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에 가려져 EU와의 FTA협상은 잊혀진 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한-EU FTA가 한국에 줄 충격파는 한미 FTA보다 못한 것이 아니다.
2007년에 한-미 FTA협상이 산고 끝에 타결되었고, 이제 양국 의회의 비준을 기다리고 있다. 협상결과에 대한 비준은 여전히 양국간에 기싸움으로 지속되고 그나마 비준과정이 쉽사리 진행될 것 같지 않다. 한-미 FTA협상은 온 국민으로부터 초미의 관심을 끌었으며, 협상과정 내내 국내 일부 계층으로부터 적극 반대에 부딪혔다.
당사자간 협상을 유리하게 이끈다는 전략적 차원에서 본다면, 협상 사안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사회계층 내에 혼재하는 경우 부분적으로 협상과정에서 대표단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전 국민의 관심사를 불러 일으켰던 한-미 FTA 협상타결에 이어서 시작된 한-EU FTA 협상은 도무지 국민의 관심사에서 사라져 버렸다. 한-EU FTA 협상에 대한 국민들의 입장을 도무지 알기 어렵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2월 5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한-EU FTA 협상이 거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한-EU FTA 협상의 경우 관심이 의외로 저조한 것은 어쩌면 한-미 FTA 협상의 전례에 따라 진행되면 될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가 지배적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EU FTA 협상과정과 내용이 한-미 FTA 협상의 복사판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더욱이 국가간 협상타결은 합의내용에 대한 서명과 더불어 비준과정을 거치면 일종의 국제법적 효력을 지닌다는 점에서 신중한 판단을 필요로 한다. 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하여 미비한 분야는 빠른 시일 내에 개선•보완되어야 한다.
한-EU FTA 협상에서 자동차, 축산 등에 관련된 협상의제는 한-미 FTA 사례와 유사하다. 그러나 한-EU FTA 협상에서 독특하면서도 눈여겨보아야 할 의제가 담겨 있다. 당장 효력을 발휘하는 사안은 아니지만 향후 유럽연합과 협상의제의 하나인 축산분야에서 ‘동물복지’(animal welfare)에 대한 것이다.
동물복지는 아직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한마디로 인간은 동물에게 적절한 주거환경을 제공하고, 관리해야 하며, 영양제공, 질병예방 및 치료에 유념하고, 책임감 있게 동물을 보살피며, 인도적으로 동물을 취급하고, 필요한 경우 인도적 안락사를 통해 처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한 예로 좁디 좁은 철망우리에서 사육된 닭이 낳은 달걀은 판매될 수 없다. 좁은 철망우리에서 사육되는 닭은 둥지를 만들어 알을 품으며, 횃대에 앉거나 흙목욕을 하려는 본능적 행동에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돼지의 경우 좁은 우리에 평생 갇혀 항생제와 성장촉진제가 첨가된 사료를 먹으며 각종 질병과 세균에 노출된 채 사육되는 사례가 보편적이다. 이러한 닭과 돼지 등의 축산방식은 지양되어야 하며, 이러한 과정으로 생산된 닭고기 또는 돼지고기는 국가간 수출•입 품목에서도 제외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동물복지’는 동물보호단체들이 주장한다. ‘동물복지’는 ‘동물권’(animal rights)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강조되기 시작했다. 생태학이라든가 페미니즘이라는 비교적 생소한 용어가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과 마찬가지 맥락이다. 동물복지에 대한 규정이 주로 적용되는 대상은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계란, 우유 등이 대표적이다.
향후 ‘동물복지’가 한-EU FTA 협상과정에서 원칙적으로 수용되고 본격화되는 경우 국내 축산업계과 식품산업계에 예상되는 엄청난 충격은 불보듯 뻔하다. 유럽연합은 동물복지와 관련하여 2012년까지 철망우리에서 닭을 사육하는 것을 금지하였고, 돼지의 경우도 마리당 일정한 활동공간을 마련하도록 하였다.
아직 우리 국내 농가는 여러 층으로 겹쳐진 철망우리에서 닭을 사육하는 현실이며, 돼지 역시 좁은 축산우리에서 양돈위주로 사육되고 있다. 심지어 ‘동물복지’에 의거한 도축기준은 훨씬 못 미친다. 향후 유럽연합이 ‘동물복지’정책에 입각하여 한국에게 이러한 조항이행을 요구한다면, 축산농가에 대한 피해나 비용은 실로 엄청나다.
다행히 아직 유럽연합측도 교역차원이 아닌 협의 내지 의견교환차원에서 ‘동물복지’를 거론하고 있다. 한-EU FTA 협상에서 이 문제는 가까운 시일에 중요한 협상의제로 확대될 수도 있다. 의제가 본격적으로 제시된 이후에야 허겁지겁 기준에 맞추려 하기보다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지혜롭게 이 문제를 꼼꼼히 다루어 보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정부와 축산농가는 이 ‘동물복지’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보완방식을 강구해야만 한다.
이규영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장
44호
2008.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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