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도 영유권이 한일 간에 외교문제 비화되면서 지리 역사 인식에 대한 간극이 엄청나게 벌어져 있음을 깨닫고 한다. 특히 주한 일본 대사의 속 좁은 발언은 우리 국민들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국민적 정서를 무시할 수 없기에 대통령도 3․1절 기념사를 통하여 일본의 자성(自省)을 촉구하였다. 한일 정치인들은 만날 때마다 선린우호와 미래지향적 외교를 강조하면서 웃는 얼굴로 상대하고 있다. 문제는 겉과 속이 다름을 짐짓 감추고 있는 현상이라 하겠다.
일본을 대표하는 단어를 딱 한 마디로 말해보라고 많은 사람들에게 주문한 결과 칼(日本刀), 국화, 친절이 많았다고 한다. 어떤 역사학자는 일본문화를 <칼의 문화>라고 역설한 적이 있다. 칼의 속성이 공격적인 것처럼 왜인들의 마음속에는 타민족에 대한 침략 근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고 하였다. 일본 사람들이 비굴하게 보일 정도로 친절한 것은 사무라이가 득세하여 활개치고 다닐 때 무지막지한 칼잡이들이 큰칼을 휘둘러 힘없는 백성들의 목을 파리 잡듯 날려버렸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으로 발전한 것이라 하였다. 친절은 일본인의 겉모습이고 침략근성은 그들의 속마음이라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친절 뒤에는 날카로운 비수가 감추어져 있음을 한시도 잊지 말라고도 하였다.
중국문화를 상징하는 조형물은 성(城)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만리장성을 비롯하여 중국의 옛 도읍지에는 고색 창연한 고성(古城)이 역사의 맥박을 느끼게 한다. 성내에 7만여 호를 수용할 수 있는 둘레가 20㎞가 넘는 제나라의 도읍지, 장안을 둘러싸고 있는 25㎞의 철옹성, 35㎞가 넘는 후한의 낙양성, 사방 40㎞의 북경성 안쪽에는 자금성, 황성, 내성, 외성 등 4개의 성이 왕실을 보호하고 있었다.
토호들이 세력을 펼쳤던 곳마다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고 있는 것을 보면 중국문화의 본질이 성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도읍지의 축성에 정성을 바친 왕조는 대부분 한족(漢族)이었다. 그들은 중원문화를 지켜야 할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변방의 이민족이 중국을 지배할 때에는 축성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축성보다는 전술이나 강한 군대가 더 효과적임을 빈번한 싸움으로 터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꼭 지켜야 할 그들의 문화도 없었다. 오히려 중원문화에 흡수되어 한족과 융화되기를 은근히 바라기도 했을 것이다. 힘없이 중원의 백성들은 이민족이 집권을 하여도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축성 부역으로 고생하지 않을 것임을 계산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서책일 것 같기도 하고, 탑(塔)일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웬만한 가정에는 천자문을 비롯하여 자녀들의 손때묻은 서책 몇 권 정도는 있었다. 전혀 글을 모르는 까막눈도 족보 책을 신주단지 모시듯 농 밑에 보관하지 않았던가. 아녀자들이 농한기에 사찰을 방문하여 탑을 돌면서 가정평화와 가족의 건강을 빌었던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우리 문화의 대표주자는 탑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칼은 공격적이고 성은 배타적이다. 이런 무서운 강대국 사이에서 평화를 사랑하는 이 어진 민족은 말 못할 설움을 받아왔다. 21세기는 성도 국경도 필요 없는 세계화의 시대이고, 무력으로 타민족을 유린하는 범죄행위를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동북아지역 결속의 중심국가가 되어야 할 타당한 이유를 지난 역사에서 읽을 수 있다.
안 명 수
3호 (2005.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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