니다. 나목은 외출을 준비하려는지 연초록빛 옷을 찾아 아직은 다 뜨지 않은 그 작은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립니다.
　북풍은 아쉬운 듯 가던 길을 멈추고 봄이 오는 길목을 노려봅니다.
　목련도 개나리도 색깔을 내기까지는 혹한의 남은 시샘을 이겨내야 하지만， 봄이 두 팔을 벌려 혹한을 막아주어야만 목련도 개나리도 꽃망울을 터트릴 것입니다.

4. 봄마중 나온 매화
　북풍이 매섭던 겨울 눈 속에 피어난 설중매의 인고의 한이 점점이 피어나 백설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섬진강 강줄기를 타고 봄마중 나온 매화는 제주에서 유채꽃이 화사한 모습을 드러내며 봄마중 나올 것을 아는 듯 꽃망울을 안고 봄을 향해 손짓하는 그 자태가 아름답습니다.
　거리마다 산허리마다 노오란 색으로 물들일 개나리꽃들이 기지개를 켜고 활짝 피어날 준비들을 하고 있습니다.
　목련은 한껏 목청을 뽑은 채 봄날 춤을 추듯 펄럭이는 나비의 날개짓처럼 우아하게 꽃잎을 펼쳐 봄을 찬양할 준비를 마치고 기다립니다.
　며칠을 피었다가 스러질 아름다움으로 연두빛 새싹을 돋게 할 꽃들의 잔치는 봄의 향기를 세상 가득 뿜어내며 1년을 기다린 인고의 세월을 떨쳐버리고 우리의 가슴에 따스한 빛으로 황홀한 향기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봄을 마중 나온 꽃들의 씩씩한 발걸음에 맞추어 새 봄을 넘치는 희망으로 맞을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5. 고향의 봄
한겨울 움츠렸던 몸을 펴고 쟁기에 묻어있는 먼지를 털고 얼어붙은 논밭을 갈아엎을 준비를 하고 있는 고향소식을 듣습니다. 그 가난했던 보릿고개는 이제 먼 옛날의 전설처럼 들리고 풍요로운 고향의 반가운 소식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두고 온 고향산하에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들고， 산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날 채비를 하고 있는데， 고향 떠난 길손은 산나물 캐러 가는 옛날 댕기머리 그녀의 모습을 그려 봅니다. 산업화된 도시보다는，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잘 정돈된 도로보다는 흙냄새 오솔길의 그리움이 고향의 봄향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고향의 봄은 이랑따라 돋아나온 보리의 새싹이 있습니다.
　고향의 봄은 진한 쑥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고향의 봄은 개나리， 복숭아， 살구， 진달래가 어우러진 꽃동산이 있습니다.
　고향의 봄은 알록달록 크레파스로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의 색깔이 있습니다.
　고향의 봄은 엄마의 품속처럼 아늑하고 풍요롭습니다.
　봄을 잉태한 버들강아지의 볼록한 망울이 탐스럽습니다.
　이제 고향의 봄을 맞이하러 기차를 타고 아지랑이 피어나는 우리들의 고향으로 떠나야겠습니다.

글ㆍ사진 이종기 <시조시인>

2호 (2005.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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