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이후 미국이 이라크에서 겪고 있는 문제는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예견된 것이며 이라크는 또 하나의 베트남이 되어 미국의 상처가 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이라크에 발을 들인 것은 무모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라크, 또 하나의 베트남
예상대로 2006년 11월 7일 미국의 중간선거는 공화당의 참패로 끝났다. 정치는 언제나 내정이기 마련이고 외교는 내정의 연장일 뿐이다. 그러나 중간선거의 최대 쟁점은 국내문제가 아니라 이라크 문제였다. 민주당 광고의 주인공은 미군 병사들의 무덤이었다. 10월의 여론조사에서 유권자의 31%는 이라크 문제가 투표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이슈라 응답했고 46%는 민주당이 이라크 문제를 더 잘 다룰 수 있을 것이라 응답했다(Newsweek).
미국인들을 우울하게 하는 것은 죽어간 3,000여명의 병사와 $3,000억의 낭비된 돈보다도 베트남에서처럼 이번에도 현실은 기대와 다르다는 깨달음이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미국인들은 핵폭탄을 만드는 독재자를 타도하는 것일 뿐이라 생각했다. 미국은 자신이 침략자가 아니라 해방자로 반겨질 것이라 생각했다. 전쟁 초기에는 이라크인의 대다수가 미군을 환영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61%가 연합군을 죽이는데 찬성한다.
바그다드에서 들려오는 뉴스는 하나같이 나쁜 소식이다. 선거전이 한창인 10월에만 90명의 미군이 전사했고 이라크 군은 300명이 죽었으며 민간인 사상자는 세기도 힘들다. 공화당은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이라크를 놔둘 수는 없다고 말하지만 이라크에서의 실패는 테러와의 전쟁이 실패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공화당의 네오콘이 틀렸다는 증거가 되었다.
선거에서의 패배를 수습하면서 부시 대통령은 그가 (한번도 아니라) 두 번 통독한 성경 구절을 떠올린다. ‘아버지에게 물어라 그가 네게 보여줄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어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뉴스위크)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67%가 아들 부시의 일방주의보다는 아버지 부시의 전통적인 외교정책을 선호했다. 아들 부시는 아버지의 정적인 럼스펠트 대신 아버지의 사람인 로버트 게이츠를 국방장관에 임명한다.
아버지의 사람들
아버지와 아들: 부시가문의 전쟁
“우리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일방적으로 국제법을 무시하고, 약속을 어겨야 하는가? 바그다드로 가면 우리는 점령군이 되어야 한다. 아랍 땅을 미국이 차지하는 순간 동맹국들은 우리 편에 서지 않을 것이며 오늘의 승리는 내일의 악몽이 될 것이다.” 왜 바그다드로 진격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아버지 부시가 한 말이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이라크에서 벌여진 문제는 아버지가 아들보다 현명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안으로는 불어나는 재정적자, 밖으로는 동맹관계를 망쳐놓은 아들과 달리 UN이 정한 목표를 넘지 않았고 냉전종식과 독일통일을 문제없이 다뤄낸 아버지 부시는 뒤늦게 재평가되고 있다.
아들 부시가 대통령으로서 부적격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영웅인 처칠처럼 9/11이란 재난을 당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부시 대통령은 단호하고 명쾌했으며 적들에게 무자비했다. 아들 부시는 중동에 거대한 도박판을 벌였고 역사가 만들어졌다. 1776년 미국건국의 아버지들은 영국을 상대로 도박을 벌였고 1940년 처칠은 독일과 도박을 했으며 1980년대 레이건은 소련과 도박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겼다. 승리와 재난은 한끝 차이이다. 그러나 그 한끝 때문에 단호함은 고집이 되고 오만이 된다.
미국은 전쟁에서 졌고 이제 철군은 날자만 받으면 된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2007년 1월 10일 국정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유권자와 의회, 군부는 물론 공화당의 의견까지 무시하고 최소 2만의 병력을 추가 파병하는 계획을 밝힌다. 이미 파병되어 있는 13만에 2만을 더하여 무정부 상태인 바그다드의 치안을 확보한다는 계획 자체는 나무랄 데 없다. 그러나 추가파병은 이라크인의 반감에 기름을 부어 사상자만 더 늘리고 끝날 확률이 더 높다. 하지만 아들 부시가 고집스럽게 이라크 공격을 밀어붙이고 지금까지 매달리는 것은 ‘너는 떠들어라 나는 내 마음대로 한다’는 똥고집도 아니고 ‘세상에서 나만 홀로 깨어 있다’는 자아도취도 아니다.
바그다드의 무질서를 테마로 한 게임
지금 이라크라는 진창에서 발을 빼는 것은 이대로 뭉그적거리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힘의 공백을 틈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득세할 것이고 미국이 세워놓은 온건파 정부를 무너트려 이라크를 테러집단의 돈 창고로 만들 것이다. 그들의 공격 목표는 당연히 미국이 된다. 이라크라는 도박에 건 돈이 많은 미국은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
진퇴양난인 이라크의 상황은 걸프전 당시 아버지 부시가 예견한 대로이다. 그러면 아들은 아버지의 지혜를 빌릴 생각이 없었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아들은 아버지의 뒷감당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담 후세인: 세계질서의 문제아
영국 이외엔 거의 모든 동맹국이 반대한 이라크 전쟁은 국제법과 절차를 무시하는 미국의 오만함를 보여주는 증거로 꼽힌다. 그러나 사실 이라크는 미국이 다자간 절차를 따른 가장 좋은 예이다. 그러나 동맹국의 의견을 존중하고 UN의 절차를 따른 합의는 사담 후세인의 비웃음과 함께 번번히 휴지조각이 되었다. 국제협약과 절차가 무시될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냥 앉아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해야 되는가? 문제는 사공이 많으면 언제나 일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1980년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서명을 하고도 후세인은 핵무기와 생화학무기를 개발하려 했고 이란-이라크 전쟁과 자국의 쿠르드 지역에서 실제 사용되었다. 1991년 쿠웨이트에서 후세인을 몰아낸 UN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해야 한다고 결의한다. 1년이면 사찰과 폐기가 끝날 것으로 생각되었다. UN 결의에 강제력을 부여하기 위해 가해진 경제제제는 보복성도 아니었고 후세인을 몰아내려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식량과 의료품의 수입을 위한 석유수출은 허용되었다.
그러나 불가사의하게도 후세인은 UN 결의를 무장해제로 받아들였고 마지막으로 UN 사찰단을 추방할 때까지 7년을 버틴다. 사찰단이 추방된 후 4년 동안 후세인의 행동은 더 가관이 된다. 후세인은 이전보다 완화된 사찰조건을 거부하면서 이라크 아이들이 경제제재 때문에 죽어간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사실이다. 그러나 애초에 경제제재는 그가 UN에 협조를 했다면 예전에 없어졌을 것이다.
후세인이 무작정 버티는 동안 UN 상임이사국들은 이 문제아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놓고 어떤 합의도 할 수 없었다. 옵션은 5가지였다.
1) 그냥 후세인이 하고 싶은 대로 아이들이 미국 때문에(그는 UN의 제재를 미국의 악의 때문이라 주장했다) 죽어간다고 주장하면서 뒤로는 위험한 무기를 갖고 놀게 한다.
2) 후세인에게 완화된 사찰조건을 받아들이도록 한다.
3) 다 포기하고 후세인이 다시 위험한 일을 벌일 때까지 기다린 다음 벌을 준다.
4) 후세인을 끌어내리기 위해 UN의 동의를 얻어 미국주도의 침공을 한 다음 국제법을 지키는 정권을 세운다.
5) 그냥 침공하고 나서 다른 나라들이 그게 좋은 생각이었다고 인정하게 한다.
바람직한 것은 두 번째와 네 번째였다. 물론 두 번째가 가장 좋은 것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이란 각론으로 들어가면 상임이사국 자리를 차지한 동맹국들은 ‘거부권’을 휘둘러 댔다. 경제제재는 이미 실패했고 다른 대안에 관해선 어떤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남는 것은 무력 밖에 없고 미국은 다섯 번째 옵션을 선택했다.
강제력이 없다면 NPT와 같은 조약은 무력해진다. 내키지 않지만 질서를 잡으려면 군사제재가 필요하다. 제2의 후세인이 되려는 자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 문제는 무력제재는 핵이나 생화학 무기가 사용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고 사용되기 전에 가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지르고 나서 이해시킨다’는 선택은 실패로 끝났고 우습게도 후세인이 그렇게 숨기고 싶어하던 대량살상무기는 나오지 않았으며 전쟁이 5년을 끌면서 미국은 질 수 없는 전쟁에서 패했다. 그러나 애초에 부시 대통령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가 약속한 만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역사에 아들 부시는 많은 것을 약속했지만 이룬 것은 적은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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