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인격적인 존재로서 자유롭게 살아갈 절대 불가결한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고 사는 것은 명에 있고 부하고 귀하게 됨은 하늘에 달려있다고 했다(死生在命 富貴在天).
사람이란 실패를 거듭할지라도 굴하지 않고 끝내 일어나는 칠전 팔기형도 있고, 죽을 고비를 몇 번을 극복하여 다시 살아나는 구사 일생형도 있다.
문득 국군 포로 이기춘씨(75세)가 생각난다. 죽어서 천년을 천당에 살지언정 이승에서 단 일 년이라도 자유를 누리면서 살고픈 집념이었나 보다. 장장 17개월에 걸쳐 5차례를 시도한 일가족 7명의 북한 대탈출 성공 작전, 도대체 ‘인권’이 얼마나 소중하길래 살아생전 자유를 찾아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었다는 피맺힌 증언이다.
사연이야 일일이 말해서 무엇하랴. 이(李)씨는 6.25전쟁 중에 중공군에 잡혀 북한에 끌려가 청진제철소에서 일했다고 한다. 자유와 민주를 찾아 남쪽행 탈출을 두 번이나 감행했지만 철도안전원과 국경경비대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아니, 하늘이 무너져도 구멍 하나가 뚫렸을까. 죽음 문턱에서 목숨을 건진 그가,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54년 만에 경남 김해의 고향땅을 밟았다니 아마도 기적은 외면하지 않았나 싶다.
이것뿐이 아니다. 팔순 근접 이(李)옹은 이미 뚫어놓은 루트를 이용하여 북한에 있는 아내와 아들, 딸과 사위는 물론, 두살박이 손자까지 자유 대한의 품안으로 탈출시키고는, 이제는 함께 살 수 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안도의 한숨을 눈물로 씻어 내렸다.
얼마 전 뮤지컬 ‘요덕스토리’가 화제를 모으면서 국내는 물론 외신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수용소에서 태어난 ‘요덕이’를 돌보고 있는 수감자들의 연기에서 두 주먹을 떨고, 거기에서 일어나는 기아와 강간, 공개처형으로 가득찬 악몽 같은 광경에 대하여 공포와 함께 가슴을 쥐어짰다.
이것을 제작한 탈북자 출신 정성산 감독은 ‘이 뮤지컬은 진실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만든 살아있는 연극’이라고 했지만, 정작 관객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 저렇도록 인간 지옥이 아니 멀리 내 조국 북한 동포가 아니길 공연 내내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이다. 정감독은 목이 메어 나도 죽었으면 열 번은 더 죽었을 것인데, 살아남아 북한 수용소의 참상을 담은 공연을 무대에 올린 것이 기적이라고 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친북단체들의 협박과 권력의 회유에 무참히도 시달렸을 것을 상상하면, 혹여 불원간에 밀어닥칠 좌파 세상이 무척 두렵기만 하다.
요즈음 꼴도 보기 싫은 정객들이 국민들을 조롱하면서 기만하고 있다. 성에 대한 가치전복의 소임을 다한 동성애 영화 ‘왕의 남자’가 천만 관객을 끌어들인 것은 고사하고, 감상 후 소위 각 정파 우두머리들의 아전인수격 해석이 진짜 가관이다. 그런데 요덕스토리는 한쪽 사람들은 인권 탄압의 실상에 눈물을 짜면서 애절하게 관람했는데도, 다른 쪽은 한사람도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는 후문이니 참말로 이상하고 괴상한 일이다.
혹자는 대통령이나 총리, 통일부장관과 국가인구권위원장은 물론이고, 민족과 통일을 입에 달고 사는 대한민국 집권 세력이 오히려 수용소 동포들의 죽어가는 소리에 귀를 막고 있었다니 어찌 그리 눈치도 빠른지?
하기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을 무시한 채 보안법을 폐지하고 교사의 정치활동까지 허용하라고 권고한 ‘국가인권위원회’가 그런 연극을 무엇 때문에 감상하겠는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시대의 사건이라면 땅속을 뒤지고 양심을 유린해서라도 반증과 회복의 길을 닦을 것 아닌가.
진짜로 공정해야 할 인권위가 북한눈치보기병과 정치적편향병에 걸리지 않아야 과거사가 바로 정립되고 인권이 실현되는 것이다. 수퍼볼 영웅 하인스 워드는 ‘학창시절, 흑인 친구들은 나를 한국인이라 했고, 한국인 친구들은 나를 흑인이라고 했다’는 말을 남겼다.
부자와 빈자, 젊은이와 늙은이도 개인마다 존귀한 인권이 있기 마련이다. 잘사는 사람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고, 노인들은 선거도 하지 말고 집에 가서 쉬라는 그것보다 더한 인권 탄압이 세상에 또 있을까.
허학수
24호 (2006.5.27)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