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平凡)한 사람이 평안(平安)한 마음으로 평온(平穩)하게 살아가면 평화(平和)는 저절로 오게 된다. 이런 평화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그것은 태평과 자유로 연결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두가 외부의 요인이나 영향에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적인 심경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생로병사를 거역하지 못하는 인간이 마음을 평온하게 가지려면 불쾌한 기억이나 상처진 과거를 머릿속에 불러들이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란 현재가 소란하고 불행한 것이 아니라 불쾌하고 슬픈 기억 때문에 소란과 불행을 자초할 때가 많다.
깨달은 사람일수록 그 마음 속은 아무런 거동이 없이 청정하고 잔잔하다. 만사를 ‘나’ 로부터 시작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나’ 라는 것이 앞서니까 꾀를 부리는 사심이 많고, 때로는 이치도 자기에게 이롭도록 휘어잡으려고 한다.
상처는 긁으면 핏물이 나고 과거는 누구에게나 엄연히 존재하는 법이다. 현재를 다독거리지 않은 채, 미래를 의식하는 서투른 복수는 당대에 끝나지 않는다. 외부로부터 받은 평화는 불안하고 영원하지 못한 일시적 산물이기에, 스스로 우러나는 평온함과 만족감이 결여된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낮과 밤은 별개의 시공으로, 낮은 일하다가 노는 시간이었고 밤은 잠자고 쉬는 시간으로만 여겼다. 그렇기에 노동과 피곤은 낮을 지루하게 하였고, 근심과 고통과 외로움은 밤을 더 길게 하였다.
행복이란 순리적이고 긍정적인 사고에서 비롯되지만 불행은 언제나 인생에 대한 그릇된 해석의 표적이라고 한다. 빈부귀천의 테두리를 미리 그려놓고 패배와 절망의 감정에 빠져 있기보다는, 타인들의 삶과 함께 어울리는 공동체 의식에서 평범한 인간 승리를 거머쥘 수 있어야 한다.
세르반테스는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고 하였다. 기원과 희망이 있는 곳에 자유와 평화가 있고, 자유와 평화가 있으면 행복한 삶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다. 튼튼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인다면 마음의 평화는 분명히 자신을 조절하는 감정의 척도에 달려 있다.
사람이 어찌 일상을 외면하고 현실을 피해 갈 수 있으랴. 요즈음 나라 꼴은 하루하루가 꼴불견이고 볼썽사나워서 국민된 자부심마저 도망갈 지경이다. 서해 교전에서 자식을 잃은 병사의 어머니가 정든 조국을 떠나면서 울먹인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고, 국군은 죽어서도 말한다는 어느 무명 용사의 녹슨 철모가 동그랗게 매달린다.
안빈낙도 속에 포식난의(飽食暖衣)하면 그 얼마나 좋겠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나라가 편해야 백성이 편해진다. 재래 시장이 바닥나고, 중소 기업이 무너져서 장사 안된다고 아우성치는 것은 고사하고, 집권 당사자들의 입술마다 ‘네탓’ 이라고 둘러대는 간책과 묘술이 가관이다.
이것뿐이랴. 지금 서민들은 온통 의아심과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오늘 밤을 자고 나면 또 무슨 특별법이나 초대형 시책이 발표될 지 궁금증에 앓고 있다. 하도 많은 위원회가 코드 인사의 자리는 제공해 줄지언정, 국민을 볼모로 허울좋게 희롱하는 화법에 아연 실색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노사와 여야, 좌파와 우파, 보수 꼴통과 급진 진보라는 이름으로 싸우고 파헤치면 결국에 남는 것은 모두의 좌절과 파멸밖에 없다. 계급장과 직위 때문에 친일파가 되고, 말 한마디, 글 한 줄, 시 한 편이 잘못 쓰여져 친일 작가로 명명다면, 그 시대 이 땅에 순수한 단군 자손이 몇 명이나 될까.
우리는 하나이다. 뭉치면 힘이 강하게 치솟고 흩어지면 갈기갈기 찢어지기 마련이다. 유네스코 헌장에 전쟁이 인간의 마음 속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평화의 방어 수단이 건설되어야 한다는 것도 인간의 마음 속에 있다고 했다.
허학수
15호 (2005.11.17)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