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2008 베이징 올림픽 스타디움
대중국 적자가 늘어나면서 미국은 위안화가 절상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볼 때 위안화가 절상과 미국의 무역적자는 별개의 문제이다. 미국 정치인들이 위안화 절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경제적 논리가 아닌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20년의 기시감(déjà vu): 새 얼굴, 낡은 각본
1985년 9월 22일 뉴욕 플라자 호텔에 모인 G5(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당시 5대 경제대국)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장들은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를 절상하는데 합의하였다. 훗날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라 불리게 된 협정에 따라 G5의 중앙은행들은 외환시장에 $100억를 부어 달러화의 투매를 조장한다. 그 후 2년간 엔화는 달러 당 240엔에서 120엔으로 51% 올랐다.
1980년대 초 미국은 GDP의 3.5%에 달하는 경상적자를 내고 있었고 대공황 이래 사상 최대의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백악관과 미국의회는 달러의 가치를 낮추면 미국 상품이 싸지므로 수출이 늘 것이고 수출이 늘면 무역적자와 불황은 해결될 것으로 보았다. 플라자 합의 이후 예상대로 미국은 유럽과의 무역적자를 줄일 수 있었지만 의도와 달리 대일 적자는 줄지 않았다.
1950~60년대만 해도 무역을 둘러싼 미국과 일본의 다툼은 ‘1달러 블라우스’와 같은 노동집약적 제품에 국한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일본이 컬러 TV 등 가전제품을 수출하면서 미국의 전자산업이 몰락한 데 이어 1980년대에는 자동차와 반도체와 같은 미국의 핵심산업까지 위협하자 미국과 일본의 갈등은 절정에 이른다.
플라자 합의를 맺은 1985년 일본은 $500억의 대미흑자를 올렸고 세계최대의 채권국이 되었지만 미국은 세계최대의 채무국으로 전락했다. 21세기가 되면 세계최대의 경제대국은 미국이 아니라 일본이 될 것은 당연하게 보였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냉전이 끝난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 냉전의 승자는 미국이 아니라 일본이었다. 미국이 보기에는 자신이 일본의 안보를 떠안는 동안 미국의 그늘에서 힘을 키운 일본은 미국과 경제전쟁을 벌여 이긴 것이다. 미국의 적은 소련에서 일본으로 바뀌었다.
“일벌레 왜놈들(Jap)처럼 열심히, 빠르게 일한다면 우리는 도쿄 자식들을 더 빨리 찌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미국의 타깃은 더 이상 일본이 아니다. 2004년 일본의 대미흑자는 $750억로 여전히 높지만 무역적자에서 일본의 비중은 1991년 65%에서 2004년 12%로 줄었다. 같은 해 $1600억의 흑자를 낸 중국의 몫은 전체 적자의 1/4이다. 더군다나 일본은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일본이 헤이세이 불황을 겪는 동안 미국이 일본을 보는 시각은 ‘일본 때리기(Japan Bashing)’에서 ‘일본? 통과(Japan Passing)’로 ‘일본? 별거 아니네(Japan Nothing)’가 되더니 ‘일본? 문제군(Japan Problem)’으로 바뀌어 갔다.
1980년대의 일본과 2000년대의 중국은 불안할 정도로 닮아 있다. 1980년대 ‘일본이 몰려온다!’며 흥분했던 것처럼 미국 신문의 지면은 상하이의 번영이 아니라 중국저가품 때문에 코네티컷의 베어링 공장이나 위스콘신의 주방기구업체, 시라쿠스의 에어컨 공장이 문을 닫거나 중국으로 이전하였다는 기사로 채워지고 서점에는 ‘중국: 다가오는 위협(China: The Gathering Threat)’, ‘어떻게 중국을 이길 것인가(How We Would Fight China)’ 같은 책들이 넘쳐나며 미국 기업과 노조는 ‘중국공포증(Sinophobia)’에 걸려있고 의회에는 무역제재법안이 무더기로 상정되어 있다.
잡지 삽화
20년이 지난 후 미국을 제칠 나라는 일본에서 중국으로 바뀌었다. 연이은 무역흑자로 2006년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1조를 넘어 일본을 제치고 세계최대 규모가 되었다. 2050년 세계최대의 경제대국은 중국일 것이라 말한다.
지금의 중국은 1960년대 고도성장기의 일본을 보는 것 같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은 세계에 일본의 위상을 알리는 계기였다. 2008년 올림픽이 베이징에서 열리는 것은 우연은 아닐 것이다. 1960년대 의류 때문에 일본과 다툰 것처럼 미국은 중국의 의류수출을 문제 삼고 1971년 엔화 절상을 내용으로 하는 ‘스미스소니언 합의(Smithsonian Agreement)’를 강요할 때처럼 위안화의 가치가 너무 낮기 때문에 중국이 흑자를 내는 것이라 말한다.
미국의회는 방대한 대미 흑자는 중국이 환율조작국이란 증거이며 위안화가 30~40% 저평가되어 있다고 주장하면서 중국정부가 환율을 현실화하지 않고 계속 버틴다면 보복관세를 때려야 한다고 말한다. (구매력을 계산하는데 기준이 되는) 빅맥이 베이징에선 미국의 반값에 팔리는 것을 보면 일리 있는 주장이다(중국의 암달러 시세를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위안화는 15% 저평가된 것으로 보인다).
20년 전 의회의 보호무역론자들을 잠재우기 위해 (자유무역론자인) 레이건이 일본에게 요구한 것처럼 2006년 후진타오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역시 자유무역론자인) 부시 대통령은 위안화의 절상을 요구한다.
위안화 절상은 미국에게 도움이 되는가?
그러나 플라자 합의가 미국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았고 거품경제의 원인이 되어 일본만 고생한 것처럼 위안화가 절상된다고 미국이 득을 볼 것 같지는 않다. 연방준비은행 전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을 포함한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위안화가 대폭 오르더라도 중국대신 다른 나라의 수출이 늘어날 뿐이므로 무역적자를 줄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표를 의식해야 하는 의원들에게 중요한 것은 경제논리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숫자이다. 2001년부터 미국의 무역적자가 대폭 증가했을 때 중국의 대미 수출도 급증하여 2004년에는 중국이 미국의 무역적자의 25%를 차지했다. 현재 미국에서 팔리는 소비재의 반은 중국제로 월마트에서 물건을 고르면 십 중 팔 구는 중국제이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급증한 무역적자의 반은 유가상승 때문으로 중동국가들의 대미 흑자는 $4250억으로 늘었다. 1997년부터 2006년(예상)까지 미국의 대중 적자는 $1400억 늘었지만 전체 적자폭은 $7200억으로 늘어 무역적자가 중국 탓이라 보기는 힘들다.
더구나 위안화가 절상된다고 대중국 적자가 개선되지도 않는다. 중국이 1달러어치를 수출하면 그 중 70~80센트는 수입한 원자재와 부품이다. 위안화가 오르면 수입품의 가격도 싸지므로 실제 중국 수출품의 달러표시 가격은 크게 오르지 않는다. 위안화가 20% 올라도 수출가격은 4~5% 오를 뿐이다.
설사 인건비가 감당 안 될 정도로 위안화가 오르더라도 중국 수출의 55%를 담당하는 외국 회사들은 중국보다 임금이 더 싼 인도로 떠나면 그만이다.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 기업들은 생산기반을 해외로 옮겼고 미국시장 점유율은 줄지 않았다.
중국이 아니더라도 세계시장의 살인적 경쟁에 노출된 미국 회사들은 이미 생산기반을 해외로 옮겨갔기 때문에 중국과 직접적으로 경쟁관계에 있는 미국 회사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중국의 대미수출은 1/4이 미국 회사들이 하는 것이다) 위안화가 대폭 오르더라도 미국이 득을 볼 것은 별로 없다.
누가 돈벼락을 맞고 싶은가?: 넘치는 돈, 부푸는 거품
그러나 미국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중국은 국내 문제 때문에 위안화를 올려야 한다. $1조를 넘어서면서 중국은 전세계 외환보유고의 1/5을 차지했다. $1조는 중국 수입의 15개월 분(적정 보유고는 3개월), 단기채무의 6배에 해당한다. 무역흑자와 해외투자가 누적되어 국내에 외화가 넘치면 위안화는 상대적으로 귀해지고 상대적으로 귀해진 위안화의 가치는 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위안화 절상을 허용할 생각이 없었다. 그 결과 위안화의 실질가치에 비해 명목환율이 낮아지면서 돈보다 실물의 가치가 올라갔고 60~70년대 수출이 급증하던 한국처럼 물가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있고 ‘묻지마’ 대출(2001~2005년 대출증가율은 연평균 16%)이 급증하는 등 거품이 일어나고 있다.
거품을 막으려면 환율이 오르도록 시장에 맡기거나 위안화와 교환된 달러를 해외에서 소모해야 한다. 중국정부는 매년 $2000억(GDP의 9%, 수출의 25%), 외환보유고의 70%를 이자율이 낮은 미국 재무부 채권(Treasury bond)과 바꾸어 금고에 재어놓는다. 결과적으로 중국정부는 힘들게 번 돈을 막대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올리는 미국에게 중국 물건을 살 돈을 빌려준 것이다. 미국은 재무부 채권, 회사채 등을 팔아 매달 해외에서 (반은 아시아 국가들에게서) 빌린 $600억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메운다. 2007년 미국의 총부채는 $6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위안화가 올라도 무역적자가 줄지 않는다면 위안화 절상은 미국의 적자를 메워주던 중국의 외환보유고를 소모시킬 뿐으로 미국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그러나 중국정부가 수출이 줄 것을 걱정하거나 미국을 불쌍히 여겨 고정환율제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정부는 미국의 주장처럼 위안화의 가치를 시장에 맞길 경우 1997년 이웃 아시아 국가들의 금융위기가 중국에서도 재현될 것이라 우려한다.
환율은 경제의 신호등
1993~2004년 위안화는 40~50% 절상되어 왔고 2005년부터 2006년까지는 달러당 8.28 위안에서 7.93 위안으로 올랐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미국 정치인들을 만족시키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미국은 지금 당장, 최소한 10%는 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국정부와 EU, 아시아 국가들은 위안화의 가치가 점진적으로 재조정(revaluation)되어야 한다고 본다. 중국 은행들의 불량채권은 $9,110억(공식적으로는 $1,640억)로 전체 대출의 반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불량채권을 놔두고 위안화를 시장에 맡긴다면 약점을 노린 국제투기자본을 끌어들여 외환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중국의 환율재조정을 기다리는 수십억 달러의 핫머니는 환율절상으로 수출단가가 오르는 것보다 중국에겐 더 위협적이다. 불량채권을 정리하려면 시간이 걸리며 미국의 요구대로 ‘지금 당장’ 변동환율제를 택할 수는 없다.
중국에서 금융위기가 일어나면 세계금융 시스템은 다른 나라의 금융위기와는 비교가 안 되는 타격을 입을 것이고 미국에게 좋을 것은 없다. 미국의 중국 투자는 공식적으로 2004년만 $154억을 넘어섰으며 실제 수치는 더 클 것이다. 파산위기에 몰린 GM과 포드는 미국에서 적자를 보지만 중국에서는 막대한 이익을 올린다. GM의 해외부문의 이익은 전체의 반이 넘으며 그 비율은 해마다 늘고 있다. 중국에게 플라자 합의와 같은 것을 강요하거나 경제제재를 가하는 것은 미국 자신에게도 이로울 것이 없고 중국에 투자한 동맹국들의 원성을 살 뿐이다.
정치학은 경제학이 아니다
중국을 코너로 모는 것은 경제적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나 정치는 경제학이 아니다. 2001년부터 미국에선 제조업에서만 260만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미국 정치인과 노조는 그 원인이 중국이 값싼 물건을 미국시장에 쏟아 부어 상대적으로 비싼 미국 상품에 대한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라 주장하면서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무역장벽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라진 일자리가 중국 때문이라는 그들의 주장은 근거가 빈약한 것이다. 통계치를 원인 별로 나눠보면 외국 상품과의 경쟁에서 밀려 상품의 수요가 줄었기 때문에 없어진 일자리는 260만의 1/3에 불과하고 그 1/3이 모두 중국 때문인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260만의 나머지 2/3는 200년대 초반 미국의 경기둔화로 전체 수요가 줄었는데 반해 제조업의 생산성은 증가하여 같은 상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인원이 줄어 고용이 감소한 것이다.
그러나 일자리를 잃은 사람에게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1979~1999년 외국상품과의 경쟁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의 55%는 이전 임금의 85% 이하를 받을 뿐이며 1/4은 30% 정도 적은 임금을 받는다. 이들은 자신이 왜 그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설명해 줄 무언가가 필요한 것이고 중국은 그 원흉이 된 것이다.
중국 수입품에 27.5%의 보복관세를 때린다든가 2000년 중국에게 주어진 ‘항구적인 정상무역지위(permanent normal trading)’를 박탈하자는 등 의회에 상정된 20개의 중국제재 법안이 통과된다면 미국 자신이 만들어온 세계무역질서는 무너질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세계경제질서가 무너지지 않는 한 보호무역주의자들의 주장이 현실화되는 것은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유권자에게 보여줄 무언가가 필요하고 그들은 중국을 때리면서 정치적 쇼를 하는 것이다.
부시는 의회의 강경파를 의식해 (경제적으로) 중국을 강경하게 다룬다. 그러나 아버지 부시가 천안문 사태 때 겉으로는 중국을 때리면서 뒤로는 중국을 달래던 것처럼 중국에 대한 아들 부시의 말과 행동은 다르다. ‘말은 과격하게 행동은 현실적으로’라는 2중 전략은 의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의원들은 말만 강경하게 하면서 유권자와 당내의 극단론을 잠재우려는 의도가 크다.
이석우
편집 부국장
31호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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