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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상하이의 밤거리
북한이 하는 것처럼 공산국가인 중국은 미국을 제국주의, 패권주의로 비난해 왔고 중국인들 사이에서 반미감정이 높은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중국의 반미감정은 정부의 선동에 의한 막연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중국을 함부로 대한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현실에 근거한 감정이다.
9/11 테러는 천벌?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난 다음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고 춤을 추었다. 같은 날 지구 반대편 중국의 인터넷 세대들은 “여객기? 왜 핵폭탄으로 하지 그랬어?”라고 이죽거렸다.
중국의 인터넷 세대에게 미국 때리기(America bashing)는 고상한 취미이다. 1999년 (미국은 사고라 말했지만) 벨그라드의 중국 대사관이 폭격 당했을 때와 2001년 4월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EP3 정찰기와 충돌한 중국 전투기가 추락했을 때 중국에선 대규모 반미시위가 일어났고 인터넷에는 ‘3차 대전에서 미국을 가르치자’와 같은 말이 흘러 다녔다.
9/11 테러 직후 중국정부는 미국에게 동정적이었고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했지만 미국의 동맹국과는 달리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고이즈미 수상과 영국의 블레어 수상, 프랑스의 시락 대통령 등은 9월 11일 다음날 TV에 나와 테러에 대한 공포와 혐오감을 표현했지만 장저민은 개인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중국과 미국: 사랑과 증오 사이에서
1989년 천안문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중국이 미국처럼 되기를 원했고 10여 년간 중국은 미국을 닮아갔다. 중국 혁명의 상징인 인민복은 이제 나이키 운동화, NBA 티셔츠, 리바이스 청바지로 바뀌었고 거리에는 맥도널드, KFC, 피자헛 간판이 늘어섰으며 코닥, 코카콜라 제품은 도시의 가정에선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2005년 여론조사에서 중국인의 2/3는 미국을 호의적으로 보았고 양국관계가 긍정적이라는 답변이 70.9%였다(Global Times). 중국인들은 미국이 배울 것이 많고 존경할만한 나라라 생각하며 중국정부에게 워싱턴과의 관계는 최우선 사항이다. 그러나 같은 조사에서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고 한다는 의견이 56.7%였다. 중국인들에게 미국은 심심하면 중국의 자존심을 긁어대고 내정간섭을 일삼는 골목대장이다.
중국은 미국을 대등한 형제로 생각할 뿐 보스로 보지는 않는다. 물론 표면적으로 미국과 중국은 대등한 관계이다. 그러나 세계적 위상과 국력의 차이 때문에 미국에 대한 중국의 정치, 경제, 외교적 영향력은 미국이 중국에 행사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 관계에서 미국은 공세를 취하고 중국은 수세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유일한 슈퍼파워인 미국이 세계질서를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중국인들은 보지만 (중국인이 느끼기에) 미국이 중국을 미개한 나라로 생각하며 가르치려 들 때 중국인이 느끼는 것은 모멸감과 분노이다.
어르고 달래기
부시가 집권한 이후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어느 때보다 좋은 상태이다. 그러나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무역부터 인권, 무기수출, 대만문제까지 미국과 중국 정부 사이에 논쟁이 마를 날은 없었다. 중국이 보기에 양국관계가 불편한 것은 미국 쪽에서 보면 중국이 크는 것을 배 아파하기 때문이다.
클린턴의 임기 초기 중국의 반미감정은 극에 달한다. 선거유세 중 아버지 부시를 “바그다드에서 베이징까지 독재자의 응석을 받아준다”고 비난했던 클린턴은 1994년 중국의 인권이 개선되지 않으면 중국에게 최혜국(MFN, most-favored-nation) 지위를 줄 수 없다고 말한다. 중국은 강자의 오만함이며 말도 안 되는 내정간섭이라며 분노했다. 클린턴은 자신의 말을 취소했지만 워싱턴의 정치인들은 여전히 강경했다. 전체주의 국가인 중국이 어떻게 ‘정상적인’ 미국의 무역상대가 될 수 있느냐며 백악관을 걸고 넘어지는 것은 2000년 상원에서 중국의 ‘항구적인 정상무역지위(PNTR, permanent normal trading status)’가 승인될 때까지 미국 의회의 연례행사였다.
워싱턴은 1994년 베이징의 항의를 무시하고 화학무기를 찾겠다며 중국 배를 검문했고(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2000년 올림픽의 중국 유치를 무산시켰으며, 1996년에는 (누구나 다하는 거지만) 선거자금을 대주고 영향력을 사려 한다고 비난했다. 미국의 일방적인 중국 때리기를 보면서 중국인들은 어떤 호의도 느낄 수 없었다.
특히 대만에 대한 워싱턴의 제스처는 중국인에겐 미국의 악의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중국인들에게 대만은 (대다수의 대만인이 바라는 것처럼) 별개의 독립국이 아니라 수복되어야 할 영토이다. 대만과의 갈등이 고조된 1997년 미국이 대만해협에 항공모함을 파견하고 부시가 대만에 무기를 판 것은 중국인에겐 참을 수 없는 모욕이며 전쟁을 하자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1990년대 양국관계를 생각할 때 NATO가 중국 대사관을 폭격한 것이 고의라고 생각하고 두 나라의 공군기가 충돌하여 중국 조종사가 죽은 사건에서 미국 정찰기가 공해를 비행하고 있었다는 미국의 주장을 믿지 않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중국인들에게 두 사건은 패권주의자의 어리석은 도발로 보일 뿐이다.
2001년 부시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양국관계는 회복되는 듯 보였다. 상하이에서 부시는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라 언급한 것을 취소하고 중국은 전략적 파트너라 말한다. 그러나 중국의 채팅 방들은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중국을 매수하려는 수작에 불과하다’는 말들로 채워졌다.
민족주의: 자유와 미성숙
워싱턴은 중국정부가 반미감정을 조장한다고 말한다. 모든 언론이 국영인 중국에서 여론이 정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더 이상 ‘공식적으로’ 그런 말을 하지는 않지만 수십 년간 미국을 적 또는 패권주의라 말해온 중국에서 미국과 일본을 공격하는 것은 안전하다. 1999년 중국 대사관이 폭격 당했을 때 중국정부는 대규모 반미시위를 묵인해주었다.
더구나 언론통제가 당연한 중국에서 미국에 비판적인 알 자지라 뉴스는 볼 수 있지만 영어판 구글 뉴스는 접속할 수 없으며 미국 이민국 직원이 중국 여성을 구타한 것은 문제가 없지만 중국공안의 고문 피해자에 관한 보도는 위험하다.
그러나 ‘자유는 없고 억압만 있는 중국’이란 이미지는 낡은 것이다. 국영언론의 방대한 적자를 해소하려면 사서 볼만한 이야기를 실어야 하고 그러려면 언론에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현재 중국에서 대만 독립, 티베트 자치, 민주주의를 지지하거나 공산당을 타도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도가 지나치지만 않으면) 무엇이든 보도할 수 있다. 가판대에는 읽을거리가 넘쳐나고 국영방송인 CCTV는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강도와 깊이로 사회의 어두운 면과 정부의 잘못을 비판한다.
물론 ‘주어진’ 자유는 제한적인 것이기 마련이다. 더 이상 검열은 없지만 중국정부는 스파이로 기소하여 ‘도가 지나친’ 언론인을 본보기로 삼거나 광고주를 위협하는 식으로 언론의 자기검열을 유도한다. 그에 비해 인터넷에선 (정부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익명성이 보장되고 이는 (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의미한다. 그러나 중국에서 자유는 미성숙과 동의어이다. 중국에서 인터넷 여론을 주도하는 것은 근시안적이고 호전적인 민족주의이다.
“세계를 통제하려는 욕심에 대한 천벌이다.” “미국은 몰락하고 중국의 세상이 올 것이다." “춘절(春節: 설날)에 불꽃놀이가 없다고? 지금 미국이 최고의 신년맞이 불꽃놀이를 선물했다.” 2003년 컬럼비아 우주왕복선 참사가 일어났을 때 중국의 포털 사이트들에 돌던 말이다. 물론 그들이 기뻐한 것은 7명의 미국인이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이 자존심을 구긴 것을 기뻐한 것이다.
그러나 극단적 반미감정은 젊은 세대 일부에 국한된 것이다. 9/11 직후 중국 포탈에는 반미적 언사가 넘쳤지만 중국인의 98%는 미국에게 동정적이었다. 하지만 그 젊은이들은 대도시의 교육받은 이들로 컴퓨터가 부의 상징인 중국에서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젊은이들은 정부 관료들과 비슷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미래의 엘리트들이다. 그들을 보면서 세계는 2차대전 전의 독일과 일본이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세상을 상대로 인정투쟁을 벌였듯이 중국도 불어난 힘을 과시하려 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더구나 한 세기도 더 전에 일어난 아편전쟁에서 중국이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자세하게 교육하는 중국에서 조용한 대다수 중국인들 역시 민족주의적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상처받은 자존심
그러나 중국의 민족주의, 특히 미국에 대한 반감은 상처받은 이가 ‘왜 나를 이해주지 않는 거냐?’고 항변하는 방어적인 불평이다. 천안문 사태 이후 ‘새삼스럽게’ 중국이 독재국가라는 것을 깨달은 미국은 심심하면 민주주의, 인권 등 중국의 약점을 찔러댔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세계최대의 대국으로서 누렸던 화려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중국인들에게 미국의 태도는 시비를 거는 것으로 보인다.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은 잃어버린 자존심을 되찾으려는 노력이었고 이제 그 성과를 누리는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미래가 밝을 것으로 생각한다. 미국이 말하는 민주주의나 인권 이외에도 중국의 문제는 많다. 그러나 중국의 규모와 역사적 상황을 생각할 때 지금까지의 성과는 대단한 것이고 중국인의 노력은 정당하게 평가 받아야 한다고 중국인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이 미국인에게 듣는 것은 ‘비판’이 전부이다.
미국은 독재국가, 전체주의라며 중국의 열악한 인권을 비판하지만 벨그라드의 중국 대사관이 폭격 당했을 때 중국인들은 미국이 말하는 인권은 미국인만의 것이라 생각했다. 중국인의 생명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모든 생명은 귀중하다. 그러나 당신들 미국인은 언제나 자신의 생명이 다른 나라 사람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당신들은 무엇을 배웠는가?” 9/11 테러 직후 중국 네티즌이 한 말이다. 더군다나 지금보다 인권문제가 휠씬 심각했던 1970~80년대 미국은 중국에 대해 침묵했으면서 휠씬 상황이 좋아진 지금에 와서 문제를 삼는 것은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를 감추려는 ‘위선적인 술책’으로 보일 뿐이다.
자비로운 독재자
중국을 비판하는 것은 중국정부의 압정에 시달리는 중국인들을 위한 것이라 미국인들은 말한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자신의 정부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지난 20여년간 중국정부는 중국인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 성과는 괄목할만한 것이다. 물론 당간부와 정부관료의 부패, 무능력, 관료주의, 정부의 비효율, 잦은 정책실패 등 중국인이 보기에도 중국정부는 문제가 많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적어도) 정부가 자신들을 위해 일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으며 정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고치려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비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비난’일 뿐이다.
더구나 중국인이 보기에 미국의 비판은 이제 걸음마를 뗀 아이에게 뛰라고 주문하는 것에 불과하다. 미국인들은 중국정부가 경제만 말하고 정치에 관한 한 침묵을 금과옥조로 삼는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신화이다. 신뢰할 수 있는 법률시스템과 공공 서비스의 도입, (국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의 권한 강화, 공무원제도의 합리화, (제한적이지만) 촌 단위 선거제도의 도입, (혁명의 적인) 자본가 즉 기업인에게 공산당의 입당 허용 등 지난 20여년간 중국은 정치적으로도 변해왔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은 변해왔다. 공개적이 아니라면 정부의 권위와 정당성을 비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니며 직업선택, 여행의 자유가 주어졌고 외국에 나가 공부하거나 취직하는 것 역시 개인의 자유이다. 반체제인사가 아니라면 법을 지키는 보통 시민이 고문, 구금, 폭행 당하는 일은 보기 어려워졌다.
다른 나라 사람이 자기 나라를 비판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중국인들이 보기에 자신의 기준으로 다른 나라를 재단하는 미국은 우쭐대기 좋아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남의 기분을 생각할 줄 모르는 자아도취증 환자이다.
일본에 대한 대다수 중국인의 감정은 한국인들처럼 증오, 경멸, 불신의 조합이다. 그러나 반일감정과 달리 중국의 반미감정은 변할 수 없는 것도 뿌리가 깊은 것도 아니다. 미국의 비판을 들으면서 중국인들은 자신들에게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비판하기 전에 왜 중국에 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석우
편집 부국장
31호 (2007.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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