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익은 말하지 않고 손해만 말하면서 한미FTA를 반대하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기회와 위험이 같이 있게 마련이다. 위험하다며 반대하기 전에 얻을 것을 먼저 생각하고 이익이 더 크면 손해를 보는 쪽에 어떤 보상을 해줄 것인가를 논의하는 것이 순서이다.
현재 발효 중인 193개의 FTA 중 143개는 1995년 WTO 출범 이후 체결된 것으로 전세계 교역량의 50% 이상이 FTA 회원국간에 이루어지고 있다. 무역비중이 GDP의 70%를 넘는 한국으로서(일본과 미국은 25% 이하) FTA가 생존전략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21세기 이전 한국은 FTA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WTO 가입 이후 중국의 FTA협상건수가 늘어나면서 중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한국과 일본, 아세안국가들의 FTA 협상건수도 늘어난다.
차이나 신드롬
2001년 WTO에 가입하기 전 중국에선 저가수입품 때문에 실업이 늘고 농업이 무너질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우려와는 달리 큰 문제가 없자 자신감을 얻은 중국정부는 시장과 원료확보를 위해 아세안, 호주 등과 FTA 협상을 벌인다.
1990년부터 2002년까지 세계무역에서 일본의 비중은 8.5%에서 6.4%로 줄었고 한국은 1.9%에서 2.5%로 늘었지만 중국의 비중은 4.3%에서 8.2%로 배가되었다. 이미 충분한 가격경쟁력을 갖추어 수출이 늘고 있는 중국제품이 WTO 가입과 FTA로 관세와 비관세 장벽이 줄어들어 더 싸지면 중국과의 경쟁은 더욱 어려워진다. UN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세계시장점유율 1위 제품이 1980년 12개에서 지금은 9개로 줄어든 반면, 중국은 0에서 116개로 늘었다.
물론 중국이 경쟁상대만은 아니다. 중국은 외환위기 이후 부진한 내수를 상쇄할 시장으로 떠오른다. 수출품의 총부가가치 중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은 15%에 불과하고 핵심부품은 수입에 의존하는 산업구조 때문에 중국은 수출이 늘어나는 만큼 한국과 일본으로부터의 수입도 늘어난다. 부품, 소재, 기계류 등의 대중 수출로 2003년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교역 1위국이 되었고 2005년 대중국 수출은 $620억, 수입은 $386억를 기록한다 (일본 $240억, $484억; 미국 $414억, $305억).
중국은 시장만 제공한 것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무역구조를 가지고 있다. 두 나라의 수출구성은 전기, 전자제품 1/3, 자동차, 조선 1/4, 일반기계와 그 외의 공산품이 나머지 1/3을 차지한다. 후발주자인 한국이 일본과 경쟁할 수 있는 것은 가격경쟁력 때문이다. 2004년 한국의 임금수준은 일본의 50%에 불과하다 (외환위기 직전에는 70%). 그러나 2005년 원화가 절상되고 엔화는 절하되어 가격경쟁력이 급감했는데도 수출이 줄기는커녕 14% 늘고 이윤율도 줄지 않은 것(그림2)은 중국의 저임금 때문이다.
중국의 FDI(해외직접투자)에서 한국의 비중은 1990년대 초 1%에 불과했지만 2004년 $62억을 투자, 10.3%를 기록하여 $124억을 투자한 홍콩 다음이며 2004년 $55억을 투자하여 9%를 차지한 일본을 추월하였다(그림1). 한국과 일본의 무역규모의 차이를 생각하면 한국이 중국을 활용하는 정도는 일본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림1 중국 FDI 점유율 (%)
그림2 수출부문 이윤율 (한은지수)
그러나 중국은 한국의 경공업부문에서는 위협이다. 1987년 이후 아시아에서 한국의 임금수준은 일본 다음이 된다. 경제가 성장하면 임금은 오르기 마련이고 임금상승을 생산성증가로 상쇄하기 위해 산업구조는 자본집약적이 된다. 1977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제조업의 고용은 1900만에서 1400만으로 줄었지만 생산성은 109% 증가(그림3), 산출량이 두 배로 늘어 (그림4), 미국은 여전히 세계최대의 제조업국이다.
그림3 미국 제조업과 전체경제의 생산성, 1977-2002
그림4 미국 제조업과 전체경제의 생산량, 1977-2002
그러나 산업특성상 중소기업이 몰려있고 자본집약화에 한계가 있는 한국의 경공업부문은 설비, 기술투자로 인건비부담을 상쇄할 수 없었다.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중공업이 1998년 9.5%에서 2004년 9.2%로 떨어졌지만, 경공업은 오히려 10.7%에서 12.2%로 증가하였다. 노동생산성 역시 중공업은 2001년 1.7%에서 2005년에 13.4%로 증가한 반면, 경공업은 -2.3%에서 0.7%에 그쳤다.
가격경쟁력이 약화되고 중국 등으로부터 저가품 수입이 늘면서 경공업제품의 수출액 대비 수입액 비중은 1991～95년에 27.0%에서 2001～05년에 53.7%로 확대되어 시장을 잠식당한 경공업부문 회사의 2/5는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2004년 중소제조기업의 51.2%는 1-2년 내, 80.3%는 5년 내에 중국, 북한 등으로 진출할 계획이라 응답하였다. 2001-2003년 사이 중소기업의 FDI는 금액기준, 연평균 44.7% 늘었다(기은조사).
한국만 중국의 저가공세에 타격을 받은 것은 아니다. EU의 의류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이 1991년 20%에서 2005년 50%로 올라가면서 내수에 의존하던 회사들이 도산, 이탈리아 섬유산업의 고용은 60만, EU 전체로는 1/3이 줄었다. 세계적 브랜드인 베네통의 경우에도 이탈리아 본사에는 디자인, 마케팅 기능만 남았고 생산은 중국 등 해외로 돌려졌다. 15년전 베네통은 제품의 90%를 이탈리아에서 만들었지만 2006년 그 비율은 30%이며 몇 년 안으로 10%로 줄어들 것이다.
임금이 낮으면 생산성도 낮다. 일본의 켄우드는 2002년 MD 플레이어 생산라인을 말레이시아에서 일본으로 이전한다. 이전 후 말레이시아에선 22명이 필요하던 일이 일본에선 4명이면 충분했고 불량률은 80% 낮아졌다. 더군다나 고도로 자본집약화된 전자산업의 생산비에서 임금의 비중은 5%까지 떨어졌으며 일본의 경우 중국공장보다 일본공장의 코스트가 더 낮은 경우도 많다. 그러나 DVD 플레이어, 휴대폰, 디지털 카메라 등 디지털 제품이 보편화되면서 중국의 낮은 노동생산성은 큰 문제가 아니다. 필름 카메라의 경우 제조에 필요한 광학, 화학, 기계관련의 복잡한 기술은 쉽게 마스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모듈화된 디지털 카메라는 부품을 들여다 조립할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디지털화가 보편적이 되면서 중국은 낮은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저임금만이 중국의 경쟁력은 아니다.
한국만 중국이 생산기지이면서 시장인 것은 아니다. 70년대 이래 포화상태인 세계시장에 신천지로 떠오른 중국(경제규모 6위, 구매력 기준 2위)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각종 장벽이 많은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지에서 생산, 판매하는 것이다. 2004년 중국의 FDI 누적액은 GDP의 35%였고(한국 8%, 인도 5%, 일본 2%) 수출에서 외국자본의 비율은 57%였다. 중국의 경공업제품 수출은 연 6.9% 증가, 세계무역 증가율과 비슷했지만 하이테크 제품 수출은 연 15% 증가, 2001년 동아시아 전체의 43%를 차지했다.
2003년 245개사(146개사는 대기업)를 대상으로 한 전경련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은 4년 내로 자동차, 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전략산업에서 한국을 따라잡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조선업의 경우 2006년 수주 기준으로 상위 50위 안에 한국의 조선소는 7개가 든 반면, (한국의 조선업체가 중국에 만든 조선소를 포함) 중국과 일본은 각각 15개가 올라갔다. 그러나 세계의 공장, 중국은 세계시장에서 한국이 처한 상황의 일부일 뿐이다.
일본의 경기가 회복되면서 일본의 반격이 본격화되고 있다. 한국이 점유율 1위를 지키던 LCD 시장에서 2006년 1분기 한국은 37.4%를 점유했지만 일본과 합작한 대만은 52.2%를 기록했다. 설비투자추이로 볼 때 대만의 2007년 점유율은 60%에 근접할 것으로 보이며 한국이 1위 자리를 탈환할 가망은 없다. 그 동안 한국이 일본과 대등하게 경쟁한 것은 내수비중이 반이 넘는 일본기업들이 10여 년에 걸친 장기침체로 기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제조업의 경쟁력이 중국과 일본의 도전을 받는 상황에서 최근 협상중인 한미FTA가 체결되면 단기적으로는 미국시장에서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중국과 일본보다 한국이 가격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제조업을 대신할 새로운 성장엔진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서비스경제와 한미FTA
A국의 주요수출품이 B국의 주요수입품이라면 양국의 무역구조는 보완적이다. 그러나 두 나라의 수출구조가 유사하여 경쟁적일수록 교역은 작아진다. 중공업화가 시작된 70년대부터 한미 양국의 무역보완성은 낮아지고 수출유사성은 높아져 한국의 대미수출은 꾸준히 감소하여 미국 수입시장 점유율은 1995년 3.25%에서 2005년에는 2.62%로 낮아졌다.
정부가 한미FTA를 추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수출유사성이 높아도 FTA가 체결되면 무역이 늘기 때문이다. 한국의 자동차가격이 1,000만원, 미국이 1,100만원이라면 100만원 정도 가격차로는 거래비용 때문에 교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FTA가 체결되면 관세, 물류비용, 비관세장벽 등의 거래비용이 낮아져 약간의 가격차로도 한국은 미국에 자동차를 팔 수 있는 가격경쟁력이 생긴다.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NAFTA 출범 이전인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수출유사성이 0.504에서 0.523으로 높아졌지만 캐나다의 대미 수출은 105%, 수입은 75.6% 늘었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단기적으로는 수출이 늘어 경기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미FTA가 중요한 것은 외환위기처럼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현정부 들어 심화된 양극화는 산업공동화가 원인으로 외환위기 이후 경쟁력이 약화된 중소제조업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1990-97년 사이 설비투자는 연평균 7.9% 증가하였으나 2000-05년 사이엔 1.1% 증가하는데 그쳤고 GDP 대비 투자율도 13.8%(’90-‘97), 12.8%(’00), 10.8%(’05)로 꾸준히 내려갔다. 이전엔 내수가 부진해도 수출이 잘되면 투자가 확대되어 고용이 늘었다. 그러나 수출부문의 자본집약도가 높아지고 경쟁력을 위해 중간재의 해외구매비율이 높아지면서 산업연관효과도 감소, 수출이 늘어도 고용은 늘지 않는다. 그러나 양극화 해소를 위해 논의되고 있는 사양산업을 보호한다든가 수출부문의 연관산업을 육성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1970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의 제조업고용은 전체고용의25%에서 10%, 영국은 35%에서 14%, 일본은 27%에서 18%로 감소하였다. 그러나 중국 등의 저가품이 시장을 잠식했기 때문에OECD국가에서 제조업고용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 수입으로 노동집약산업의 고용이 준 만큼 자본집약산업의 수출이 늘어나 중국 등의 대미수출이 정점에 달한 2001년에도 무역 때문에 해고된 인원은 총실업의 0.6%에 불과했다. 미국의 농업인구가1860년 인구의 50%에서 현재 3%로 줄었지만 생산량은 오히려 늘어난 것처럼 OECD국가의 제조업고용 감소는 생산성증가로 설명된다.
제조업의 비중이 작아지면 그 빈자리는 서비스산업으로 채워진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소비자는 상품보다 서비스를 더 많이 구매한다. 돈이 많아졌다고 필요한 자동차, 냉장고, TV의 숫자가 늘지는 않지만 의료, 교육, 여가 등의 지출은 늘어난다. 게다가 서비스산업의 고용유발효과는 제조업의 1.7배로 고용측면에서 제조업보다 유리하다.
한국 서비스산업의 GDP 비중은 2003년 52.7%(2004년 49.3%)로 OECD 평균 67.6%나 미국의 76.5%보다 휠씬 낮아 성장의 여지가 많다. 그러나 제조업의 빈자리를 메우기에는 한국서비스산업의 생산성은 너무 낮다. 서비스업의1인당 부가가치생산은 OECD 평균 $57,000은 물론 미국의 $77,000에 휠씬 못 미치는 $26,000에 불과하고 광고, 디자인, SI, 법률, 회계 등의 비즈니스 서비스의 생산성은 더욱 낮아 미국의 36%에 불과하며 영화산업의 생산성은 산업 내 최저이다. 생산성이 높으면 가격은 낮고 이윤율은 높다. 낮은 가격은 경제전체의 비용을 낮추며 높은 이윤은 다른 재화에 소비되거나 재투자되어 생산성을 더 높이는데 쓰여 경제전체의 부를 늘린다.
서비스산업의 비중과 경쟁력이 낮은 것은 세계시장에 노출되어 있는 제조업과 달리 각종 장벽으로 경쟁이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한미FTA로 설립 등을 억제하여 시장진입과 경쟁을 제한한 법제가 정비되면 진입장벽이 없어져 서비스산업에 경쟁이 도입되고 경쟁은 생산성을 올릴 것이다. 2006년 이랜드가 카르푸를 인수하고 이마트가 4%미만의 낮은 점유율과 적자로 고전하던 월마트를 인수한 것처럼 우려와 달리 서비스산업의 최강자인 미국과의 경쟁이 경제종속으로 귀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90년대, OECD각 나라의 국내시장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유통업체들은 제조업체들처럼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지만 그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다. 월마트의 해외부문 실적은 저조하여 매출 65%, 이윤의 87%를 미국 내에서 올렸다. 월마트와 카르푸 등 서비스업종의 경쟁력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여 점증하는 마케팅과 IT비용이 전체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낮추는 데서 나온다. 그러나 이미 높은 점유율을 가진 국내시장과 달리 신규시장에선 고정비용을 낮출 규모의 매출이 실현되려면 오랜 기간의 투자가 필요하고 그 만한 규모가 만들어질 가능성 역시 불확실하다. 게다가 지역마다 다른 협력업체와 소비자의 입맛을 맞추려면 그 지역에 특화된 공급라인이 필요하고 공급라인이 달라지면 고정비용을 지역시장이 아닌 세계시장 단위로 분산할 수 없기 때문에 규모에 의한 비용절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의 해외시장진출이 더 어려운 것은 비용보다도 지역마다 다른 시장특성 때문이다. 1996년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월마트는 매장을 미국식으로 구성한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인들은 깎는 재미가 있고 공산품 중심의 월마트와 달리 신선한 과일, 채소가 잘 갖춰진 전통시장을 선호했다. 2006년 한국에 진출한 지 8년 만에 철수한 것은 서비스 없이 저가격만 내세운 미국식 전략의 실패이다. 이런 이유로 서비스업체가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는 그 시장을 이해하고 있는 현지업체와의 합작이 선호되며 한미FTA 이후 진출할 미국업체들 역시 마찬가지 전략을 택할 것이다.
유통시장 개방 당시 다국적기업이 몰려오면 국내 시장은 쑥대밭이 될 것이라 걱정했지만 까르푸, 월마트와의 경쟁이란 자극은 국내업체의 생산성을 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생산성을 올리는데 경쟁보다 좋은 동기는 없고 경쟁은 기술과 지식의 가장 효과적인 전달수단이다. 세계최고의 생산성을 자랑하는 미국업체와의 경쟁은 그들의 노하우를 배울 기회가 될 것이고 서비스산업의 생산성이 올라가면 산업공동화 또는 고용없는 성장의 해법이 될 것이며 서비스를 구매하는 제조업의 비용을 낮춰 경제전체의 경쟁력을 올려줄 것이다.
한미FTA 가 체결되면 경쟁력을 갖춘 전자, 자동차산업은 대미수출이 늘어나 이득을 볼 것이고 가격경쟁력이 취약한 경공업부문은 대미수출가격이 낮아져 숨돌릴 여지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KIEP 등 여러 기관들의 시뮬레이션에서 한미FTA 가 체결되면 GDP가 0.4%에서 2.4%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단기적인 수출증대보다도 FTA로 고용이 늘어나고 경제의 효율이 올라간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석우 cura_lee@hotmail.com
26호 (2006년 7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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