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북한 미사일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에서 한국이 외교적으로 고립된 것은 그간 반복되어 온 외교적 좌충우돌의 결과이다. 현정부의 외교적 무능은 현정부가 대변하는 386세대 민족주의의 한계이며 그들의 특징인 반미정서는 민족주의의 논리적 결과로서 형성된 것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동맹국 중에서도 가장 친미적이었던 한국에서 반미는 운동권의 상투어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2년 훈련 중 사고로 여중생 2명을 죽게 한 미국병사 두 명이 무죄 방면되면서 촉발된 대규모 반미시위는 미국의 입장에선 충격이었고 한국의 반미정서는 처음으로 미국언론과 정치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임무 중 사고였기 때문에 SOFA 규정에 따라 미 군사법정에서 처리된 것은 문제가 없지만 사건의 심리는 엉망이었고 작전책임자는 어떤 조사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사과 후에도 성조기가 불태워지고 반미시위와 미국인 폭행으로 확대된 것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미국은 자신이 큰 희생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어느 나라가 동맹의 연대감을 보여주러 자기네 병사들을 낯선 남의 나라 최전방에 자기 돈을 들여서 배치하겠는가? 연 국방비 $150억인 한국에 미국은 막대한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매년 주한미군유지비로 $100억를 쓴다. 반미시위를 보고 미국이 느낀 것은 배신감이었다. 더군다나 노대통령이 미국과 북한간의 무력충돌을 막는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고 말할 때 미국에겐 목숨을 걸고 휴전선을 지키는 미국군인들이 남과 북 사이에 제3자로 끼어 있는 것으로 들리며 노대통령의 지리학에 황당해 한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선 갑작스럽지만 2002년 반미시위는 한국인에겐 갑작스런 일이 아니다.
문민정부 시절의 반미정서
미국이 패권국으로 남아있는 한 반미는 언제 어디서나 있을 수 밖에 없다. 냉전기간 동안 반공이 미국의 구호였다면 반미는 동구권의 표어였고 이슬람 권에선 전통이 되었으며 유럽좌파에겐 일종의 패션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소련의 붕괴와 함께 반미는 세계적 문화상품이 된다. 공산주의에 대한 방파제에서 이제는 세계질서를 좌지우지하는 유일한 수퍼파워가 된 미국에게 세상 모든 문제의 책임이 돌아가면서 반미는 보편화되었다.
그러나 반미정서는 보편적이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그 지역과 미국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미국과의 긴 전쟁에서 500만이 희생된 베트남은 미국을 싫어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지난 30여 년간 미국과 부딪힐 일이 없었던 베트남의 반미정서는 가장 낮은 편이다. 그러나 이라크전쟁과 같이 잊을만하면 일이 터지는 아랍권의 반미정서는 언제나 높다.
한국에서 반미정서가 보편화된 것 역시 냉전이 해체된 90년대부터이며 WTO가 상징하는 세계화, 이라크 전쟁, 일방주의 외교 등 세계적으로 반미와 연결되는 이슈들은 한국에서도 공유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미국에 대한 태도는 90년대 이전과 마찬가지로 한국이 북한이란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물론 80년대 말이나 90년대 초 미국의 통상압력이 고조되었을 때처럼 경제관계에 따라 대미호감도 역시 달라지지만 대북관계의 변화만큼 일관성 있는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
북한은 단순하게 적이라 보면 되던 시절 미국은 든든한 동맹으로서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냉전종식 이후 경제를 소비에트 블록에 의존하던 북한이 경제적으로 파산하면서 단순한 대립관계로 규정되던 한반도의 질서는 새로 규정되어야 했다. 80년대 일본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미국에게도)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 되려 한 것처럼 경제적 위상이 달라진 한국은 한반도 질서 재편과정에서 발언권을 요구한다.
북방외교와 남북의 UN 동시가입, 92년 남북기본합의서 등 한국은 미국의 지원 하에 자신의 문제인 한반도질서의 재편작업을 해나갔다. 그러나 1993년 NPT 탈퇴로 시작된 북핵위기로 북한의 생각은 한국과 미국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이 분명해졌으며 이후 북한의 생각에 어떻게 반응하냐에 따라 한미관계가 난항을 겪게 된다.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주한미군은 한국의 안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동북아 질서라는 더 큰 틀에서 생각되는 것처럼 미국은 북핵위기를 한반도질서를 넘어 동북아의 세력균형이란 시각에서 바라본다. 90년대 초반 북한이 핵카드를 내밀면서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과 양자회담을 고집한 것은 한미동맹에 균열을 가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기존질서를 재편하는데 있어서도 여전히 미국이 결정적이라는 이해에서였다. 냉전 이후 세계질서에서 핵확산저지를 우선전략으로 생각하던 미국은 효율적이고 빠른 타결을 위해 북한의 입장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핵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없지만 북핵위기를 한반도문제로 생각하고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 한국은 회담에서 한국이 배제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고 북한의 벼랑 끝 전술로 지지부진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미국의 해결의지와 능력에 의구심을 품는다. 더군다나 1994년 정전협정 파기, 1996년 강릉에 좌초한 북한잠수정 사건 등으로 한국이 4자회담 제의 철회, KEDO 불참, 일체의 남북접촉, 지원중지로 대응했지만 한국의 반응을 판을 깨자는 감정적 변덕으로 본 미국은 쌍방이 도발을 자제할 것을 요구하였고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신뢰성을 의심하게 된다. 북핵위기에 대한 한미양국의 이해가 차이를 보이면서 1995년 미국에 대한 호감도는 역대 최저치인 43%, 비호감도는 최고치인 53%를 기록한다(그림1).
그림1 대미 호감도 (미 국무부 자료)
국민의 정부 이후의 반미정서
문민정부시절 균열이 간 한미관계는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화해국면으로 돌아선다. 외환위기로 국외문제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고 미국의 경제적 지원으로 대미 호감도는 극적으로 상승, 1998년 61%에서 2000년 71%로 오른다. 90년대 이후 이 때보다 대미감정이 좋았던 적은 없었다. 경제문제 외에도 남북관계가 좋아지면서 한미관계 역시 좋아진다. 미국은 햇볕정책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지지했고 대북정책에 한국의 의견을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한국은 자신을 거치지 않고 미국과 북한이 직접 접촉하는 것을 오히려 권장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이후 한미관계는 다시 최악이 된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위협거리 대신 불쌍한 동생이 되면서 한미관계의 근간인 안보에 대한 인식차가 생긴다. 국민의 정부는 물론 참여정부도 한미동맹이 안보의 근간이며 동북아질서의 초석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2002년 반미시위는 시민들의 북한관이 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전후세대는 성장기 내내 북한이 국가안보보다는 정권안보에 이용되는 것을 보면서 북한의 위협에 대한 의구심을 가져왔다. 남북정상회담은 김정일이 늑대가 아니라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의심은 확신이 된다.
전후세대 역시 북한은 여전히 위협이고 한미동맹은 필요하다고 본다. 주한미군이 안보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1988년 90%, 1991년 78%, 1993년 83%로 2000년 88%로 한국인의 대다수는 한미동맹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그림2). 그러나 부시행정부 이후 북한보다 미국이 현실적 위협으로 여겨진다. 첫째 미국이 북한을 궁지로 몰면 전쟁은 ‘협박’이 아닌 실제 상황이 될 수 있고 둘째 전쟁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북한이 더 이상 고립되면 정권붕괴로 이어져 전쟁과 맞먹는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2003년 여론조사에서 30%만이 북핵을 주요위협으로 들었고 59%는 미국을 심각한 안보문제로 보았다(Pew survey).
그림2 주한미군이 안보에 중요한가? (미 국무부 자료)
그러나 부시행정부가 들어선 후 대북정책이 갑자기 강경해진 것은 아니다. 부시행정부 역시 북한문제는 대화로 해결되어야 하고 남북관계 개선이 동북아질서에 바람직하다는데 이견이 없다. 부시 대통령이 ‘불량국가’, ‘악의 축’ 등의 발언으로 북한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보였지만 북한을 믿을 수 없는 상대로 결론지은 것은 클린턴행정부부터이다. 한쪽이 양보를 하면 상대방도 그만큼 성의를 보이는 상호주의가 협상의 기본이라 보는 미국에게 북한은 도저히 말이 안 통하는 상대이다. 북한이 고립되는 것보다는 동북아질서에 편입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은 동의하지만 햇볕정책으로 북한이 룰을 지키는 착한 학생이 된다는 데는 냉소적이다. 북한이 문제라는 것은 한미간에 이견이 없지만 그 해결책에는 견해가 달라지면서 한국은 미국이 자신의 운명을 무책임하게 쥐고 흔든다고 보게 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상대로 보는 중국, 일본, 한국, 러시아 간에 안정적인 관계를 보장해줄 EU나 NATO와 같은 제도가 없는 동북아에서 주한미군은 한반도의 안정은 물론 지역안정에 필수적인 존재이다. 최근 한미간의 불신이 증폭되는 것은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한국은 북한을 국내문제로 바라볼 수 밖에 없으며 남북간의 긴장완화가 우선이고 핵은 부차적이다. 휴전선의 장사정포만으로도 서울을 평지로 바꾸기엔 충분하다. 그러나 세계질서라는 관점에서 보는 미국에겐 가능성이 낮은 남침보다는 눈앞의 핵과 미사일이 더 우선이다. 한미간 입장차이에서 파생된 반미정서는 그 원인인 북한문제가 봉합되기 전에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참여정부의 어두운 유산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이석우 cura_lee@hotmail.com
26호 (2006년 7월 31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