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과 공명이란 보통 사람과 아무에게나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도덕과 정직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명성과 공명이 그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하고, 명성과 공명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부귀와 재물이 그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한다.
명예욕과 이기심의 산물은 결국 흉상이요 추락이다. 명성은 잠깐 사이에 피었다 지는 여름꽃과 같으므로, 그것을 끝까지 명성을 추구하면 곧 범죄가 되기 쉽고, 의식하지 않으면서 순리와 자력으로 취할 때만이 영광과 미덕이 된다고 한다.
알다시피 조작과 허위는 불순한 동질이면서도 판이하다. 조작은 없는 일을 있는 것처럼 꾸미어 사실인 듯이 만든 것이다. 아니, 가짜를 진짜와 흡사하게 흉내 내었으니 그 얼마나 노력과 열정을 쏟았겠는가. 그렇지만 허위는 그것 자체가 그릇된 사고와 지식이며 새빨간 거짓이므로 애초부터 기만이요 사기이다.
불멸의 명성을 추구하는 젊은이에게 보내는 값진 충고는 차라리 인기 없는 대의를 택하여 일생을 거기에 바치라는 것이다. 음지가 양지가 되고, 쥐구멍에 햇볕이 들었다는 듯이 인하무인격으로 설쳐봤자 그 시간은 머무르지 않는다. 제아무리 코드가 맞더라도 고장이 나는 법이고, 백(back)과 권력 역시 무상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인간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뒤섞이어 숙덕거리면서 살아간다. 꼭 필요한 사람,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사람, 있어서는 안 될 사람도 함께 살고 있다.
아무 일에나 함부로 덤벙이는 건성꾼이 있고, 빈둥빈둥 놀거나 게으름을 부리는 건달패의 무리들도 있다. 자기는 놀면서 제 몫만 챙기고, 성실하게 일하는 상대를 오히려 미워하는가 하면, 서민 대중의 편에서 없는 자를 대변한다는 허울 좋은 선동자도 있다.
시위소찬(尸位素餐)이란 직책을 다하지 못하면서 한갓 자리만 차지하고 녹만 받는다는 말이다. 명분이야 그럴 듯한 각종 위원회가 보여주듯이 그런 사람은 때와 사람을 만나 순간의 명성을 악용할 뿐이다. 다시 말하면 ‘국민 여러분’의 지지와 총애가 없기에 그 시대가 지나면 쉽게 사라질 건달패들이다.
물이 깊어야 고기가 모인다는 말은 어제 오늘의 속담이 아니다. 덕망이 높고 인격이 있어야 사람이 따른다는 것을 누가 모르랴. 민심이 천심일진대 국민들에게 가슴으로 호소하며 겸손하게다가서는 포근한 자세는 대중의 동정과 호감을 집중시키지만, 건들거리는 어깨와 싱글싱글 조롱하는 눈빛은 거만한 꼴이 되기 십상이다.
입으로 토해낸 소리가 모두 말일 수는 없다. 입만 벌리면 늙은이는 개발시대 꼴통 보수라고 경멸하고 욕하며, 과거의 공적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젊은 것들의 악성과 독설이 너무 더럽고 미워질 때가 많다.
지난 일요일, 방송 극중의 대화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들을 기르는 것보다 개새끼를 기르는 것이 더 낫다’는 어머니의 고백적 체념, 명문 대학에 합격했다는 아들의 개그 같은 자조적 대사, ‘아끼고 또 아껴서 공부시킨 저사람, 가난하고 초라해서 시들어진 저 늙은이가 나의 아버지가 아니었으면’하는 패륜아의 노골적 독백이 시청자의 이목을 어리둥절케 했다.
진짜로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치고 세상에 널리 알려진 훌륭한 사람이면 그 얼마나 좋은가. 참되고 값지며 누구나 인정하는 명성과 공명은 시대와 정권을 초월한다. 가난한 나라, 굶주린 국민을 배불리 잘 살게 했는데 언제까지 그에게 화살을 꽂고 괴담을 퍼붓는단 말인가. 아침 일찍 일어나 일터로 나가서 새 국토와 새 마을을 가꾼 그들의 명성과 공명을 알아야 한다.
하도 말할 것이 없어 어느 대통령은 고교 교장이고, 어떤 대통령은 대학 총장이라고 비교했겠는가. 행동의 신뢰보호 원칙은 모든 행정의 대상에 동등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판결, 그것이 바로 참된 명성과 값진 공명이다.
허학수
23호 (2006.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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