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퇴임하는 고이즈미 총리는 올해 8월에도 신사참배를 강행했다. 일본의 재무장 움직임과 신사참배와 같은 우경화로 해석되는 여러 사건들은 일본이 과거 군국주의 시절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란 우려가 많다. 최근 일본의 움직임은 중국을 경쟁상대로 보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도쿄 중심가에 자리한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는 봄이면 벚꽃놀이 명소가 되고 평소엔 벚꽃나무 그늘을 거니는 연인과 한가한 이들의 산책로가 된다. ‘평화로운 나라(靖國)’란 이름과 어울리는 조용하고 무해한 이곳이 동북아 외교전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야스쿠니 신사는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1866~69) 중 일어난 내전에서 죽은 근왕파 지사들을 기리기 위해 메이지(明治)2년(1869) 칙령에 따라 지어진 호국신사이다. 이후 청일전쟁, 노일전쟁, 1차세계대전, 만주사변, 태평양전쟁 등에서 죽은 250만명이 신사에 봉안되어 있다.
나라를 위해 죽은 이를 기리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며 국가를 대표하는 총리가 그들을 기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 병사들은 나라를 위해 싸웠다. 그것은 잘못된 것인가?” 야스쿠니 신사 박물관에 걸린 글귀이다. “나라를 위해 귀중한 생명을 바친 그들은 우리의 조상이며 우리에겐 소중한 사람입니다.” 야스쿠니 신사 대변인의 말이다.
문제는 신사에는 도쿄전범재판에서 처형된 14명의 A급 전범이 같이 봉안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전장에서 죽은 것이 아니므로 합사될 이유도 없고 결과적으로 일본군국주의의 상징인 전범을 기리는 행위는 일본과 묵은 과거가 있는 한국과 중국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1985년 총리자격으로는 처음 신사를 방문한 나카소네 총리는 한국과 중국의 격렬한 항의에 부딪힌다. 그 후 2001년 총리직에 오른 고이즈미 총리가 방문하기 전까지는 정부를 대표한 공식방문은 없었다.
일본의 우향우?: 국가의 부재
고이즈미 총리가 외교적 마찰을 무시하고 연례행사처럼 신사참배를 강행하는 것과 연이은 교과서 파동, 전쟁포기를 명시한 헌법9조의 개정 움직임, 자위대의 해외파병 등을 보면서 주변국은 일본이 우경화(또는 군국주의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무관심하고 나라를 위해 죽겠다는 사람이 가장 적은 일본에서 우경화는 최소한 과거와 같은 군국주의는 아니다. 국가의 모든 자원을 동원하는 총력전인 오늘날의 전쟁에서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일본인이 전쟁을 지지할 것 같지는 않다. 모이기만 하면 정치평론가가 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인의 모임에서 정치적인 화제를 꺼내는 것은 판을 깨는 짓이다. 일본인이 정치적으로 무관심해진 것은 태평양전쟁이 끝난 1945년부터이다.
1945년 일본을 점령한 미국은 군국주의의 부활을 막기 위해 일본의 교육을 개혁한다. 개인보다 국가와 가족이 우선인 전쟁 전 일본에서 국가와 천황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당연했고 정치는 정부와 관료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집단주의적 가치관이 전쟁의 원인이라 본 미국은 개인주의를 일본 교육의 근간으로 삼았고 이는 전후 일본의 지배적 가치가 된다. 그러나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개인의 행복 이상의 것은 없고 일본시민은 일본이란 땅에 우연히 살게 된 세계시민이라고 가르치는 일본에서 국가란 개념은 완전히 잊혀졌고 일본은 (공식적으론) 국가의 상징인 국기도 국가도 없고 국가의 안전을 보장해줄 군대도 없는 이상한 나라가 되었다.
헌법에 따라 일본에 군대는 없지만 자위대라 불리는 24만명의 방위청 직원은 있다. 일본에 탱크는 없지만 탱크처럼 보이는 ‘특수차량’은 있다. 전폭기는 방어용이 아니라 공격용 무기이므로 일본에 전폭기는 없지만 폭탄을 나르는 ‘지원전투기’는 있다. 헌법에 국가비상사태에 대한 규정이 없으므로 국가는 계엄령을 선포할 수도 없고 공무원에 불과한 자위대는 법원의 허가가 없으면 사유지를 침범할 수 없기 때문에 유사시 국가를 방어하러 갈 때도 땅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하며 규정속도를 넘기면 경찰은 딱지를 떼러 달려온다(국가비상사태에 관한 법률은 2004년 통과되었다).
군대 없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는 있을 수 없기에 실질적으로 군대인 자위대를 군대가 아니라고 우겨야 하는 일본의 처지는 불쌍하기까지 하다. 주변국은 헌법개정 움직임을 군국주의로 돌아가는 거라 의심하지만 자민당이 작성한 개정헌법 초안은 전쟁포기 조항은 그대로 두고 자위대를 군대로 인정하여 국가의 자위권을 명시하는 온건한 것으로 남들처럼 일본도 ‘보통국가’가 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작은’ 바램조차 일본에선 쉬운 일이 아니다.
부국강병(富國强兵): ‘나 빼고 모두가 적’
A급 전범으로 기소된 토고 시게노리 외무상은 진주만 기습 전 일본은 전쟁 밖에는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당시 일본보다 10배는 크고 영국과 함께 2대 강국의 하나였던 미국과 전쟁을 벌이는 것은 자살행위였고 일본은 미국을 상대로 이길 거란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ABCD(미국, 영국, 중국, 네덜란드)의 경제봉쇄는 일본을 코너로 몰았고 봉쇄를 푸는 조건으로 미국은 중국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했지만 일본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일본 밖에선 중일전쟁(1937~45)을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보지만 일본 안에선 덫에 걸려 말려들어간 것이라 생각한다. 만주사변(1931)에서 태평양전쟁(1941~45)까지 일본에선 ‘15년 전쟁’이라 부르는 일련의 전쟁은 일본에선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받아들여졌다.
“증기선이 태평양의 평화로운 잠을 깨웠다. 4척의 배로도 한밤에 잠 못 이루기에는 충분하다(泰平の/眠りを覚ます/上喜撰/たった四杯で/夜も眠れず).” 막부 말기에 유행한 풍자시(狂歌)이다. 1853년 4척의 ‘쿠로후네(黑船)’를 이끈 페리 제독의 무력시위로 강제 개항된 이후 일본이 본 세상은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총성 없는 전쟁’, ‘경제전쟁’, ‘생존투쟁’ 등 당시 일본에서 유행한 말에서 보듯이 일본은 약한 것은 죄이고 힘이 정의(正義)인 제국주의 시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나라 간에도 법이 있지. 그건 진짜야. /그러나 때가 되면, 기억해, /강자가 약자를 집어삼키는 법 (1880년대 일본의 유행가)” 당시 힘으로 이해되던 군사력과 경제력을 키우기 위해선 국가 내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동원할 강한 국가가 필요했고 메이지 유신은 무력한 막부를 타도하고(倒幕) 강한 국가를 만들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부국강병 즉 힘을 키우는데 성공한 일본은 자신보다 약한 조선과 중국을 침략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며 누구나 하는 당연한 것이므로 일본 자신이 힘이 없어 백인들에게 당한 것처럼 당하는 놈이 바보이고 약한 것은 죄라고 생각했다.
일본의 제국은 백인들의 제국과 달리 방어적인 동기에서 만들어진다. 구미열강의 해외식민지는 경제적 이해에 따라 만들어졌지만 일본의 제국은 당면한 전략적 문제의 해결책으로 조금씩 확장된 것이다. 자기나라와 이웃한 영토로 이루어진 제국을 만든 것은 당시로선 일본뿐이다. 청일전쟁(1894-5)과 러일전쟁(1904-5)으로 조선을 획득하면서 일본은 제국으로 부상한다. 당시 식량을 자급할 수 없었던 일본으로선 값싼 식량공급원으로 조선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1885~1905년 일본의 쌀 수입량 중 조선 쌀의 비율은 35%였고 콩은 50%였으며 조선 미곡수출의 95%는 일본이 사가는 것이었다 (그림1). 그러나 지금과 달리 자원의 수출이 정치적 영향력에 좌우되던 시대에(조선이 쌀을 수출한 것 자체가 생산량이 많아서가 아니라 강화도조약에 따른 강요 때문이었다.) 다른 열강이 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일본의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라 생각했다.
그림1 조선의 전체 쌀 생산량 중 일본으로 수출된 비율 (%)
태평양전쟁으로 가는 패망의 외길이 시작된 만주사변(1931) 역시 일본으로서는 방어적 동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대공황(1929) 이후 세계경제질서가 무너지고 보호무역주의가 득세하면서 다른 제국의 식민지에 접근할 수 없게 된 일본은 원료의 공급지와 상품시장으로서 만주가 필요했다. 신해혁명(1910) 이후 만주는 중앙정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일본이 후원하는 군벌이 지배하면서 일본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국권회복운동이 거세지고 만주군벌, 張學良이 일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하자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이후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확전되어 파멸의 길을 걷는다.
언제나 자신은 약자라 생각하던 일본의 입장에서 제국주의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고 태평양전쟁은 백인들의 세상에서 벌인 ‘외로운’ 생존투쟁에서 외통수로 몰린 결과로 받아들여 졌다. 일본인의 눈으로 본 태평양전쟁은 그러한 약자의식 또는 ‘피해자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이다. 전후 일본에서 제작된 거의 모든 전쟁영화는 태평양전쟁으로 일본이 겪은 고통만 보여준다. 이웃나라들 역시 일본 때문에 (아마도 더 많이) 고통 받았다고 말하면 전후세대의 대다수는 놀라워한다.
“다행히도 마침내, 일본은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종전일(8월 15일)’을 기념한 아사히신문(朝日新聞) 사설이다. 사설에 따르면 전쟁은 지진이나 태풍 같은 자연재해 같은 것으로 (일본이 보기엔) 타의로 말려들어간 전쟁에 자신들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을 놀라워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며 설사 그것을 알더라도 다른 나라의 고통보다 일본의 고통은 ‘특별’하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철의 태풍(鐵の暴雨)’이라 불리는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은 작전책임자를 포함 12,500명, 일본은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 11만의 전사자가 나는 것을 본 미국은 본토 상륙을 포기하고 원폭을 투하, 항복을 유도한다. 항복 후 일본에 진주한 미국은 유혈폭동을 걱정했지만 그들을 맞은 것은 성조기와 꽃다발을 흔드는 환영인파였다. 미군은 일본을 전쟁에서 풀어준 ‘해방군’이었다.
미국인에게 전쟁은 1941년에 시작되었지만 일본인에게 전쟁은 1931년에 시작되었다. 1945년 8월 14일 히로히토 천황의 항복방송을 들으면서 일본인들이 느낀 것은 졌다는 절망이 아니라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났다는 안도였고 전쟁기간 동안 쌓인 긴장이 풀리면서 몰려오는 무력감이었다.
270만으로 추정되는 태평양전쟁의 전몰자 수는 당시 일본인구 7,400만의 4%에 달하는 수치이다. 공식적인 부상자는 450만에 달한다. 전쟁기간 중 폭격으로 죽은 민간인은 추정조차 불가능하다. 폭격으로 사회기반시설과 산업시설의 1/3이 파괴되었고 66개 주요도시의 40%가 파괴되어 주민의 30%가 집을 잃었다. 특히 집중적인 폭격을 당한 도쿄는 주거지역의 65%가 사라졌으며 오사카와 나고야는 각각 57%와 89%가 파괴되었다. 농촌의 생활수준은 전쟁 전 수준의 65%, 도시는 35%로 떨어졌다.
재앙은 전쟁이 끝나고도 5년이 지나서야 헤어날 수 있었다. 제국이 해체되면서 원료 공급지도 제품을 팔 시장도 잃어버린 일본의 경제는 마비되었고 패전 직후 생활수준은 태평양전쟁 당시보다 열악해졌다. 패전 직후 전쟁을 이끌던 지도층은 미군이 진주하기 전에 국가재산을 챙겨 한몫 잡을 생각만 했고 전쟁 직후 마비된 시스템을 살리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연이은 흉작과 사회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표면화된 관료들의 부패와 무능이 겹쳐 한국전쟁 특수로 경제가 회복되기 전까지 대다수의 일본 가정의 관심사는 하루를 넘길 식량이었고 굶어 죽는 것은 뉴스거리도 아니었다.
귀신은 밖으로! 복은 안으로! (鬼は外, 福は內): 나 홀로 평화
원폭으로 히로시마와 나카사키가 지워지는 것을 보았던 일본인들은 전쟁은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생존수단’으로 전쟁을 선택한 것은 ‘실수’라고 본다. 8월 6일 히로시마에서 열린 원폭투하 61주년 추모식에서 아키바 시장은 핵 보유국들이 어떤 이유로든 핵무기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비인간적이라는 신념이 있었다면 핵무기는 벌써 없어졌을 것이라 말하면서 전쟁을 금지한 평화헌법의 수정을 반대하였다. 승자인 미국은 전쟁을 필요악이라 보지만 유일한 원폭 피해자인 일본에서 전쟁은 언제나 나쁜 것이다.
전쟁을 부정하는 평화주의는 전후 일본의 일관된 특징이 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전쟁에서 남이 당한 고통에 무관심하듯 일본의 평화주의는 ‘나 홀로’ 평화로우면 된다는 이기적인 평화주의이다. 집안에선(우찌, ‘內’) 바늘이 부러져도 제사를 지내주고 사람이 아닌 인형의 팔이 떨어져도 인형공양을 하는 사람들이지만 ‘소또(外)’의 사람들이 어떻게 되건 무관심한 것이 일본인의 마음이다.
일본은 걸프전쟁에 수십억 달러를 냈는데도 ‘우리는 피를 흘렸는데 너는 돈으로 떼우느냐?’는 야유를 받았다. 중동지역의 안정을 위한 전쟁이었던 걸프전쟁은 석유를 수입하는 일본과 무관한 것이 아니었다. 충격을 받은 일본정부는 1992년 UN군의 일원으로 자위대를 파병할 수 있게 법을 만든다. 그러나 당시 사민당은 ‘전쟁이냐? 평화냐?’ ‘우리 젊은이를 전장에 보내지 마라!’ “군국주의로 가는 길!’이란 구호를 외쳤고, 아사히신문이 대표하는 좌파언론들도 반대의 목청을 높였다.
극렬한 반대를 뚫고 통과된 법률은 다른 나라가 보기엔 농담이다. 자위대는 비전투병을 비전투지역에만 파병할 수 있으며 경고사격과 자위권만 허용된다. 군대라기보다는 UN모자를 쓴 NGO에 가깝다. 일본의 농담은 전후 일본의 (일국)평화주의의 논리적 연장이다.
평화헌법을 만들어 일본의 군대보유를 금지한 미국은 반대급부로 일본의 안보를 책임져 왔다. 평화헌법 수호 이외에는 어떤 정책도 없었던 (1996년 해체된) 사회당이 자위대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보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경제동물’, ‘정치적 피그미’, ‘몸만 크고 머리가 작은 공룡’이라 불리는 전후 일본과 호전적인 전전 일본의 세계관은 동일하다. 룰만 민주주의로 바뀌었지 전쟁 전의 리더들이 모여 만든 자민당이 55년부터 38년간 집권한 전후 일본에서 달라진 것은 제국주의 시대와 달리 전후의 세계질서에선 군사적 수단으로 국가의 안보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인식뿐이다. 일본의 입장에서 ‘부국’과 ‘강병’은 다른 나라가 감히 일본을 무시하지 못하게 하는 힘의 원천이며 국가의 안보를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전전의 군국주의는 생존을 보장하기는커녕 오히려 위태롭게 했기 때문에 ‘실수’이다. 미국의 보호 아래 ‘강병’이 필요 없어진 일본은 ‘부국’에 집중한다.
그러나 자신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면 일본의 평화주의는 뒷전으로 물러나고 ‘강병’이 되살아난다. 일본인들이 북핵문제 같은 더 큰 위협에는 무관심하면서 다른 나라 사람이 보기에는 극히 사소한 문제인 일본인 납치사건에 심각하게 반응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실감하기엔 멀리 느껴지는 핵보다 국가라는 울타리가 튼튼하지 않다면 자신도 같은 일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안전이란 공기처럼 공짜라 여기는 일본에선 당연할 지도 모른다. 김정일이 납치를 공식적으로 시인했을 때 일본 언론의 반응은 집단 히스테리에 가까웠고 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 정치권이 실질적인 위협으로 보는 것은 북한이 아니라 중국이다.
중국의 부상과 동북아질서의 재편
평화헌법의 개정과 히노마루, 기미가요의 공식적인 인정,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은 전후기간 내내 있어온 쟁점이지만 본격적인 이슈가 된 것은 냉전해체로 세계질서가 재편된 이후이다. 냉전 이후 일본의 안보환경은 오히려 더 위험해졌다. 소련이 해체되었지만 동북아에서 러시아의 군사적 힘은 여전히 무시할 것이 아니며 예측불허의 불량배가 된 북한은 이전보다 더 성가신 존재이다. 그러나 일본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갈수록 커지는 중국의 존재감이다.
일본이 중국을 보면서 느끼는 불안감은 100년 전 독일의 부상을 보며 영국이 느낀 위협과 비슷하다(영국과 독일의 라이벌 관계가 1차대전의 원인이다). 전쟁은 새로운 강자가 힘의 균형을 흔들 때, 기존의 강자가 위협을 느낄 때 일어난다.
냉전시절 일본은 중국을 자극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큰 희생을 치르더라도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해 애를 썼다. 미국 다음의 원조 대국인 일본은 해외원조의 대부분을 과거사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중국에 공여해왔다. 1979년 이후 대중국 원조 누적액은 3조340억 엔에 달한다. 그러나 현재 국회의원의 대다수인 40~50대 정치인들은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나라에 왜 원조를 해줘야 되는지 의아해 하며 국민에게 일본이 대규모의 원조를 해왔다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하지 않을 뿐더러 관제반일시위를 벌이는 중국에게 왜 계속 굽실거리며 죄인처럼 사과해야 하는지 궁금해 한다. 그들에게 과거의 중국정책은 자존심을 버린 저자세 외교이다.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는 2008년까지 대중국 원조의 대부분을 삭감하는 법안이 2005년 3월 통과된다. 고이즈미 총리가 중국의 극렬한 항의를 무시하고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하는 것은 이들 3세대 정치인들의 의식을 대변하는 것이다.
2004년 가을 일본영해에 들어온 중국 핵잠수함을 추격하면서 일본은 구축함과 대잠헬기를 앞세우고 2차대전 이래 최대의 군사작전을 벌였다. 2005년 3월 중일전쟁 중 일본의 만행에 대한 (일본으로선 수도 없이 해왔다고 생각하는)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대가 일본회사에 돌을 던졌을 때 일본정부는 시위로 입은 피해에 대한 중국정부의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였다. 10년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일본의 단호한 제스처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유권자들은 중국의 수출이 늘면서 일자리를 뺐기고 있다고 생각하며 중국이 일본을 깔본다고 생각한다. 2002년 중국공안이 탈북자를 체포한다는 명목으로 일본영사관을 무단 수색한 사건은 외교관례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본다.
물론 일본이 중국과의 전쟁을 원하지는 않는다. 고이즈미 총리는 중국은 일본의 위협이나 경쟁상대가 아니라 기회라고 말한다. 중국은 일본의 최대교역국이다. 경제적으로 일본의 우선적 관심은 중국의 등장으로 변한 상황에 적응하고 나날이 커지는 중국경제를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내심에서 중국은 잠재적 위협이다. 일본의 입장에서 현재 중국의 군사력은 가소롭다. 그러나 커져만 가는 중국의 경제적 힘은 강한 군사력으로 바뀔 것이며 군사력은 동북아에서 중국의 발언권으로 나타날 것이고 강화된 발언권은 다시 중국의 경제적 이익을 높여줄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경제적으로 일본이 지배해온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영향력을 밀어낼 것이다. 더군다나 일본으로선 20~30년 후에도 미국이 일본의 안보를 책임져 줄 것인지, 언제까지 일본의 충실한 우방으로 남을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이대로 중국의 힘이 커진다면 미국은 동북아에서 중국의 몫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동북아에서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면 일본은 최소한 중국과 대등하거나 우월한 물리력을 가져야 하며 이는 소위 ‘재무장화’ 노선으로 나타난다. 무력의 뒷받침 없이 대등한 대화는 불가능하다.
국가의 상징으로서 야스쿠니 신사
제자가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경제력, 군사력, 국민의 신뢰, 이 3가지가 정치의 필수조건이다.” 제자가 물었다. “3가지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부터 버려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사력이다.” 제자가 물었다. “남은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어느 것을 버려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경제력이다. 국민이 지도자를 믿지 않으면 그 나라는 오래 갈 수 없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통치철학으로 삼았던 공자의 말은 고이즈미 총리가 자주 인용하는 말이다.
떠오르는 중국을 보며 일본 정치인들은 일본의 미래를 걱정한다. 일본이 충분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고 있더라도 국가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 없다면 국가는 국민의 힘을 모아 미래를 대비할 수 없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일본인들에게 국가에 대한 ‘믿음’은 고사하고 자신이 일본국민이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기대하기 어렵다.
자신이 국가란 공동체에 속한다는 생각이 없고 공동체에 좋은 것은 나에게도 좋고 국가와 시민은 공동운명체란 ‘믿음’이 없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암울하다. 개인을 세상의 중심으로 보는 개인주의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인주의는 개인의 안전을 지켜주는 국가란 울타리가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은 가르치지 않는 일본의 교육은 잘못되었다고 일본 정치인들은 생각한다.
국가에 대한 ‘믿음’을 만드는 첫걸음으로 일본의 정치가들은 국가의 상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구심점이 없는 나라의 정치는 통제불능이 되어 정부는 무력해진다.” 이토 히로부미의 말이다. 1999년 일본국회는 히노마루(日の丸)와 기미가요(君が代)를 공식적인 국기와 국가로 인정하는 법을 통과시킨다. 고이즈미 총리가 중국과 한국이 격분할 것을 알면서도 신사참배를 강행하는 이유는 야스쿠니 신사가 일본이란 국가의 상징이라 보기 때문이다.
메이지 유신 이전, 다이묘들의 영지로 쪼개진 일본에서 어느 다이묘의 영지에 사는 아무개는 있어도 아무개 일본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메이지 유신은 일본을 하나의 국가로 만들었고 천황은 일본인을 하나로 묶어주는 상징이 되었으며 천황의 이름으로 나라를 위해 죽은 이들이 봉안된 야스쿠니 신사는 천황과 국가 권위의 물리적 상징이었다.
메이지 유신 이래 지배층이 바뀌지 않은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을 일본의 뿌리라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메이지 유신 이후 나라를 위해 죽은 이들이 봉안된, 즉 그들의 국가에 대한 ‘믿음’을 기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국기나 국가와 같은 나라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것은 일본 정치인에겐 당연할 지도 모른다.
이석우 cura_lee@hotmail.com
27호 (2006.8.31)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