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배운 도둑 날 새는 줄 모른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속담에는 세월의 진실이 묻어 있고 쾌도난마의 신선함을 느끼게 하는 교훈도 숨어 있다.
85세의 전우순이라는 할아버지가 아프리카의 최고봉인 킬리만자로(5895m) 등정에 성공했다는 소식이다. 한때 골프광이었던 그가 우연히 산의 매력에 빠지자 헤어날 수가 없었는데, 그 유혹의 산물이 이번 킬리만자로 등정을 낳은 것이다.
할아버지가 산사랑에 빠졌다. 아니 뜻밖의 늦바람에 휘말린 그 할아버지가 온 세상을 향해 싱그러운 산 향기를 풍기는 것 같다.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곳인 에베레스트 앞에 섰을 때의 느낌이 궁금해 못 견뎌 연말쯤에는 에베레스트도 찾을 계획이라니, 드디어 못 말릴 바람둥이(?)라도 된 듯하다.
시대는 바야흐로 할머니 할아버지의 세상이다. 평균수명이 놀랍도록 늘어나 우리의 현실에서도 이젠 고희(古稀)가 노인이 아니다. 노인정에서도 그 나이는 쫓겨난다고 한다. 이왕 말난 김에 이 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외람된 제언을 하나 하고 싶다. 노인정에서 훌훌 털고 나와 청춘인 듯 바람 한번 피워보시라고 말입니다. 멋진 늦바람을 말입니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감미롭고 시원한 그 바람에 한번 불려가 맘껏 희롱하고 희롱당해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빛나는 마지막 사랑을 위해서 말입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사랑에 빠질 때만큼 황홀한 순간이 어디 있던가. 그러니 사랑을 하면은 예뻐진다는 말은 진리이다. 나의 모든 에너지가 사랑을 위해 봉사하니 어찌 그 얼굴이 빛나지 않으랴. 빛나는 그 얼굴은 바로 영원한 우리의 연인인 젊음이다.
무슨 사랑에 빠질 것인가? 누구와 사랑할 것인가? 걱정하지 말고 돌아보십시오. 찾아보십시오. 아직은 나의 사랑을 애타게 기다리는 무수한 것들이 있으니까요.
지난 3월 7일 서울의 양원초등학교에서는 특이한 입학식이 열렸다.
평생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국내 최초로 초등학교 학력인정을 받는, 늦깎이 학생 280명의 입학식이었던 것이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만학도들 중에는 놀랍게도 70~80대의 노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생업을 정리하고 공부에 전념하려는 사람, 멀리 남쪽지방에서 기차를 타고 온 학생, 특히 “한글을 몰라 일주일을 꼬박 선서연습”을 했다는 60대의 학생대표 할머니의 이야기는 숙연함이 아니라 황홀한 봄빛이었다.
이런 것을 한풀이라고 폄하할 수 있을까? 그들은 사랑을 시작한 것이다. 가슴 속 진정한 열망이 때를 만나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늙음을 탓하지 말고 눈을 돌리면 내게 맞는 것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돈이 없다고, 시간이 없다고, 건강이 없다고. 아니 들킬까(?) 겁이 난다고? 그런 핑계는 사랑을 모르는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나의 연인은 언제나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그곳에서 나를 기다린다.
원망하고 푸념하며 남은 인생을 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이 시간이다. 허욕에 사로잡혀 노추를 부리기에도 너무 아까운 것이 시간이다. 꼭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 했던 일, 꼭 나를 필요로 하는 그 어떤 곳. 그곳에서 진정으로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그 여유는 노인만의 특허품이 아닐까?
80세에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80세에 이 땅에서 제일 높은 곳을 오르는 그런 열망으로 날 새는 줄 모르는 늦바람을 피우다 혹 집에서 쫓겨난다 해도 애인이 있지 않습니까.
서경희
3호 (2005.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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