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들어 부쩍 TV 교양프로그램을 많이 본다. 그중에서도 동물의 세계나 자연의 신비함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은 유익할뿐더러 때로는 자연의 섭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동물들은 참 지혜롭다. 아프리카 초원에는 포식자인 사자부터 그들의 먹이가 되는 사슴이나 영양까지 모두 무리를 지어서 생활한다. 그들은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철저한 질서와 규율을 지키며 생활하고 또 그것을 어린 새끼들에게 가르친다.
그런데 사자 무리든 사슴의 무리든 새끼들은 어른들로부터 철저하게 보호받는다. 어느 다른 무리가 다가와 새끼들이 위험해지면 어른들은 죽기 살기로 대적하여 싸운다. 그런 어른들도 막상 새끼들끼리 치고받으며 난리를 쳐도 그냥 방치할 뿐 거들어주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새끼들도 자연스럽게 강한 녀석과 약한 녀석으로 나뉘고 질서와 규율을 터득하며, 장차 자라서는 각자 능력에 맞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불과 반세기전만 해도 1인당 GDP가 70달러가 채 안 되는 세계 최빈국이었다. 그런 우리나라가 오늘날 세계 10위의 큰 나라로 성장한데는 무엇보다도 ‘교육(敎育)’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본인만 열심히 공부하면 사회의 동량(棟梁)이 될 수 있었다. 예전 어른들이 “개천에서 용 났다”고 했던 그런 역동성이 우리나라를 오늘만큼 키운 것이다.
사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계층 간의 이동이 자유롭고 빈번하게 일어나는 나라는 없다. 본인만 똑똑하면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의 부모님들은 처절한 가난 속에서도 먹을 것 먹지 않고 입을 것 입지 않고 자식들의 교육에 거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가난이 대물림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치열하게 그러나 공정하게 경쟁하면서, 달리 말하면 싸우면서, 커야 할 아이들의 세계에 어른들이 과도하게 개입하는데 문제가 있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부모들의 열성적인 교육열이 도를 넘어섰다. 거기에다가 교육정책을 두고 기득권에 집착하는 행정당국과 일부 교원단체들의 집단이기주의가 문제를 더욱 더 복잡하게 만들어 버렸다.
우리나라 교육정책에는 절대불가침 성역(聖域)이 있다. 이른바 ‘3불(不) 정책’이라는 것이다. ‘대학교 본고사 안 된다. 고교등급제 안 된다. 대학에 기여 입학제 안 된다’는 것이다. 3불 정책이 무너지면 공(公)교육이 무너지고, 학원과외가 난무하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를 더욱 벌인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과연 그럴까? 평준화된 고등학교에서 본고사도 치르지 못하고, 거의 내신(內申)으로만 학생을 선발하는 지금의 제도 아래에서 과연 공교육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 그러나 현실은 너무도 다르다. 학교 교실은 아이들의 잠자는 장소로 바뀐 지 오래고, 사(私)교육 시장은 날이 갈수록 번창하고 있다. 학부모들의 극성스러움과 경제력이 곧 학생들의 경쟁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오히려 지금의 교육시스템 아래에서 가난이 대물림될 여지가 더욱 커진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는 것인가? 애들은 싸우면서(경쟁하면서) 크는 것이다. 21세기 치열한 국가 간 경쟁에서 우리의 아들·딸들이 생존해 나가려면 어려서부터 부모의 도움이 아니라 자기 힘으로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최소한 지금의 고교평준화를 폐지하고, 대입 본고사 부활 문제를 한번쯤은 진지하게 재검토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기여 입학제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제화의 물결 속에 교육시장이 개방될 것이고, 어차피 지금도 엄청난 달러를 들여 조기유학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비율을 정해 기여 입학을 허용하고, 그 기부금을 대학발전기금으로 잘 운용한다면 빈약한 대학재정에도 도움이 되고, 가난한 인재들에 대한 장학금으로 활용하여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박철언
변호사, 정무직공무원, 시인
현 변호사박철언법률사무소 변호사, 현 한국복지통일연구소 이사장,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 (제1대)
24호 (2006.5.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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