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위(衛)나라의 공문자를 찾아갔을 때, 공자에게 “이웃나라를 공격하는 비법을 알려주시오”라고 하자, 공자께서는 “나는 제례(祭禮)는 잘 알고 있지만 전쟁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바가 없습니다”라고 답변한 다음 제자들을 독려하여 급히 위나라를 떠났다고 한다.
제자들이 의아해 하자 공자는 양금택목(良禽擇木:현명한 새는 좋은 나뭇가지를 가려서 둥지를 튼다)을 말하면서 훌륭한 신하가 되려면 마땅히 현명한 군주를 섬겨야하는 법인데, 위나라의 군주는 자기들이 찾고 있는 성군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 소문을 전해들은 공문자가 황급히 달려와 공자일행을 붙잡고 더 머물기를 간청하였지만 노(魯)나라로 향하는 그들의 발걸음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춘추좌씨전」에 전하는 내용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의 재능을 알아주는 훌륭한 사람을 가려서 섬긴다. 학문이나 예술 혹은 큰 뜻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훌륭한 스승이나 지도자를 찾는다. 같은 맥락으로 뛰어난 군주는 충신을 옆에 두기 위하여 여론을 수렴하여 재능 있고 의로운 인재를 발탁한다.
충성스런 신하가 탁월한 군주를 만나면 보잘것없던 인물도 빛이 나고 잠자던 재능이 깨어나 위력을 발휘한다. 반대로 약간 부족한 군주도 좋은 신하들의 올곧은 충언을 따르면 성군으로 우뚝 선다.
공자에게 충직한 자로가 있었듯이 예수께는 사도 바울이, 유방에게는 장자방이 있었다. 유비와 제갈공명, 조조와 사마중달, 이성계와 정도전, 수양대군과 한명회, 전두환과 장세동(?), 모택동과 저우라인(周恩來) 등등은 주군과 신하 간에 철저한 믿음이 교감한 각별한 사이라 하겠다. 이런 역사적인 인간관계는 수없이 많다.
연전(年前) 중국의 관광지「장가계」를 방문한 적이 있다. 장자지에(張家界)는 글자 그대로 장씨들의 마을이다. 장자방이 은거한 곳이기 때문에 생긴 지명이다. 장자방은 유방의 책사(策士)로 한(漢)나라를 창건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개국공신이었다.
의심이 많은 한 고조(高祖)가 2세의 등극을 앞두고 건국 공신들을 토사구팽(兎死狗烹) 시켰다. 한신이 죽임을 당하자 다음 차례는 자신임을 간파한 장자방은 몰래 도망하여 토가족(土家族)이 살고 있는 첩첩산중으로 숨어들었다. 그는 유방의 군사를 피해 암봉(巖峰) 황석채 꼭대기에서 49일 동안 귀둔하였다고 한다.
장가계는 무릉도원의 별칭이기도 하다. 깊은 협곡에 솟은 기암괴석 사이로 피어오르는 엷은 운무는 꿈결 같았다. 송곳처럼 뾰족하고, 붓을 세운 듯한 수천 개의 석봉(石棒)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흙 한줌 물 한 방울 없는 바위틈에 뿌리 내린 소나무는 청백리처럼 꼿꼿하게 버티고 있었다.
구름 타고 내려온 신선이 너럭바위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신선화(神仙畵)의 모습 그대로였다. ‘사람이 태어나 張家界에 가보지 않으면 100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人生不到張家界 白歲豈能稱老翁)’라면서 張家界의 절경을 찬양하는 중국인들의 정서가 결코 과장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장자방은 젊은 시절 박랑사(博浪沙)에서 시황제(始皇帝)를 죽이기 위하여 기습을 감행했으나 실패하여 하비에 피신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육도삼략의 원본이라 할만한 「태공병법서(太公兵法書)」를 황석공(黃石公)으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한다. 그 책에 적힌 무궁무진한 전술전략을 발휘하여 한(漢)나라를 세웠는데도 주군의 마수(魔手), 그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이 다가옴을 보았을 때 정치무상이 어떠했을까.
당나라 문인, 한유(韓愈)의 저서 「잡설(雜說)」에 의하면 손양(孫陽)은 말(馬)의 관상(觀相)을 보고 천리마(千里馬)를 식별할 줄 아는 재주가 뛰어났으므로 백락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백락(伯樂)은 천리마를 보살피는 관청이었다. 천리마는 아무 곳에나 흔히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말 가운데 천리마를 고르자면 백락의 혜안이 있어야 하고, 뛰어난 조련 기술도 필요로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식견이 뛰어나고 지략이 넘치며 천재적인 자질이 있다고 해도 때와 사람을 잘 못 만나면 한 세상 필부로 지내기 쉽다. 인사가 만사라 하지 않는가.
역대 대통령들이 장관을 임명할 때 백락이 천리마 고르듯 정확하게 발탁했는지 아니면 눈 딱 감고 코드인사를 강행하여 나라를 어지럽게 만들지나 않았는지 깊이 반성해야 될 성싶다.
특히 최근에 임명된 장관의 경우는 국민들의 마음을 아주 불편하게 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안명수_msahn38@hanmail.net
22호 (2006.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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