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부터 월마트가 납품업체에게 의무화한 전자태그가 바코드를 대체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전자태그가 바코드만큼의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하겠지만 납품업체 자신의 공급망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파급효과는 유통에 머물지 않고 경제전반에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바코드와 유통혁명
바코드가 처음 고안된 것은 1932년이지만 70년대까지 바코드는 학계의 이론적 장난감일 뿐이었다. 그러나 1974년 미국 소매업계 1위인 K 마트와 경쟁자인 월마트가 납품업체들에게 바코드 부착을 의무화하면서 바코드는 유통업계의 표준이 되었고 80년대 말부터 바코드는 지구상 어디에나 있는 공기 같은 것이 되었다.
유통업계에선 UPC(Universal Product Code)라 불리는 바코드가 표준이 되면서 유통의 권력은 메이커에서 유통업자에게 이전된다. 슈퍼마켓이 처음 생겼을 때만해도 대규모 식품업체와 제조업체들이 판촉사원을 파견하여 전국 각지의 슈퍼마켓과 매일 수천 건의 흥정을 벌였다.
이 흥정에서 칼자루를 쥔 것은 대기업의 영향력을 휘두르는 공급업체였고 그들은 자신의 시장에서 왕으로 군림했다. 대기업은 시장에 광고를 쏟아 부어 판매물량을 키웠고 물량을 근거로 원자재를 대량 발주하여 원가를 낮추었으며 낮은 원가를 무기로 다시 판매물량을 키웠다.
그러나 바코드가 도입되면서 유통의 주도권은 대형 소매업체에게 돌아간다. 바코드의 정보를 읽어 들이면서 어느 물건이 잘 팔리는지, 그 물건은 어느 시간대에 얼마나 팔리는 지, 가격은 어느 정도가 좋은지 알게 된 소매업체는 ‘이 물건을 얼마짜리로 팔고 싶으니 그 가격에 이 만큼을 만들어 언제까지 납품하지 않으면 당신과 거래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1970년대부터 시장의 수요보다 공급이 과잉인 상태가 지속되면서 더 효율적으로 물량을 소화하는비결이 된 바코드의 정보를 쥔 대형 소매업체는 시장의 왕이 되었다. 최근 바코드를 대체할 것으로 여겨지는 전자태그(RFID: 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가 정착되면 힘의 균형은 소매업자에게 더 유리하게 될 것이다.
전자태그(RFID)
전자태그는 자동 ID 시스템의 일종으로 1932년 레이더로 적기와 아군기를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 정보를 읽으려면 스캐너가 인쇄된 코드를 ‘보아야’하는 바코드와 달리 전자태그는 리더가 전파(HF와 UHF 두 가지가 사용된다)를 쏘면 전파가 닿는 범위 안에 있는 태그의 안테나가 전파를 에너지로 바꿔 내장된 칩에 전원을 공급하고 칩은 입력된 정보를 전파로 발사한다.
쌀알 정도 크기인 전자태그는 교통카드, 신용카드, 여권, ID 카드 등에 응용되고 있으며 도난방지를 위해 1990년대부터 자동차 키에 부착되고 있다. 그러나 전자태그의 가장 유망한 적용분야는 물류와 재고관리이다.
재고관리와 전자태그
영화 ‘리크루트(The Recruit)’를 보면 콜린 파럴이 연기하는 CIA 요원이 이중첩자를 따돌리기 위해 자신의 옷에게 부착된 전자태그를 개 목걸이에 다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처럼 다른 자동 ID 시스템과 다른 전자태그 만의 장점은 움직이는 물체를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코드 대신 전자태그 시스템을 운용하는 도서관의 경우 이용자가 책을 몰래 들고 나가는지 쉽게 체크할 수 있다.
전자태그를 물류에 적용하면 상품의 흐름을 적은 비용으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바코드 시스템에선 내용물을 확인하려면 박스를 열고 하나씩 바코드를 스캔해야 하지만 물체를 통과할 수 있는 전파를 정보의 전달매체로 사용하는 전자태그 시스템에선 상자를 열지 않아도 상자 채로 스캔 하면 내용물에 부착된 모든 칩의 정보를 수집할 수 있기 때문에 박스 채로 읽은 다음 창고에 적재하면 되고 적재한 후에도 어디로 옮겨졌는지 바로 파악할 수 있다.
세계최대의 유통업체인 월마트의 2004년 총매출은 $2850억이며 이중에서 10%는 물류비용이다. 월마트의 바코드 시스템이 전부 전자태그 시스템으로 바뀔 경우 물류비용에서만 $84억에 달하는 경비절감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포츈 500대 기업 중 절반은 총매출이 $80억을 넘지 않는다.
$67억: 파렛트와 케이스에 인쇄된 바코드를 스캔 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절감되는 인건비로 총 인건비의 15%가 절약된다.
$6억: 아무리 물류망(Supply Chain)이 효율적이라도 재고가 없어 못 파는 경우가 많다. 재고현황이 정확하게 제때 파악된다면 매출이 늘어난다.
$5.75억: 언제든지 물건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다면 종업원이 창고에서 상품을 훔치기 힘들어진다.
$3억: 1년에 월마트의 물류센터(distribution center)를 거쳐가는 10억 개가 넘는 파렛트와 상자를 더 효율적으로 트랙킹한다면 상당한 비용이 절감된다.
$1.8억: 물류센터와 납품업체 창고에 어떤 물건이 얼마나 있는지 쉽게 파악된다면 재고부담과 운송비용을 줄일 수 있다.
비용이 절감된 만큼 가격을 낮출 여지가 생긴다. ‘언제나 최저가(Lowest Price, Everyday)’란 박리다매전략으로 업계선두자리를 차지한 월마트로선 총매출의 3~4%에 달하는 경비절감은 엄청난 것이다.
월마트 ‘칙령’을 내리다
월마트는 2003년 6월 상위 100대 협력업체는 2005년 1월까지 상위 200대 협력업체는 2006년 1월까지 600대 업체는 2006년 12월까지 전자태그를 의무적으로 부착해야 한다고 ‘선포’한다. 그러나 당시 RFID가 무엇의 약자인지도 모르던 협력업체들에게 월마트의 말은 외계어로 들렸다.
2003년 11월 월마트가 협력업체들을 초청해 전자태그가 무엇이고 그것을 이용하려면 어떤 시스템을 구축해야 되며 무슨 이점이 있는가 설명할 때 협력업체 관계자들은 핵물리학 세미나에 잘못 들어온 사람처럼 멍하니 듣기만 했다. 그리고 회사로 돌아와 월마트의 요구에 맞추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협력업체들의 ‘어리둥절’은 ‘난감’으로 바뀐다.
전자태그: 준비되지 않은 기술
우선적으로 전자태그를 채택하도록 지정된 100개업체중 반은 전자태그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기술을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 실험을 해보고 그들이 내린 결론은 물류에 적용하기에 RFID 기술은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월마트도 전자태그가 당장 쓰기에는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월마트는 현재의 어려움보다는 미래의 비용절감효과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자신의 결정을 밀어붙였다. 누가 뭐래도 월마트는 유통업계의 왕이고 왕이 원하면 납품업자는 따라야 한다.
치열한 경쟁 때문에 이윤율이 낮은 소비재 시장에서 매출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지만 생산업체가 매출을 늘리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크다. 월마트의 경우 주문량을 무기로 납품단가를 후려치기 마련이고 후려친 가격만큼 월마트의 매출이 늘어나면 납품업체의 매출도 늘어난다. 그러나 매출증가가 월마트 영업력에 의존한 것이 때문에 매출이 늘어난 만큼 제조업체에 대한 월마트의 요구는 더 많아진다. 질레트, 웰라, 듀라셀 등의 브랜드를 소유한 P&G는 2005년 전세계 매출의 17%를, 다국적식료품업체 캠벨(Campbell)은 매출의 12%를 월마트에 의존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월마트에게 좋은 것은 납품업체에게도 좋은 것이다. 전자태그 시스템이 도입되어 재고와 판매에 대한 정보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얻게 되면 제조업체 역시 수요예측을 더 정확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비용을 줄이면서 매출도 늘어난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듯이 문제는 디테일이다. 전자태그를 의무화하면서 윌마트는 모든 비용은 협력업체가 부담해야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2003년 IT업계의 예측으로는 유통업에서 전자태그가 보편화되면 전자태그의 생산량은 연간 백만 단위에서 십억 단위로 증가하여 전자태그 관련 하드웨어 시장규모는 수십억 달러 규모가 될 것이고(TI 자료) 관련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는 2008년경 $32억 규모로 성장하여 Y2K 수요보다 더 클 것으로 보았다(ABR Research). 월마트와 마찬가지로 영국의 테스코(Tesco)와 독일의 메트로(Metro), 미 국방성 역시 2005년부터 전자태그를 의무화한다고 발표하면서 전자태그는 업계의 대세가 된다. 월마트가 2톤짜리 고릴라라면 국방성은 20톤짜리 고릴라이다.
그러나 2005년 1월 시한을 몇 달 남겨 놓은 2004년 말 100대 납품업체가 전자태그 시스템에 투자한 총액은 $2억5천만에 불과했다. 업계추산으로는 전자태그 시스템이 충분한 효과를 보기 위해선 업체당 최소 천3백만에서 2천3백만 달러를 투자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실제 100대 업체들이 투자한 것은 백만에서 3백만 달러이다. 이 정도로는 월마트는 만족시킬지 몰라도 납품업체 자신의 재고관리, 작업흐름의 개선을 바라기는 어렵다.
월마트의 협력업체들은 전자태그 시스템에 대한 투자가 월마트에겐 어떨지 몰라도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최소한의 투자로 시늉만 낸 것이다. 가전제품, DVD, 의약품, 고급의류, 스포츠 용품과 같이 전자태그의 단가가 원가에 큰 부담이 안 되는 고가제품을 만드는 업체들은 자발적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했지만 화장지나 치약과 같은 저가품을 만드는 업체의 경우 현재 현재 단가로는 제품 자체보다 비싼 전자태그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2005년 4월경 월마트에 납품되는 파렛트 중 전자태그가 부착된 것은 한 달에 1300만으로 2004년 말보다 10배 증가했지만 전자태그가 실용화되려면 개당 5센트 정도로 단가가 떨어져야 한고 이 정도 가격이 되려면 매달 전자태그의 물량이 천만 단위가 아니라 수십억 단위가 되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1300만 정도의 물량으로도 가격은 2년 전 개당 $1에서 20 센트로 떨어졌고 전자태그의 의무화가 확대되면 실용적인 수준으로 단가가 내려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러나 업체에게 부담이 되는 것은 태그의 단가만이 아니다.
RFID 관련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2005년 1월 시한을 맞추어야 하는 업체의 입장에서 전자태그는 불완전한 기술이다. 한 업체의 경우 납품 받은 태그의 30%가 불량이었다. 물론 불량품에 대해선 대금을 지불하지 않지만 불량을 확인하느라 작업효율이 떨어지면 비용은 당연히 올라간다. 불량률은 제조업체의 공정이 개선되면서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이다. 그러나 RFID 기술 자체의 한계 역시 비용을 증가시킨다. .
잉크 카트리지, 기저귀와 같이 액체나 금속을 함유한 제품은 전파를 흡수하거나 반사하기 때문에 그러한 소재로 만든 제품에 부착된 전자태그의 가독율은 현저하게 낮아진다. 첫 번째 시한인 2005년 1/4분기가 되었을 때 월마트의 물류센터에 납품된 파렛트와 케이스의 전자태그 인식률은 63%에 불과했다. 가독율을 높이기 위해선 칩과 리더의 성능이 개선되어야 한다. 물론 RFID 관련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현재의 기술수준에서 시한까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납품업체로선 제품 자체의 설계와 포장을 바꾸어야 하며 이는 곧 비용이다.
2004년 말 대부분의 업체들은 데드라인에 맞출 수 없을 것이라 답했고 월마트 자신도 협력업체에 대한 요구수준을 계속 낮추었다. 처음에 월마트는 해당업체가 납품하는 파렛트와 케이스는 100% 전자태그가 부착되어야 하고 인식률도 100%여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협력업체들의 원성에 굴복하여 목표치를 65%로 낮추었다. 그러나 업체들은 시한 안에 할 수 있는 수준은 10~15%로 보았다. 해당업체 중 월마트의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업체는 30%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시늉만 내는 수준이었다.
조용한 혁명: 물류는 흐름이다
2005년을 시한으로 처음 전자태그를 도입할 당시 협력업체들은 전자태그 시스템이 왜 필요한지, 문제가 많은 기술을 왜 지금 무리하게 도입해야 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자태그 시스템에서 얻어지는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30분 안으로 협력업체에 전달되며 바코드 시스템으로 얻을 수 없는 정보를 제공해준다. 그러나 그들이 보기에 현재의 바코드 시스템으로도 재고를 파악하는 데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전자태그 시스템에서 새로운 것은 매장의 창고와 진열대에 무엇이 있는가 이다. 제조업체들은 그것만으로는 비용을 정당화할 수 없다 생각했다.
그러나 물건을 만드는 게 아니라 물건을 유통시키는 것으로 이익을 얻는, 근본적으로 물류업자인 소매업체에게 바코드로는 알 수 없고 전자태그만이 제공할 수 있는 정보는 중요하다. 진열된 상품이 다 팔려 진열대가 비면 매장직원은 창고에서 물건을 가져와 다시 진열한다. 그러나 문제는 상품이 얼마나 빨리 채워지는가 이다. P&G의 조사에 따르면 매장에서 진열대가 비는 비율은 평균 7%이며 인기품목의 경우 17%까지 올라간다. 가장 바쁠 때 점포직원이 진열대를 다시 채워 넣을 수 있는 비율은 1/12에 불과하다. 이 비율이 낮아지는 만큼 매상은 오르게 마련이다. 떨어진 물건이 무엇이며 그 중에 어느 것이 더 급한지 또 채워 넣을 재고가 창고 어디 있는지 쉽게 알 수 있고 무엇을 당장 주문해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면 그 비율은 비약적으로 낮아진다. 진열대에 상품이 떨어졌을 때(out of stock) 다시 채워지는(replenishing) 속도는 전자태그가 부착된 경우가 바코드의 경우보다 3배가 빨라 63% 더 효율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전자태그가 부분적으로만 적용되었는데도 재고가 없어 못 파는 비율은 16% 떨어졌으며 DVD 타이틀에 전자태그를 적용한 테스코의 경우 판매가 4% 증가하였다. DVD의 경우 비교적 높은 가격이므로 상품회전율이 높지 않아 몇 개씩만 진열되므로 진열대가 비는 경우가 많으며 진열대를 제때 채워 넣는 것은 판매에 큰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그러나 물건이 진열대에 있는지 창고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소매업체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질레트가 자사의 면도기에 대한 광고캠페인을 벌였다고 하자. 광고캠페인을 벌이기 전에 질레트는 그 제품이 소매점에 충분히 확보되어 있는지 파악하고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충분한 양을 캠페인 전에 보내 광고가 나갔을 때 그 제품이 진열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장부상으로는 재고량이 충분하게 나타나는데도 실제로는 창고에 없거나 실제 판매가 이루어지는 지점이 아니라 물류센터에 묶여 있어 재고 물량의 상당부분이 진열대에 제때 배치되지 않아 소매점에 확보되어 있는 물량도 소화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제조업체의 마케팅에서도 물건이 정확하게 어디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전자태그 도입에 적극적인 P&G의 경우 전자태그를 도입했을 때 얻는 이득의 80~90%는 위와 같이 소매업자와의 협력이 강화되는 데서 나올 것으로 보며 나머지 20%는 P&G 내의 작업효율이 높아지면서 얻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월마트가 생각하는 전자태그는 단순히 좀더 똑똑한 바코드가 아니라 물류 시스템의 혁명이다. 공급망의 핵심은 맞는 물건이 맞는 장소와 맞는 시간에 있게 하는 것이며 바코드 시스템은 그러한 요구를 충족시켜왔다. 그러나 바코드 시스템에선 상품이 입고될 때와 판매될 때 두 시점에서만 상품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으며 그 사이의 시간에 상품이 어떤가에 대해선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상품의 움직임을 추적하면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전자태그 시스템에서 정보의 블랙홀은 사라지고 물류가 일관된 하나의 흐름(flow)으로 파악되어(visibility) 창고 어디에 어느 제품이 얼마나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으며 사람이 일일이 물건을 셀 필요가 없어지므로 직접적인 물류비용도 줄어든다.
2005년 1월 전자태그 시스템이 설치된 월마트 점포는 104개소, 자회사 샘즈 클럽(Sam’s Club) 점포는 35개소였다. 2006년 1월엔 500개소에 전자태그 시스템이 설치되었고 2007년 1월엔 1000개소에 설치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대부분의 제조업체들은 현재의 POS 시스템의 데이터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시스템을 다루는 것이 비효율적인 것과 시스템 자체의 비효율성은 다른 문제이며 현 단계에서 전자태그는 장기적 비전의 문제이지 단기적 이득의 문제는 아니다.
뛰고 나서 생각하라(Launch and Learn): 시스템으로서의 기술
2003년 전자태그 의무화를 선언할 때까지 15년간 RFID 기술을 연구해온 월마트는 실용화하기엔 전자태그가 기술적으로 아직 미숙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계획이 거의 완료되는 2007년경이면 충분히 늘어난 수요로 RFID 칩의 가격은 실용화가 가능한 5 센트 선으로 떨어질 것이고 기술적 완성도 역시 해결될 것으로 예상하고 계획을 밀어붙였고 2006년 월마트 물류센터에서 전자태그 인식율은 100%에 가까워졌다. 물론 월마트는 RFID 기술이 충분히 성숙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러나 월마트가 전자태그의 도입을 서두른 것은 전자태그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기술은 기존의 시스템에 부품처럼 끼워 넣어질 수 있다. 그러나 전자태그처럼 그 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시스템이 필요하다면 회사의 경영 자체가 그 시스템에 맞춰져야 한다. 90년대 초 리스트럭쳐링이 유행할 당시 사무실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IT 기술이 도입되었지만 별 다른 성과를 보지 못한 것은 IT 기술에 맞춰 경영시스템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타자기와 우편물의 대체물로 여겨질 뿐이었다.
바코드 시스템의 자리에 전자태그 시스템을 기계적으로 대체해 넣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전자태그 시스템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경영시스템이 바뀌는 데는 시행착오의 시간과 비용이 든다. 그러나 기술의 가능성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경영시스템이 정착되면 뒤늦게 기술을 도입하는 후발주자가 따라잡기 어려운 경쟁우위를 얻게 된다.
전자태그 시스템이 제공하는 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해선 생산, 영업 등의 사업단위로 독립된 정보의 흐름이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 식료품업체인 캠벨의 사내에 운영되는 1400개의 소프트웨어에 통일된 표준기술은 없었다. 부서마다 사용하는 이메일 프로그램, 미들웨어, OS, 네트웍장비에 공통된 표준이 없기 때문에 부서간 연계는 물론 월마트와 데이터를 교환하기 위해선 중간에 인터페이스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을 거쳐야 했고 납품가격과 물량을 결정하는데 2주가 걸렸다.
그러나 실시간으로 물류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전자태그 시스템은 제조업자, 물류업자, 유통업자 사이에 통합된 정보흐름을 만들 것이며 제조업자 자신의 공급망 역시 흐름에 통합되어 생산에서 유통까지의 공급망 전체가 하나의 단일 시스템으로 만들 것이다.
이석우
30호 (2006.11.20)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