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ubject	옹기가 들려주는 사랑이야기

온산을 붉게 휩쓸며 포효하는 맹수처럼 힘차게 타오르고 있는 진달래 활짝 핀 산， 계곡의 물 위로 붉은 꽃잎이 흐르고 물속엔 타는 불길이 붉게 퍼지고 있습니다.
　온 산이 붉게 타는 아래로 뾰죽히 내미는 연두색 싹들이 있고 이 싹들이 자라면 또 다른 꽃들이 피어났다가 지고， 또 피면서 제 때를 맞추어 생을 이어갈 것입니다.
홀로 피어나 홀로 지는 꽃 속에도 이처럼 생을 이어가는 우주의 이치가 숨어 있습니다.
　봄볕이 찾아드는 산과 들 어디든 생명의 꿈틀댐이 다시 시작할 때면 제일 먼저 양지쪽 산자락에 진달래가 모여있고 그 옆에 할미꽃도 패랭이 꽃도 함께 앉아 소곤대며 얘기를 합니다.
　도로변의 벚꽃이 눈송이처럼 꽃잎을 뿌리고， 주택가 담장 안의 개나리가 골목안이 궁금한지 담장 밖으로 목을 길게 빼고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나무들이 새 잎이 돋아날 준비를 하고 있으면 꽃들은 새 잎들을 위해 사라져야 합니다. 이제 꽃들의 잔치는 끝나가고 있습니다. 이 아픈 희생을 아파하는 마음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새 잎들의 돋아남을 기다립니다. 나무들에게 새 잎은 희망으로 다가와 씨앗을 잉태하여 다음의 봄날이 오게 하므로 그 위대함을 부러워하며 우리 인생들도 희망을 안고 씨앗을 잉태하는 새 잎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삶의 봄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하회마을에서 아침을 맞았습니다.
올망졸망 옹기 그릇들이 서로의 정겨운 이야기들을 나누는 듯 온가족들의 음식 장만에 들어갈 된장이며 간장을 간직하고 있는 장독들의 정다운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어린날 정월대보름이 지나면서 장담그던 젊은 시절의 어머니 모습이 눈앞에 선합니다.
　옹기 항아리를 바라보노라면 떠 오릅니다. 가족들의 건강을 생각하며 어머니만큼 큰 옹기 물동이를 이고 동네 아낙네들이 모여드는 우물까지 갑니다.
　두레박으로 물을 퍼 동이를 채우고 물을 여 나르고 그 물로 옹기마다 채우던 그 힘든 일도 힘든 줄 모르고， 한없이 소모되는 물을 이고 나르며 힘들여 장을 담그시며 차가운 날씨에도 연신 옷소매로 이마에 흐르던 땀을 닦아 내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위대한 자식사랑으로 다가와 우리들의 눈 언저리를 뭉클하게 만듭니다.
　항아리 속에 담겨진 어머니의 사랑 이야기는 듣는 이의 눈시울을 적시고 감사의 미소를 만들어 냅니다.

　깊은 산골 옹달샘이 있다는 숲속에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퍼내어도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샘， 그 샘물에는 삶에 지친 우리들에게 희망을 주는 신비의 영약이 들어있습니다. 이 샘물을 한 모금 찍어 먹은 새들은 하늘을 더 높이 나릅니다.
　이 샘물로 목을 축인 산 짐승들은 생기를 되찾습니다.
　공해로 찌든 우리들의 피로한 몸도 이 샘물로 새로운 생기를 찾을 것입니다.
　옹기들이 줄지어 서 있는 마을을 찾아 옹기들이 소근소근 들려주는 어머니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들어야겠습니다.
고향 남쪽에서
봄볕이 상경하면

입다문 가지마다
꽃을 피워내고

먼길
돌아돌아 철새들이 찾아들고

꽃길에 피어나는
그 진한 라일락 향에
더 환해지는

윤중로 벚꽃들이
여의나루 찾아들면
떠나기 아쉬운 듯
바다향한 저 몸짓
천년을 살려는가
곱디고운 손길

푸르른 깊은 강물
헤엄치는 고기떼
급한 듯 가다서는
퇴근길 차 행렬

계절이 되어
꽃구경길 더 바쁜 하루
글 : 이 종 기
<시조시인>

4호 (2005.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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