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중국은 세계화의 중심에 있으면서 세계경제의 흐름을 만들어왔다. 20~30년 안에 중국이 미국과 함께 양대 경제대국으로 불릴 것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러한 예견이 현실이 될 것인가는 세계화가 지속될 것인가에 달렸고 세계화가 지속될 것인가는 세계화의 열매를 공평하게 나눌 방법을 찾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세계의 공장: 자전거에서 컴퓨터까지
중국이 자전거를 만들면서 전세계의 자전거 가격은 떨어졌다. 가나의 보급형 산악용 자전거 가격은 2001년 $67였지만 2003년엔 $25로 떨어졌다. 중국은 전세계 자전거의 60%와 미국에서 팔리는 자전거의 86%를 만든다.
자전거뿐만 아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의류 수출국이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저임금에 의존하던 인도네시아. 멕시코, 파키스탄 등의 의류업자들은 부자나라들이 수입쿼터로 그들의 몫을 챙겨주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미국의 5%, 이웃 아시아 국가의 10%, 멕시코의 1/3에 불과한 시간당 40 센트의 임금만 받고 일하는 중국인은 다른 저임금 국가의 악몽이다. 2002년 20%였던 중국 의류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010년에는 50%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세계은행). 대부분의 자전거와 TV, T셔츠가 중국제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자전거와 가전제품, 의류 시장이 중국의 독무대가 되었다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2000년 전세계 수출의 3.4%이던 중국의 수출은 2005년 7.3%를 기록, (2004년 $320억의 3배, GDP의 4.5%인) $1,020억의 무역흑자를 올리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중국은 이제 세계 3위의 수출대국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수출의 내용이다. 중국이 WTO에 가입한 2001부터 2005년까지 IT, 전자, 통신기기 등 하이테크 부문의 수출은 $350억에서 $2,200억으로 연평균 43.5% 증가하여 2005년엔 전체 수출의 28%를 차지하였고 산업용 기계류를 포함하면 50%를 넘는다. 이제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IT 수출국이다. 산업혁명기 영국의 맨체스터가 그렇게 불렸듯이 이제 중국은 ‘세계의 공장(workshop of the world)’이라 불린다.
중국이 몰려온다: 신황화론(China Bashing)
의류, 장난감, 가구, 전자제품 등 중국의 저가품에 시달리는 미국 회사들은 중국정부가 위안화를 실제가치보다 낮게 고정하고 기업에 보조금을 주며 노동운동을 탄압하여 임금을 낮게 묶어두는 식으로 불공정한 경쟁을 하기 때문에 기록적인 무역흑자를 거두는 것이라 주장하면서 3백만에 달하는 미국의 일자리를 훔쳐갔다고 비난한다. 사실이야 어떻든 ‘표’를 의식한 미국 의회는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지는 논외로 하고) 중국 수입품에 고율관세를 때려야 한다고 립 서비스를 아끼지 않는다. 미국만이 아니다. 일본인은 중국이 진공청소기처럼 일본기업의 투자를 빨아들이기 때문에 일본의 산업이 ‘공동화’될 뿐 아니라 저가품을 일본시장에 쏟아 부어 디플레이션을 조장한다고 비난한다. 1980년대 ‘일본 때리기(Japan Bashing)’가 세계인의 스포츠였다면 2000년대의 인기종목은 ‘중국 때리기(China bashing)’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중국은 다른 나라에 물건을 파는 만큼 물건을 사간다. 중국은 캐나다, 멕시코에 이어 미국의 3번째 수출 시장이다(2006년). 중국이 천문학적인 무역흑자를 낸다고 비난하지만 중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절반은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이 하는 것이고 나머지 절반도 미국 국내에서 만들어지던 것이 아니라 대부분 한국, 대만 또는 홍콩에서 수입하던 것들이다.
1988년 미국의 신발수입은 60%가 한국과 대만에서 온 것이고 중국산은 2%에 불과했지만 2004년 중국의 점유율은 70%가 되었다. 같은 기간 컴퓨터 역시 다른 아시아 국가로부터의 수입은 줄고 중국의 점유율이 올라간다. 결과적으로 중국의 수출이 늘었다고 미국이 손해를 본 것은 별로 없다.
그렇다고 한국이 손해를 봤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중국은 미국과 유럽에선 흑자를 보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겐 적자를 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중국의 무역수지는 그렇게 크지 않다. 2003년의 중국의 수출은 32% 늘었지만 수입 역시 41% 증가하여 무역흑자 규모는 GDP의 1%에 불과했다. 중국이 컴퓨터를 수출하면 한국은 중국에 마더보드와 메모리를 수출한다.
중국이 미국시장을 차지하는 동안 한국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처럼 중국보다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드는 산업의 비중이 늘어나 중국에 자본재와 중간재를 수출하면서 미국시장에서 잃은 것보다 더 큰 이득을 보았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의 최대 수출시장이다.
중국의 수출에서 중국 내에서 더해지는 부가가치는 30%에 불과하며 나머지 70%는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한국과 일본은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고 중국은 싼 노동력을 활용하여 이를 가공하여 완제품을 수출한다(표1). 한국이 수출을 하면 할수록 일본으로부터 수입이 늘었던 것처럼 중국은 미국과 유럽에 대해 무역흑자를 낼수록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적자는 늘어난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벗어나고 일본이 10년을 끈 헤이세이 불황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중국특수’ 때문이었다.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한 이후 중국의 수입이 극적으로 팽창하면서 일본의 대중국 수출은 연평균 40~50% 증가하였다.
표1 중국의 국가별 수입비중(%)
1980 1990 1995 2000 2002 2003
일본 26.5 14.2 21.9 17.8 18.1 18.0
대만 11.2 11.3 12.9 12.9
한국 0.4 7.8 10.0 9.7 10.4
아세안 3.4 5.6 7.4 9.3 10.4 11.3
EU 15.8 17.0 16.1 13.3 13.1 12.9
미국 19.6 12.2 12.2 9.6 9.2 8.2
중국이 누군가의 일자리를 훔친다면 그 누군가는 미국이나 한국이 아니라 중국처럼 저임금에 의존하는 멕시코 같은 나라이다. 미국의 경우 중국의 저가수입품 때문에 회사가 문을 닫거나 중국이나 인도로 공장을 옮기면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2001~3년 사이 100만 명으로 추정되며 이들 중 70%는 6개월 이내에 새 직장을 얻었다(미국보다 고용과 해고가 자유롭지 못한 독일에서 그 비율은 40%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매년 3000만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만들어지기를 반복하는 미국의 노동시장에서 100만 명 정도는 큰 의미가 없다.
일자리와 시장을 훔친다고 중국을 공격하지만 경제규모로 볼 때 중국은 (수출주도의) 한국이나 일본보다는 (내수주도의) 미국에 더 가깝다. 미국경제에서 (수입과 수출을 합한) 무역의 비중은 GDP의 1/5에 불과하지만 중국경제에서 수출은 GDP의 36%(2005년)를 넘기 때문에 무역비중이 3/4을 넘는 한국에 더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국은 수입 역시 34%를 넘기 때문에 중국경제의 수출의존도는 한국만큼 크지 않다(그림1). 2005년 중국의 GDP 성장률은 10%를 상회했다. 그러나 이중 수출이 기여한 비중은 1%포인트를 약간 넘을 뿐이고 나머지는 내수성장에 의한 것이었다(그림2).
그림1 수출과 수입의 GDP 비중
그림2 2005년 경제성장률 (%)
중국이 다른 나라의 피를 마시며 커간다고 두려워하기 전에 중국이 왜 자전거 수출에 성공했는가를 생각해보자. 1995년 광저우 시의 교통량은 1/3이 자전거였지만 2002년 그 비율은 20% 이하로 떨어졌다. 중국인들이 자전거를 버리고 자동차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내수가 반감되면서 중국의 자전거회사들은 수출 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2002년 중국의 자동차 판매는 처음으로 100만대를 넘어섰다.
그러나 중국에서 팔리는 자동차의 95%는 외국회사나 (외국자본과의) 합자회사가 만든 것이다. 독일 자동차 회사인 폭스바겐에게 중국은 독일 다음으로 큰 시장이며 포드에겐 독일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규모가 큰 시장이다. 다른 산업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외국기업이 중국에 진출하는 이유는 세계시장으로 수출하려는 생산기지로 중국을 활용하거나 중국의 거대한 내수시장을 공략하려는 두 가지이다. 일본과 미국 기업들은 중국 내수시장보다는 중국 밖으로의 수출을 위해 중국에 진출하고 한국의 기업들은 생산기지로서만이 아니라 중국자체의 시장을 염두에 두고 중국에 투자한다. 1994년 이후 중국의 수출증가는 2/3가 다국적기업과의 합자회사에 의한 것으로 그 비율은 매년 1~2%씩 증가하여 2005년 중국의 총수출에서 외국자본의 비율은 55%였다. 한국에도 진출한 하이얼 전자와 같이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할 가능성이 보이는 회사도 있지만 100% 중국인 소유의 기업은 대부분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생산기지가 목적이든 내수시장이 목적이든 일반적으로 외국자본이 만드는 제품의 반은 중국 안에서 팔린다. 물론 중국이 수입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 자본재, 중간재와 원료이고 완제품의 형태로 수입되는 것은 거의 없다. 중국인이 소비하는 것은 거의 중국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중국에 진출한 미국회사가 중국시장에서 물건을 팔더라도 미국의 공장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것이 아니므로 미국의 노동자가 직접적으로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니며 미국회사가 중국에 공장을 지으면서 중국에서 물건을 만들어 미국에 역수입하면서 미국의 일자리를 줄이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미국의 회사들이 중국에 투자하지 않았다면 가격경쟁력이 약해져 수익성이 악화되었을 것이고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투자여력이 없어졌을 것이므로 어차피 중국으로 이전하지 않았더라도 일자리는 사라졌을 것이다. 오히려 수익성이 개선되면서 중국에 만든 일자리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미국에 만들 수 있었다. 1990년대 미국의 2500개 기업이 해외에 만든 일자리는 290만이었지만 확장된 해외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에서 엔지니어, 금융, 마케팅 전문가를 고용하면서 550만의 일자리를 만들어 미국에 머물러 있던 기업보다 해외에 진출한 기업의 고용이 더 빠르게 증가하였다. 미국의 기업과 정치가들이 중국 때문에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비난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일자리를 훔친다, 시장을 싹쓸이한다는 등 부자나라들의 불평은 자신들의 문제를 누군가에게 전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미국의 방대한 무역적자는 미국의 낮은 저축률 때문이며 무역적자에서 중국의 몫도 생각처럼 크지는 않다(그림3). 미국은 무역적자가 ‘Made in China’라고 비난하지만 미국의 적자는 사실 ‘Made in USA’이다. 일본의 디플레이션이 중국 때문이라는 것도 근거가 없다.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일본 GDP의 1.5%에 불과하다.
그림3 미국의 무역적자 (GDP 비율)
시장과 분업: 무역은 모두가 승자인 게임이다
그러나 중국은 모든 것을 싸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모든 산업의 일자리는 중국으로 옮겨갈 것이라 반박할지도 모른다. 중국은 이미 전세계의 복사기, 전자레인지, DVD 플레이어와 신발의 2/3, 디지털 카메라의 반, PC의 2/5를 만든다. 하지만 무역은 할수록 몫이 커지는 게임이지 정해진 파이를 놓고 서로의 몫을 뺏는 제로섬(Zero Sum) 게임이 아니다. 무역이란 게임에선 더 많은 사람이 참가할수록 판돈이 커져 모두가 이익을 본다.
중국이 수출로 돈을 벌면 그만큼 다른 나라로부터 수입도 늘리기 때문에 결국 모두가 돈을 번다. 2002년 G3(미국, 유럽, 일본)의 경기가 둔화되었을 때 미국의 총수출은 2% 늘었지만 대중국 수출은 21% 증가하였다. 2001~3년 중국이 세계경제 성장에 기여한 비중은 (구매력 기준으로) 24%로(그림4) 중국과 함께 BRICs라 불리는 인도, 러시아, 브라질의 기여분을 합친 것의 두 배이다. 2020년까지 세계경제는 2005년의 2/3배 성장할 것이며 그 반은 미국, 중국, 인도(중국만으로는 27%)로부터 나올 것이다(2006년 EIU의 예상).
그림4 세계 GDP성장에서 중국의 비중 (%)
중국의 발전은 세계시장의 크기를 늘렸다. 아담 스미스의 말대로 무역의 규모가 커져 시장이 커지면 세계노동분업의 범위가 커지면서 효율성이 올라가 같은 돈을 투자하여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더 싸게 팔 수 있다.
중국과 경쟁관계인 부자나라의 산업에서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중국이 수출로 버는 돈은 다시 부자나라로부터 수입하는 것에 쓰여지고 중국의 수요가 늘어난 만큼 부자나라에선 자신들이 중국보다 더 잘 만들 수 있는 (그러므로 중국이 사가야 되는) 고부가가치 산업이 성장한다.
국가의 부는 그 나라가 얼마나 많이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그 나라가 파는 물건의 가격이 그 나라가 사들이는 물건보다 얼마나 높은가에 의해 결정된다. 중국이 만드는 물건의 가격은 떨어져 왔다. 지난 10년간 미국의 의류와 신발 가격은 30% 떨어졌다. 중국은 부가가치가 낮은 노동집약적 상품의 가격을 더욱 떨어뜨려 부자나라 소비자의 실질소득을 늘려주었다.
그러나 중국이 수입하는 재화의 가격은 높아져 왔다. 중국의 수요가 늘면서 중국이 수입하는 자본, 기술집약적 상품과 서비스, 그리고 석유, 알루미늄, 동과 같은 원자재의 가격은 올라갔다. 2000년부터 국제유가는 3배가 올랐다. 지난 6년간 유가가 오른 이유는 과거 오일쇼크와는 달리 산유국들이 공급을 통제했기 때문이 아니라 시장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늘어난 수요의 1/3을 차지했다. 중국의 1인당 석유소비는 미국의 1/15에 불과하므로 중국의 개인소득이 늘면서 중국의 에너지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미국인 2명 당 한대의 자동차가 있지만 중국은 70명당 한대의 자동차가 있다.
그러나 이전의 오일쇼크와 달리 2000년 이후 역대 최고치의 유가폭등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물가는 오르지 않았고 경제성장률 역시 상승세를 보였다. 중국의 석유수요로 유가가 올랐지만 카메라에서 컴퓨터, 전자레인지, 자전거까지 중국이 수출하는 상품의 가격은 여전히 낮기 때문이다.
중국을 선두로 한 신흥경제(emerging economies)의 부상이 위협이 될 것인가 기회가 될 것인가는 이익은 극대화하면서 손실은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에 달려있다. 말하자면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머뭇거리지 말고 가망이 없는 산업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중국이 우위를 가지지 않은 고부가가치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으로 자본과 노동력이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경제는 더욱 유연하게 되어야 한다.
EU 집행부는 유럽이 중국과 인도의 부상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면 2050년경 1인당 GDP는 8% 더 높을 것이고 연평균 0.2% 더 성장할 것이지만 유럽이 보호주의로 선회하여 문을 닫아건다면 1인당 GDP는 8% 더 낮을 것으로 보았다.
세계화는 과거에도 있었다. 징기스칸의 정복전으로 동서양이 연결되면서 무역로가 열렸던 것(페스트와 함께 끝났다)과 산업혁명으로 유럽경제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 과정 자체(대공황과 함께 끝났다)가 세계화였다. 그러나 1980년대 시작된 세계화의 스케일과 속도는 유래가 없는 것이며 그로 인한 경제적 부 역시 전례가 없는 것이다. 세계화로 미국은 매년 $1조(가구당 $9,000)의 이득을 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세계화로 경제 전체는 득을 보지만 그 혜택은 고르게 돌아가지 않는다. 실제 세계화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지지는 크지 않다. 세계화로 일자리를 잃거나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어진 이들이 많아지는 한 사회적, 정치적 반대는 늘어날 수 밖에 없다(그림5). 세계화에 대한 계속된 지지는 세계화로 보통 유권자가 얼마나 부유해졌다고 느끼는가에 달려있다.
그림5 G10 국가에서 임금의 GDP 비중 (%)
넘쳐나는 노동력
시장이 크면 경쟁자 역시 많다. 시장이 세계적인 규모로 커지면 그만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 밖에 없고 경쟁 때문에 상품의 가격이 낮아지면 기업의 이윤도 낮아지면서 세계화의 혜택은 낮은 물가란 형식으로 소비자와 노동자에게 재분배된다. 실제 지난 10년간 인플레는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세계화는 물가와 함께 임금도 함께 낮추었다.
BRICs가 세계경제에 편입되면서 지난 10년간 전세계의 노동인구는 15억에서 30억으로 2배가 되었지만(세계인구의 1/5이 사는 중국의 비중은 늘어난 15억의 절반이다) 자본총량은 변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자본은 귀해지고 노동은 흔해지면서 자본에 대한 노동의 상대가격 즉 임금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중국의 민간부문 고용은 매년 2,500만이 증가하여 한국만한 산업국가가 매년 하나씩 더해지는 셈이다. 매년 수백만 명이 농촌에서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살아남으려는 국영기업은 비용절감을 위해 잉여인력을 털어내고 있다. 4대 국영은행의 한곳에서만 11만이 해고되었다. 물론 인력이 부족해진 연안도시의 최저임금수준은 2005년 20% 올랐다. 그러나 중국에서 부족한 것은 숙련된 관리자, 기술자이지 생산직 근로자가 아니다. 지난 10년간 중국의 임금은 매년 10%씩 올랐지만 이는 생산성 증가에 따른 것이지 노동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중국은 앞으로 (최소한) 20년간 농촌에 거주하는 2억 명을 더 고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잉여노동력이 넘쳐나기 때문에 중국의 임금상승률은 생산성을 따라가지 못한다. 생산성이 빠르게 증가하고 중국의 산업구성이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옮겨가면서 중국의 생산단위당 노동비용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노동과 자본의 상대가격: 떨어지는 임금, 오르는 이윤
대부분의 OECD 국가의 GDP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수십 년 내 최저수준이고 반대로 기업이윤의 비율은 올라갔다(그림6). 미국에서 기업이윤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01년 7%에서 2006년 13%로 늘어 기업의 이익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미국에서 77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고 유럽과 일본에선 27년 만에 최고치였다. 서구의 자본가들이 세계최대의 공산국가에게 감사해야 되는 상황은 아이러니하다.
그림6 G7 국가의 기업이윤 (GDP의 %)
소득이 노동자로부터 자본가로 재분배된 것은 저임금 국가로 생산기반을 옮기면서 비용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지만 언제든지 생산기반을 옮길 수 있기 때문에 노조의 협상력이 약해진 것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자신의 존재만으로 부자나라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떨어뜨렸다. 중국으로 빠져나가는 일자리는 실제 그렇게 많지 않지만 공장을 옮긴다는 위협만으로도 노조는 임금을 올려달라고 말하기 어려워진다.
독일의 몇몇 대기업의 경우 공장이전을 고려할 수 있다는 위협만으로 임금삭감에 성공했다. 생산성이 오르면 그만큼 임금이 오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협상력이 약해진 결과 2001년 미국의 노동생산성은 15% 올랐지만 실질임금은 4% 떨어졌다. 중국으로 생산기반을 옮긴 기업의 생산성과 채산성이 좋아지면서 모국의 일자리를 늘렸기 때문에 중국으로 옮길 수 없는 직종의 임금은 올라갔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노동자의 실질소득은 정체되거나 감소했다.
중국 등의 신흥경제가 일자리를 뺏는다고 아우성이지만 중국의 위협은 일자리가 아니라 임금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무역과 해외이전은 부자나라의 고용의 총량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노동시장이 유연하다면 제조업에서 일자리가 없어지더라도 다른 곳에서 새 일자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고용의 총량보다는 고용의 구성에 영향을 준다. 신흥경제와의 무역으로 피해를 입는 것은 신흥경제에 넘쳐나는 저숙련 단순노동자들이지 대다수 노동자들은 득을 본다고 흔히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중국과 인도의 대학에선 매년 미국, 일본, 유럽을 합친 것과 맞먹는 120만의 엔지니어와 과학자가 배출되며 10년 후 그 수는 3배가 될 것이다. 1970년 미국의 대학생 수는 전세계 대학생 수의 20%였지만 지금은 12%에 불과하다. 물론 양과 질은 다르다. 중국의 공대 졸업생 중 1/10(인도는 1/4)만 미국 대기업의 채용기준을 만족시킬 정도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질적 문제는 개선되고 있다. 신흥경제는 단순노동자의 수만 늘린 것이 아니라 숙련노동자의 수도 늘렸다.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블루칼라 일자리뿐 아니라 프로그래밍, 의료, 엔지니어링 디자인, 법률, 회계, 비즈니스 컨설팅 등 이전에는 국제경쟁과는 무관하던 일자리까지 세계시장에서 구매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물론 해외로 옮겨지는 서비스업의 일자리는 미국의 경우 100만에 불과하며 2015년에도 340만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노동시장 규모를 생각할 때 그 정도 수치는 미미하다. 그러나 해외이전이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임금에 압박을 주기는 충분하다. 2000년부터 미국 대졸자의 평균임금은 6% 하락하였다.
분배문제의 세계화
세계화로 기업의 이윤은 늘었지만 대다수 노동자의 실질소득은 제자리이거나 오히려 떨어졌다. 세계화는 힘의 균형을 기업에 유리하게 바꾸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이 세계화의 혜택을 보지 못한다면 수입장벽을 쌓으라거나 기업의 해외이전을 제한하고 기업에 중과세를 하라는 요구는 거부하기 힘들게 될 것이다.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을 경우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목소리는 높지 않다. 유럽의 경우 미국보다 해외이전에 대한 반대는 낮은 편이다. 그러나 과거의 해법이 지금도 먹힐 것인지는 의문이다.
세계화의 열매를 공평하게 분배하려는 정책은 실패할 수 밖에 없으며 (무익하기보다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기업은 취향에 맞는 곳으로 옮겨가면 그만이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시장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고 가망이 없는 오래된 산업에서 더 임금이 높고 미래가 있는 산업으로 자본과 노동이 쉽게 옮겨지도록 하고 노동자들이 미래의 직업에 대비할 수 있게 교육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부자나라들이 후발국의 가난이 아니라 그들의 성공 때문에 법석을 떤다는 자체가 그들에 대한 찬사이며 역사적인 진보이다. 그러나 세계화로 모든 나라가 득을 보면서 그 혜택은 고르게 돌아가기는커녕 어떤 이들에게 세계화는 실업을 의미하고 대다수에겐 낮은 월급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세계화로 손해를 본 이들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자유무역에 대한 정치적 지지는 사라질 것이다. 각국 정부의 과제는 기업의 경쟁력을 지키면서 어떻게 세계화의 열매를 공평하게 나누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석우
30호 (2006.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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