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이 시작된 이래 한국의 노동운동을 지배해 온 것은 강성노조이다. OECD국가의 역사를 보면 노동운동의 초기에는 강성노조가 지배하다가 회사와 공생을 추구하는 노조가 지배적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안정적 노사관계는 상호신뢰가 전제될 때만 가능하며 신뢰와는 거리가 먼 한국의 노동운동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고립된 노조
“한국에서 전투적인 노조는 고립되었습니다.” 2004년 영국을 방문한 노 대통령이 영국 CEO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노동운동에 호의적이었던 노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강성노조와 거리를 벌려왔다. “재야시절 노조의 권익신장을 위해 활동을 많이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2003)”, “내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노동운동을 해서 일부에서 친노조란 걱정이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반대이다(2004).”
2003년 두산중공업 노조의 무리한 요구는 취임 전부터 노 대통령을 애먹였고 취임 직후 철도노조는 노사협상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무리인 요구조건을 내세워 명분 없는 불법파업을 벌인다. 의원입법으로 발의된 철도개혁법안을 정부가 노조를 상대로 협상할 수는 없는 것이고 세금부담이 전제되는 고속철도부채와 연금문제를 협상테이블에 올릴 경우 지지율이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이때부터 노 대통령은 '법과 원칙'을 강조한다. 2004년 현대차 파업 등을 겪으며 대기업 노조와 민주노총에 대한 불신이 커졌고 이러한 불신은 2005년 기아차 노조와 부산 인천 평택 등 항운노조의 취업장사 수사(搜査)로 이어졌으며 2006년 포스코 불법난입을 법대로 처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전부터 소문이 무성하던 노조비리를 이 시점에 수사한 것은 정치적 선택이라 봐야 하며 강성노조의 투쟁이 벌어지면 노조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던 선례에 비춰 포스코 사태는 이례적이다.
불법행위가 따르기 마련인 강경투쟁에 이전과 달리 ‘법과 원칙’을 내세운 것은 노조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으로 굳어졌다는 뜻이다. 막무가내 전술이 노조의 주장을 관철하는데 효과적인 것 같지만 정부가 일관성 있는 전략을 지킨다면 언제나 노조의 백전백패이다. 1984년 강성노조였던 영국 탄광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했을 때 대처 수상이 공권력을 동원해 1년여를 맞서자 노조가 백기를 들었고 1981년 공항의 관제사 총파업 때 레이건 대통령은 업무복귀를 거부한 관제사를 해고하는 강수로 노조의 강경투쟁을 제압했다.
포스코 사태에서 정부가 강경대응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간 노조의 ‘막가파’ 투쟁에 대해 최악이 된 여론 때문이다. 특히 보수언론은 민주노총 중심의 강성노조를 ‘만악의 근원’이라고까지 말한다. 노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최대쟁점이 되어온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문제의 원인으로 정부와 언론은 대기업 강성노조의 집단 이기주의를 지적하고 있으며 노조의 강경투쟁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를 꺼려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물론 모든 책임이 노조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부분은 그들 때문인 것은 사실이다.
외환위기의 근원: 노조의 귀족화
한국 노동운동의 절정은 1987년이었다. 당시 노동운동은 임금이나 근로조건을 따지는 경제적 차원을 넘어 독재에 항거하고 인간적인 삶을 요구하는 정치운동이었고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임금을 착취당하는 사회적 약자로 여겨졌다. 그러나 90년대부터 노조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니라 강자로 군림했고 ‘노동귀족’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1997년 외환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재벌의 무리한 외화차입 때문이었다. 그러나 원인을 제공한 재벌의 입장에서 외환위기는 노조 때문이다. 1987년 이후 노조의 협상력이 강해지면서 임금은 생산성 이상으로 올라(그림1) 대기업의 경상이윤율은 평균 1~2%에 불과했고 낮아진 이윤은 재투자여력을 줄여 국제경쟁력을 악화시켰다. 기존 사업이 어려워지자 재벌은 이전의 관행대로 새로운 사업을 벌여 이윤율 압박을 상쇄하려 했지만 너도나도 다각화 전략을 구사하면서 재벌간의 경쟁만 심해졌을 뿐이고 과당경쟁으로 이윤율은 더욱 낮아져 새로 사업을 벌이기 위해 차입한 자금의 이자도 감당 못할 정도로 떨어졌다. 그 결과 외환위기 직전 3년간 대기업의 평균이윤율은 1% 이하로 떨어진다.
그림1 비농업부문 임금인상률
견디다 못한 기업들은 노동비용을 낮추기 위해 정부에 압력을 넣었고 1996년 4월 노동법개정 논의가 시작된다. 그러나 개악이라며 생존권보호를 외치는 노동계와 노조에 동정적인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1997년 3월 핵심쟁점인 정리해고를 2년 유예하는 개정안이 통과되고 그 해 11월 외환위기가 닥친다.
선진국의 사교클럽으로 불리는 OECD에 가입한 지 몇 달 만에 터진 외환위기는 IMF의 진단과 달리 외환부족 때문이 아니라 이윤압박에 시달린 기업들이 무리하게 차입한 외환을 잘못된 곳에 너무 많이 투자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잘못된 진단에서 나온 IMF의 처방은 적절하지 않았지만 한국경제의 운영논리를 바꾸어야 한다는 IMF의 생각은 적절한 것이었다.
IMF는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지 말고 소수의 재벌이 지배해온 시장에 룰에 따른 경쟁을 도입할 것을 요구하였고 이는 70년대부터 형성된 한국경제의 기본구조를 바꾸는 것이었다. 처음 IMF와 정부의 협상내용이 알려졌을 때 사람들은 ‘IMF는 I Am Fired(나는 해고되었다)를 줄인 말이다’라며 비아냥대거나, ‘제2의 국치’, ‘경제주권의 상실’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지만 막상 IMF 프로그램이 실행되었을 때 반대의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선거 중에 IMF와의 재협상을 주장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 후 태도를 바꾸어 IMF가 제시한 처방은 한국경제의 구원이라 말하면서 IMF가 요구한 것보다 더 철저하게 IMF의 프로그램을 실행에 옮긴다. 김대중 대통령과 정부의 관료들은 IMF의 요구를 핑계로 위기의 원인인 재벌을 길들이려 한 것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개혁의 대상이 된 재벌 역시 IMF 프로그램을 환영했다는 것이다. 재벌은 (그들이 보기엔) 자신의 목을 죄는 정부의 간섭과 규제를 공격할 무기로 IMF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그리고 정부와 재벌에게 IMF 프로그램은 외환위기의 또 다른 원인인 노조를 길들일 수단이기도 했다.
“지난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정부가 노동자들의 자율권을 인정하지 않는 대신 제공한 반대급부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노 대통령의 말이다.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한국의 노동정책은 억압적이었지만 종신고용, 연공서열제를 통해 직업안정성과 생계를 보장하였다. 그러나 노조에게 자유가 주어진 1987년 이후 (회사의 입장에서) 노조는 기득권은 자신의 당연한 권리로 보면서 회사로부터 최대한의 양보를 얻으려고만 할 뿐이었다. “이제는 노동자들도 자유가 주어졌으니 특혜도 해소되어야 한다.” 노 대통령의 말이다. 외환위기 이후 현실적 필요에 따라 노동자의 기득권을 허무는 정리해고제와 비정규직이 도입되면서 1987년 이래 노사관계의 핵심쟁점은 정부와 재벌의 승리로 끝난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은 다른 문제의 시작일 뿐이었다. 대기업의 정규직 고용은 지난 20여 년간 꾸준히 감소하여 2002년에는 20년 전인 1982년 수준의 반 이하로 떨어졌다.
비정규직의 증가와 숙련도: 도요타와 현대자동차
대기업 정규직의 특권인 종신고용(정년보장), 연공서열제(근무연한 즉 호봉에 따라 자동으로 임금이 오르는 제도)는 1950~60년대 일본에서 시작되어 70년대에 정착된 제도이다. 지금이야 일본의 노사관계를 협력, 상생의 모범으로 꼽지만 1950~60년대 일본의 노사관계는 ‘노동과 자본의 계급전쟁’이라 불릴 만큼 한국 못지 않게 (아마도 더) 대립적이었다.
한국에서도 보편화된 일본 특유의 하청시스템은 대립적 노사관계 때문에 만들어진 제도이다. 강성노조 때문에 임금이 오르고 마음대로 해고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일본기업들은 시장수요가 늘어도 사람을 더 뽑기 힘들었다. 고용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본 대기업들은 자체고용을 늘리는 대신 하청업체에 외주를 주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1952~57년 사이 도요타의 생산량은 5배 증가하였지만 고용은 15% 늘었을 뿐이다. 하청업체가 경기순환에 대한 버퍼가 되어주면서 원청회사는 시장수요의 변동과 무관하게 자사 직원의 수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고용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된 일본 대기업은 자사의 직원에게 평생고용과 연공서열제 같은 특혜를 주면서 노사관계를 안정시킬 수 있었다. 이후 종신고용, 연공서열제는 사별노조와 함께 일본경영의 3보라 불리게 되며 한국의 대기업들도 비슷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러나 정년보장, 호봉제와 같이 시간에 따라 고정비용이 증가하는 시스템은 시장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환경에서만 가능하다. 시장이 커지기는커녕 오히려 축소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 일본기업들은 비용이 많이 드는 평생고용, 연공서열제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일본회사들은 비정규 고용을 늘린다. 물론 일본 대기업에서 비정규직 즉 단기 계약직과 같은 고용형태는 과거에도 있었던 것이고 하청회사와 마찬가지로 수요변동에 대한 버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도요타의 경우 그 수는 많아야 2000명 정도로 전체직원의 10% 이하였다. 그러나 비정규직원의 수는 2006년 초 11000명에 이르러 전체고용의 38%에 이른다(그림2).
그림2 도요타의 비정규직 고용추이 (단위: 명)
외환위기 이후 현대자동차에서도 비정규직이 늘어난다. 1996년 16.9%였던 비정규 고용은 2002년 27.5%(실제 수치는 30%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까지 늘어난 이후 계속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도요타와 마찬가지로 현대자동차에서 비정규직이 늘어난 것은 비용이 많이 드는 정규직을 늘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도요타와 현대자동차의 비정규 고용증가는 결과는 같지만 원인은 다르다.
세계시장 점유율(2005년) 2위인 도요타(12.3%)와 6위인 현대자동차(기아를 포함하여 5.6%)는 수출비중이 높기 때문에 내수의 부침에 영향을 덜 받는다. 도요타가 비정규 고용을 늘리는 것은 다른 기업처럼 내수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비용을 줄이는 구조조정의 성격보다는 일본의 장기불황으로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수요변동을 예측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도요타의 생산량은 1990년 420만대를 정점으로 1995년 320만대로 줄어든다. 생산량이 감소한 것은 장기불황으로 내수가 위축된 수요측면도 있지만 출산율 저하로 노동인구가 감소하면서 고용도 줄었고 해외공장이 늘어 국내생산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일본자동차산업의 전체생산량 역시 1991년 1350만대로 사상최대를 기록한 이후 연간 1000만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미국의 경기가 좋아지고 일본의 내수가 살아나기 시작한 2001년 이후 도요타의 생산량은 360만대 수준으로 회복된다. 그러나 도요타의 경영진은 수요증가가 단기적인지 장기적인지 불확실하다고 생각했고 시장수요를 맞추기 위해 정규직을 늘리기 보다는 필요에 따라 해고할 수 있는 비정규직을 늘린다.
그러나 비정규직이 늘면서 도요타의 생산성과 품질이 낮아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고품질 저비용’으로 요약되는 도요타의 경쟁력은 다양한 역할을 동시에 해낼 수 있는 정규직원의 숙련도와 작업라인의 개선점을 자발적으로 찾아 개선하려는 참여의욕에서 나오기 때문에 도요타 공장에선 정규직원을 비정규직원으로 대체할 수 없다. 2004년 이후 일본경제가 본격적으로 회복된다고 판단한 도요타는 비정규직원을 정규직원으로 전환해주기 시작한다.
2001년 이후 현대자동차 역시 해외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늘린다(그림3). 그러나 정규직원은 생산라인을 맡고 비정규직은 보조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도요타와 달리 현대자동차의 정규직원과 비정규직원은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구로 같은 일을 한다.
그림3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고용추이 (단위: 명)
일본과 비교할 때 한국기업의 정규직원은 숙련도가 높지 않으며 회사 역시 직원의 기술수준에 큰 기대가 없다. 작업에서 실수하지 않는 정도면 회사는 대만족이다. 한국기업은 블루칼라 노동자에 대해 숙련도보다는 작업윤리를 강조할 뿐이며 직원교육에서 가르치는 내용도 군대식 정신교육에 가까운 주입식이고 기술교육 역시 실제 작업에 써먹을 수 있는 전문적인 것보다는 일반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그친다.
생산라인에 대한 권리가 상당부분 블루칼라에게 있는 일본과 달리 한국기업의 생산관리는 엔지니어의 권한이다. 일본에선 신모델의 시험생산은 기존 생산라인에서 숙련공에 의해 실험된다. 생산공정의 문제를 찾고 개선점을 생각하는 데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직원의 기술수준에 대해 큰 기대가 없는 한국의 경우 시험생산은 엔지니어가 관리하는 R&D 센터에 맡겨진다.
도요타에서 호봉은 직원의 숙련도와 연계된다. 오래 일한 만큼 숙련도가 높기 때문에 봉급이 올라가는 것이지 현대자동차처럼 단체협약에 따라 근무연한만큼 자동으로 임금이 오르지 않는다. 일본과 달리 직원의 기술수준이 높지 않은 한국에서 정규직원은 비정규직원으로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다. 누가 그 자리에 있더라도 별 차이가 없다면 마음대로 해고할 수 없고 시간에 따라 (회사 입장에서) 봉급만 높아지는 정규직원 대신 비정규직원을 늘리는 것이 합리적이다.
강성노조의 정치학: 신뢰의 부재
생산성을 결정하는 것은 숙련도만은 아니다. 직원의 기술수준에 대한 기대가 없으면서 한국기업들이 일본처럼 평생고용과 연공서열제를 채택한 것은 직원에게 회사에 대한 소속감을 주어 작업의욕을 가질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이며 노사분규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가이다. 그러나 제조업체의 노조들이 강성화되면서 (회사의 입장에서) 그러한 계약은 무효가 된다.
현대자동차에 노조가 만들어진 것은 1987년이다. 저임금과 긴 작업시간, 작업장에서의 억압적 통제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의 요구는 당시로선 정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노조의 발언권이 강해지고 노동조건이 개선된 후 노동운동은 밥그릇 싸움으로 바뀐다.
강성노조가 주류인 민노총계 노조들은 노사관계를 계급투쟁이라 생각하면서 임금과 이윤은 반비례관계로 회사의 힘이 센가 노조의 힘이 센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며 회사는 근본적으로 노동자의 몫을 뺐어야만 즉 착취해야만 이윤을 남기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본다.
“노조가 시작하기 전부터 파업부터 결정해 놓고 뜨거운 맛을 보여주려 하는데 이래서는 안 된다.” 노 대통령의 말이다. 그러나 노사관계를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의 투쟁으로 보는 노조의 관점에서 보면 원래 자기 몫을 뺐어 가는 착취자인 회사로부터 무언가 얻기 위해 강하게 나가는 것은 당연하며 파업은 조합원들이 ‘계급관계’를 체험하면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깨닫는 중요한 의식이다.
노조가 회사를 적대적으로 보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외환위기 이전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남발한 것은 그 정도 요구는 들어줄 여유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회사가 파산할 정도로 과도한 요구를 하는 노조는 없다. 월급을 줄 직장이 있고 나서 노조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영진이 이익이 얼마가 났는가 등의 경영정보를 노조와 공유하지 않는 기업문화에서 노조로서는 어느 정도 요구가 적정선인지 판단하기 어렵고 그러한 회사를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
반대로 회사 입장에서도 상대방을 적으로 보는 노조를 신뢰하기는 어렵다. 노사간의 신뢰관계가 없을 때 회사로선 평생고용과 연공서열제와 같은 비용을 계속 떠안을 이유는 없다.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합법화되면서 기업들은 정규직 채용을 최소화하는 대신 비정규직 비중을 늘려 왔다(그림4).
그림4 500인 이상 기업이 전체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율 (%)
공격은 최선의 방어(?)
2000년대 들어서도 노조의 과격성은 90년대와 별 다를 게 없지만 그 내용은 다르다. 90년대 노조의 전략은 회사와 이익의 분배를 놓고 다투는 공격적인 성격이었다면 2000년대 노조의 전략은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방어적 성격이다. 외환위기 이후 임금인상, 체불임금 등과 같은 직접적 분배와 관련된 갈등은 줄어들고 고용안정을 둘러싼 갈등이 대부분으로 사측의 고용조정을 예방하는 차원에서의 경영참여 요구가 급증한다(그림5,6).
그림5 발생원인 별 노사분규추이
그림6 노사분규추이
1998년 공장가동률이 50%로 떨어지면서 현대자동차는 만여 명을 정리해고한다. 이후 직원들은 자신이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며 비정규직은 회사의 무자비한 칼날을 대신 받아줄 칼받이가 된다. 회사가 어려울 때 해고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자신이 그 대상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해고되는 것은 필요악으로 얼마든지 인정할 수 있다. 2000년 단체협약에서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비율은 16.9%로 제한된다. 그러나 노사 양측은 그 합의를 지킬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바로 다음 해부터 비정규직 비중은 30%를 넘어선다.
그러나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주도록 되어 있는 노동법 상 현대자동차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은 불법이다. 외부의 비난을 의식한 노조는 협상 때마다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사측에 요구하지만 다른 사안보다 비중이 낮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단일 사업장 차원에서는 몰라도 노동운동 전체로 볼 때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것은 제 살 깍아먹기이다. 한국의 노조가입율은 1989년 19%를 정점으로 2004년 10.4%로 떨어져 1979년 이래 최저를 기록했다. 어느 나라든 노조는 제조업에 집중되기 마련이고 산업구조가 고도화되어 자본집약적이 되면서 제조업 고용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국의 노조가입율은 제조업 고용의 자연적인 감소보다 빠르게 떨어졌고 이는 노조에 가입할 수 없는 비정규직 비중이 늘었기 때문이다. 2005년 한국의 비정규직 비중은 전체고용의 40%에 달했다.
그림7 한국노조의 조합원수와 조직률 추이
역사는 반복된다
자동차 산업의 세계지도는 강성노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1936년 GM의 플린트 공장에서 처음 파업이 일어난 이후 미국 자동차업체들은 강성노조가 자리잡은 공장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생산기반을 노조가 없거나 약한 미국 내의 다른 지역이나 유럽으로 이전한다. 그러나 1950~60년대 유럽지역 공장에 강성노조가 자리잡자 미국과 유럽의 자동차업체들은 1970년대를 전후하여 브라질과 남아프리카에 공장을 세운다. 그러나 1980년대 브라질과 남아프리카에서도 강성노조가 자리잡으면서 당시 노동운동에 억압적이던 한국이 대안으로 떠올랐고 한국을 생산기지로 활용하려는 외국업체들과 합작한 현대, 기아, 대우가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한국 자동차 산업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강성노조가 자리잡은 1987년 이후 자동차 산업의 세계지도에는 아세안과 중국이 그려지고 있다.
외국에 투자하는 문제에 현대자동차 노조가 결정권을 요구하는 것은 자동차산업의 지리적 이동패턴 때문에 한국 못지 않게 전투적이었던 미국의 자동차노조가 70년대 이후 약체화된 것처럼 한국의 강성노조 역시 약체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강경투쟁이 당장은 이득일지 모른다. 그러나 과도한 요구를 무한정 들어줄 회사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강성노조는 사라질 수 밖에 없다. 일본에선 강성노조가 사라진 자리에 노동자와 회사 모두의 이익을 생각하는 노조가 자리잡았다. 그러나 노사간에 어떤 신뢰도 없는 한국에서도 그런 관계가 자리잡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석우
28호 (2006.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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