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6월에 발행될 5만원 신권의 도안을 공개하면서 대한민국 화폐로는 최초로 여성 도안이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여기저기에서 화폐초상에 대한 시비가 연일 이어졌다. 사임당의 어머니의외가인 최씨 대종회 회장은 한국은행에 찾아와 표준 영정과 다르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한국은행 관계자는 여러 자료를 보여주며 원래 표준영정과 화폐영정은 다를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돌아갔다. 또 사임당의 친가인 신씨의 대종중 회장도 유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한 편 모 일간지에는 사임당의 초상이 TV 사극에나 나옴직한 동네 아줌마나 주막집 주모이면 알맞다는 얘기도 있었다.
화폐도안의 선정
2004년 4•4분기에는 화폐단위 절하가 논의 되었다. 그 당시도 경제가 침체된 당시 여건으로는 화폐개혁을 진행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뒤로 미루었다. 그러나 2005년 정책당국은 화폐의 전면교체를 추진하고 있었다. 화폐는 오래동인 사용하기 때문에 존경 받는 많은 인물들이 추천 되었다. 그 당시는 김구, 정약용, 신사임당, 장영실 등으로 압축되었다. 기존의 세종대왕, 이이, 이황, 이순신은 모두 조선시대의 남성으로 편향되었다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한 편 여성계에서는 유관순, 신사임당, 허난설헌, 이태영, 김만덕, 선덕여왕, 가부장제도에 온몸으로 저항한 최초의 서양화가 나혜석, 만주 벌판을 말을 타고 달리며 쌍권총을 들이댔던 독립투사 김마리아 등을 추천하기도 했다. 이러한 복잡한 문제를 잠재우고 시장경제에 자극을 주지 않는 연구 작업을 해 왔다. 국회에서도 고액권 발행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단계에 이르고 5만원권에 신사임당이 최후로 채택되었다.
외국화폐의 초상
그 동안 한국 여인이 엄청난 차별을 받고 있을 시대에 영국연방의 엘리자베스 2세는 화폐인물로 올랐다. 미국은 여성해방 운동가이자 여성참정권의 어머니로 부르는 수전 앤서니가 있었다. 지금은 유로화에 묻혔지만 프랑스는 큐리부인을 세웠고 독일 마르크화는 8개의 화폐 중 반이 여성이었다. 호주 달러는 남녀평등정신의 본보기를 이룬다. 한 면은 남성, 다른 면은 여성이다. 몇 년 전 일본에서도 메이지 시대(1877-1896) 여류작가 히구지 이지요의 초상을 등장 시켰다. 심지어 북한이나 아주 작은 나라 키리키스탄조차 여성 인물을 택했다.
세계적으로 보면 19세기 중엽에는 화폐의 인물이 주로 국왕이나 대통령, 정치가가 주류였으나 제2차 대전 후 유럽은 문화인의 초상을 많이 내세웠고 1980년대부터는 여성의 초상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추세이다.
예술가 신사임당
얼핏 보면 연약해 보이는 사임당은 많은 자녀를 길러낸 어머니이다. 남편 이원수와 시어머니의 따뜻한 배려 덕분에 친정에 오래 지체하면서 자아실현을 한 당찬 여인이다. 어려서 벌서 경전(經傳)에 통달한 학자이다. 산수도를 그린 것이 아주 절묘했다는 예술가이다. 묵포도도와 초충도수병은 보물 제595호로 보호 받고 있다. 시와 그림, 글씨에도 일가를 이룬 그 시대 시골의 어려운 여건 속에도 남다른 예술성을 지닌 사임당은 아무나 따를 수 없는 존경해야 할 최고의 여성상이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의 극치
사임당의 초상 시비가 있지만 사진이 없었던 시대에 살아온 인물을 누구도 정답을 말할 수 없다. 이 땅의 조신한 양가의 어머니 모습이다. 주막집 주모나 동네 아주머니가 아니고 고생에 찌들어 보이지 않는 어찌 보면 단아한 귀부인의 모습이다. 율곡 이이는 ‘나의 어머니 일대기’를 남길 만큼 존경 받는 모친이었다. 사임당은 율곡을 역사에 남을 문신 학자요 정치가로 길렀다. 사색분당의 혼돈 속에서도 10만 양병설을 내는 시대를 내다보는 역사적 통찰력을 가진 인물로 성장시킨 사임당의 모성을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다.
사임당의 초상화는 외유내강의 극치를 이룬다. 외유 속에 숨은 파워를 읽는다. 쌍권총을 차고 날렵하게 달리는 투사형 무사가 아닌 사임당은 예술가이다. 굳게 담은 입에서는 무한한 사려가 숨어 있고 반짝이는 듯한 눈동자는 겸손해 보이며 당당한 자신감이 서려 있는 한국을 대표하는 미인이요, 아티스트이다. 그 시대에 그 많은 공부와 그림을 사숙하며 일가를 이뤄낸 사임당은 누구에게나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월드 베이스 클레식의 베네수엘라 경기를 보자. 10:2의 통쾌한 승리 뒤엔 그 수장인 김인식 감독의 표정과 그의 조용한 용병술은 외유내강의 리더쉽을 유감없이 발휘한 빛나는 별이었다. 바로 사임당의 초상에서 외유내강의 막강한 파워를 우리는 읽는다.
우리의 재산, 우리의 문화
원래 사임당의 초상화는 이당 金殷鎬화백이 그렸고 5만원권의 초상화는 이당의 초상화에서 얼굴 부분만 따온 것이다. 머리와 복식은 고증을 받아 제자인 이종상화백이 그렸다. 입술과 눈동자를 선명하게 그려 개방적인 신여성 이미지로 표현했다고 한다. 순종의 어진(御眞)을 그린 조선시대의 마지막 화원(畵員)이었던 이당에게서 수업을 받은 이종상 화가는 수도하는 마음으로 향을 피워놓고 5-6개월을 오로지 초상을 그리기에만 매달린 예술작품이다.
가장 의미 있는 것은 한국 최초로 화폐도안에 여성이 올랐다는 사실이다. 1973년 만원권 화폐가 발행한 이래 경제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이 36년 지난 현재 약 150배도 넘게 크게 향상되었다. 소비자 물가지수를 기준으로 본 물가수준도 12배를 훨씬 넘게 오른 우리의 경제 규모로는 5만원권의 발행이 너무 늦은 감도 있다. 한국은행에서는 오래 동안 연구하고 심사숙고하여 선정한 신사임당의 초상이다. 5만원권이 발행함으로 몇 가지 염려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편의성과 자기앞 수표로 대체할 수 있는 발행과 지급, 전산처리 각가지 비용 절감이 연간 2800억원이라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절감 된다는 엄청난 의미가 있는 발행이다.
나라의 화폐는 우리의 재산이자 문화유산이다. 모처럼 최고액권을 발행함에 있어 초상시비로 쓸 데 없는 에너지의 낭비를 막고 모두 소중히 아끼고 사랑하며 어려운 시대에 경제발전에 큰 기여하기를 고대하는 마음을 모두 가져야 하겠다.
박지연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회원
59호
2009.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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