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ubject	울지 않는 바이올린

말은 자기의 생각을 상대에게 전하는 역할을 한다.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얼마나 답답하고 불행할까.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글로써 의사를 전하기도 한다. 요즈음은 수화라는 것이 있어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끼리도 수화로 의사전달을 하면서 대화한다.
　해외 여행길에 올랐을 때 그 나라의 언어를 알지 못해 불편한 일을 겪어본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언어의 중요함을 절실히 깨닫곤 했을 것이다.
　몇 년 전 어느 TV의 대담프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일본 여류작가 '미우라 아야꼬'의 수필에 관한 이야기가 방영되었다. '미우라 아야꼬'의 남편 친구 중에 바이올린 연주를 아주 잘하는 사람이 있었다. 일본 곳곳을 다니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는 아주 유명한 사람으로 자선기금 모금에도 참가하여 남을 돕는 일에 흔쾌히 일조를 하는 사람이었다.
　바이올린 연주솜씨가 워낙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연주 소식이 있는 날이면 먼 곳에서까지 몰려오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마음을 사로잡던 그 바이올린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각자 사는 일에 분주하여 사람들은 가끔 그 일이 궁금했을 뿐 어떻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었다.
　어느 날 미우라 아야꼬의 집에 바이올린을 등에 지고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한 사람이 찾아왔다.
　남편의 친구이기에 반갑게 안내를 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전에 만났을 때 더없이 밝은 표정이었던 얼굴이 수심으로 가득 찬 표정이었고， 말을 잃어버린 환자 같은 느낌을 받았다.
　미우라 아야꼬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선생님! 선생님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을때면 마음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선생님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을 수가 없어서 궁금했는데 어떤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오늘 선생님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바이올리니스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왜 바이올린 소리를 들을 수 없느냐고 다그쳐 물었을 때 깊은 한숨을 내 쉰 바이올리니스트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사실 요즈음은 바이올린 연주를 하지 않습니다."
　"왜 그 좋은 솜씨를 아깝게 썩히세요?"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이었습니다. 아프리카 기아들을 위한 자선 음악회이었지요. 저의 연주를 보기 위하여 연주 시작 몇 시간 전에 입추의 여지없이 관중들이 연주장을 가득 메웠지요. 이날의 연주를 위해 준비기간이 꽤 걸리기도 했지만 이날처럼 활을 움직일 때마다 조심스럽고 가슴 조인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또 청중들은 곡이 끝날 때마다 기립박수로 열광하였지요. 이 날의 연주는 온 정열과 열정을 쏟은 내 혼신의 열연이었습니다. 또 이날은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 찬 날이었지요. 그런데 연주가 끝나고 가장 가까운 한 친구로부터 스스럼없이 폄하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온 몸에 기운이 빠지면서 다시는 바이올린의 현에 활을 대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아끼던 바이올린은 함께 가지고 다니지만 그 이후로는 '울리지 않는 바이올린'이 되고 말았지요. 바이올린을 연주할 용기가 전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을 마치며 바이올리니스트가 내뿜는 한숨 속에는 고뇌와 고통의 번뇌가 가득해 보였다. 순간 눈에서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았다.
　마음 한구석에 숨어있던 애수와 그리움을 녹여내던 그 애절한 바이올린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다는 절망감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좌절감의 나락으로 끌어내린 그 한마디를 무심히 뱉은 사람은 이 바이올리니스트가 겪고 있을 고통이나 비애를 생각이나 했겠는가. 한 사람의 예술혼을 앗은 사실도 모른 채 오늘은 또 누구를 향하여 가슴에 비수를 꽂고 있는지， 또 얼마나 많은 비수를 준비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남편의 친구인 그 유능한 바이올리니스트가 한 사람의 한마디 말 때문에 오랜 세월 갈고 닦은 재능을 접고 말았으니， 그 마음의 상처와 그리고 그의 연주를 듣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른 일인가를 생각해볼 일이다.
　우리는 무심코 자기 기분대로 남의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말을 하기 전에 누군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한다면 듣는 상대는 어떠할까를 생각해본다면， 이 세상 누구도 함부로 말을 뱉지는 못할 것이다.
　무심코 생각 없이 던진 말 한마디가 상대의 심장에 비수로 꽂힐 수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사진·글 이 종 기(시조시인)
9호 (2005.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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