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ubject	겨울이 오고 있다

모든 활동이 중단되는
겨울， 땅을 파고
김장 항아리 묻고，
배추를 절여
김장을 하던 일은
연중 가장 큰
행사였다.

눈송이 앞세우고
겨울이 오고 있다
　계절은 여인들의 옷차림에서 느낄 수 있다. 길거리를 지나는 여인들의 옷이 어느새 바뀌어져 있다.
　풍성한 가을걷이가 끝났다. 나무들도 이제 제 잎새들을 벗어내 버리고 초겨울 앞에서 나목이 되어 있다. 옷깃을 여미고 몸을 웅크린 거리의 풍경도 을씨년스럽다.
　추위와 함께 김장걱정이 중압감으로 다가서던 시절， 신문들은 일제히 올해의 김장 예산 보도를 앞 다투어 발표했다.
　언제부터인가 풍속도가 달라졌다.
　맞벌이 부부가 아니라도 대부분의 집들이 김장을 하지 않는다. 자연히 판매용 김치생산 업체들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주부들로서는 김장부담이 줄어들어 한결 홀가분함을 느낄 것이다. 이런 느슨한 틈을 비집고 중국산 김치가 들어와 한국시장을 휩쓸고 있다. 급기야는 중국산 김치가 국내의 음식점은 물론이며 자연스레 가정의 식탁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중국산 김치에서 기생충알이 나왔다고 천지가 뒤집힐 듯 야단이 났다. 급기야 주부들은 국산배추를 사서 직접 담가 먹어야겠다고 또 야단이다. 너도 나도 시장의 국산배추를 사려고 찾아 나서자 이제는 배추출하량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그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게 되었다. 그리고 품귀현상이 일어났다.
　중국산 배추에 밀려 농촌에서 배추재배를 포기한 농가가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언제나 이런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중국산 김치에서 기생충알이 나왔다는 보도가 나가자， 중국은 그 다음 날 김치를 수출한 일도 없는 회사 이름을 거론하며 한국산 김치에서도 기생충알이 검출되었다는 보복성 보도를 내보냈다. 급기야 일본에 수출하고 있는 우리김치에 클레임이 걸리게 되었다.
　김치파동으로 인해 한·중 관계에 싸늘한 공기가 감돌게 되자 냉각된 한·중관계의 복원을 위하여 한류열풍을 이용하기도 했다. 대장금에서 한상궁역을 맡았던 탈렌트 양미경이 중국을 방문해 한·중우호의 길을 다시 열자는 일까지 주선하게 되었다. 문화적으로 당연히 우리 고유의 김치가 어쩌다가 이렇게 중국에서 수입을 하기에 이른 것일까?
　김치가 이 정도라면 공산품이라든가 생활용품은 사정이 더 할 것이 자명하다.
　세월 따라 생활습관도 풍습도 변하고 있다. 그러나 김치만은 오랜 세월동안 입에 길들여진 것이기에 미각의 변화는 다른 것보다 변하기가 힘들다. 갓 시집온 며느리의 색다른 음식이 황당하기까지 해 민망했다는 어느 어른의 이야기가 아주 이상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버터나 기름으로 튀긴 음식， 퓨전요리 등의 등장으로 입맛이 전혀 다른 세대 간끼리 일어나는 음식문화 갈등도 오늘날의 큰 변화 중의 하나다.
이런 와중에 우리의 전통음식인 김치가 외국인 미식가들에게 대단한 인기다. 틈새를 이용한 많은 업체들이 수출을 하고 있다. 냄새 때문에 먹기를 꺼리던 일본인들도 그네들의 '기무치'가 아닌 우리의 김치 맛에 흠뻑 빠져 있다는 기사가 보도되고 있다.
　우리만의 고유의 전통식품 김치를 국제적인 고급음식으로 격상시키는 일에 우리는 철저한 위생과 맛으로 승부를 해야 할 것이다. 가난했던 시절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었던 평범한 김치가 이제 수출까지 하는 세계적인 음식이 되었다. 우리들보다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은 나라에도 김치수출을 시도해， 그들도 쉽게 김치와 가까워져 상식을 하게 된다면 결국 우리의 수출 길도 활발해질 것이 아닌가.
　김치 하나만으로 밥 한 그릇을 비웠던 그 때를 생각하면 김치는 분명 우리들의 삶과 깊은 애환을 나눈 음식이다.
　모든 활동이 중단되는 겨울， 땅을 파고 김장항아리를 묻고， 배추를 절여 김장을 하던 일은 연 중 가장 큰 가정행사였다.
　늦가을이면 김치 걱정을 하는 것이 우리네의 당연한 생활습관이다. 밭고랑에 늘어선 큼직한 배추를 볼 때면 자연스럽게 김장 생각을 하게 된다.
　겨울이 되기전에 김장을 한 집에서는 반찬걱정을 하지 않았던 선조들의 지혜가 오늘의 풍요를 가져왔다고 믿게된다. 눈송이 앞세우고 겨울이 오고 있다.

글·사진
이종기(시조시인)

16호 (200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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