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NAFTA 이후 멕시코 경제를 분석하면서 한미FTA 역시 한국의 재앙이 될 것이라 진단하였다. 그러나 기회라 여겨진 NAFTA가 재앙이 된 것은 NAFTA와 동시에 터진 외환위기로 손발이 묶인 멕시코가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94년 공식 발효된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미국, 캐나다, 멕시코간의 FTA)는 최소한 멕시코에서는 애초의 기대에 못 미치는 실패작이다. 2002년 NAFTA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멕시코인의 29%만 득이 되었다고 답변한 반면, 33%는 부정적이었으며, 33%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고 답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NAFTA의 부정적 결과는 남미로 NAFTA를 확대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
1989년 체결된 캐나다와 미국간의 FTA를 멕시코로 확대한 NAFTA는 멕시코에 일자리를 만들어 불법이민을 줄이려는 미국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시작되었다. GDP대비 미국의 1/20에 불과한 멕시코에서 미국이 경제적으로 얻을 것은 많지 않다. 그러나 45년 이후 장기간의 보호무역으로 망가진 경제의 개선을 위해 미국의 시장과 투자가 필요한 멕시코로선 미국의 제안은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의 행운이었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 멕시코의 수출은 340% 증가, $520억에서 $1610억으로 늘었고 만년 적자였던 미국과의 무역은 흑자로 돌아섰으며 해외투자 역시 인도의 3배에 달하는 연평균 $120억가 유입되었다. 그 결과 1인당 소득은 24% 증가, $4000를 기록하였고 경제규모는 세계 15위에서 9위로 상승, NAFTA는 성공으로 보였다.
NAFTA로 가장 큰 혜택을 본 것은 마킬라(maquila 또는 maquiladora)가 집중된 멕시코 북부지역이다. 마킬라는 무관세로 원자재를 수입,가공하여 재수출하는 공장을 말한다. 1964년 캘리포니아 농장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멕시코인의 취업을 허용한 브라체로 프로그램(Bracero Program)이 폐지되면서 늘어난 실업 해소를 위해 1965년 멕시코 정부는 마킬라 프로그램을 제정하여 미국의 1/10에 불과한 멕시코의 저임금을 활용하려는 미국의 투자를 끌어들였다. NAFTA에 따른 법률정비로 투자환경이 더욱 좋아진 1994년부터 마킬라 관련 투자는 2000년 정점에 이를 때까지 400% 증가, 2001년 대미 수출의 54%, 수입의 40%를 마킬라들이 차지하였고 마킬라의 고용 역시 2배 증가하여 멕시코 북부의 인구는 32% 늘었다.
테킬라 위기와 영세농의 몰락
멕시코 북부에서 NAFTA는 축복이었다. 그러나 1994년 멕시코를 뒤흔든 테킬라 위기(Tequila crisis)는 NAFTA를 사회적 약자의 재앙으로 만든다. 테킬라 위기로 마비된 금융시스템은 미국정부가 투입한 $500억로 7개월 만에 정상화된다. 그러나 멕시코 정부는 금융위기로 위축된 경기를 부양하기는커녕 초긴축재정을 편성하면서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1000억를 투입하였다. 정부재정이 GDP의 11%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대부분 가격변동이 심한 석유수출에 의존하는 멕시코 정부로선 $1000억는 감당하기 힘든 금액이다. 그러나 2000년까지 유지된 긴축기조의 목적은 재정압박보다 신뢰회복이었다. 해외투자 의존도가 높은 멕시코로선 외국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어 촉발된 테킬라 위기의 재발을 막아야 했고 위기의 원인 중 하나인 방만한 재정적자를 줄이고 페소화의 평가절하로 52%에 달한 인플레를 잡아야 했다.
멕시코 정부는 NAFTA 협상 시 농업생산성 개선을 위한 재정, 기술지원 예산을 편성했지만 긴축재정과 인플레 때문에 인구의 22%를 차지하지만 GDP 비중은 4.4%에 불과한 영세농을 포기한다. NAFTA의 유예조치에 따라 멕시코는 15년간 쿼터를 점진적으로 늘리고 쿼터 초과분에 대한 관세는 215%에서 0%까지 단계적으로 낮출(TRQ, tariff-rate quota)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소비하고 남은 소량의 작물을 시장에 내놓는 영세농에 의지해서는 충분한 공급을 확보하고 물가를 잡기 어렵기 때문에 멕시코 정부는 권리를 포기한다. 쿼터 이상의 농산물이 NAFTA 발효와 동시에 무관세로 들어와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주식인 옥수수 가격은 70% 폭락한다.
NAFTA 이전부터 몰락의 길을 걷던 영세농은 NAFTA 이후 미국 중서부에서 들어온 더 싸면서 더 좋은 옥수수가 쏟아지면서 더욱 궁지로 몰린다. 1994년 이후 50만의 일자리가 만들어졌지만 농업부문에서만 130만의 실업이 발생, 자파티스타 농민반란이 일어난 치아파스에서만 30만의 이농이 발생한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국경에서 3000명의 멕시코인이 죽었고 미국 내 멕시코 불법이민자 480만에 새로 65만이 더해졌다.
농업이 NAFTA로 손해만 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1994년 NAFTA 이전엔 금지되었던 야채와 과일의 대미 수출이 각각 80%, 90% 증가하여 $35억를 기록하였고 아보카도는1997년 500% 늘었다. 미국과 유럽의 겨울에 수출할 수 있는 작물에 투자할 여력이 된다면 NAFTA는 기회였다. 그러나 멕시코는 그 기회를 이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멕시코 혁명이 일어난 1910년 당시 2000개 가문이 87%를 점유하던 농지는 80년간에 걸쳐 소농에게 분배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 농가의 평균 보유농지는 10헥타르에 불과, 근대적 농기구도 없는 대다수 멕시코 농가의 소출은 자가소비를 하고 약간이 남아 마을시장에 내놓는 정도에 불과하다. 정부보조가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 농산물과 경쟁하려면 대출을 받아 땅을 늘리고 농기계를 구입하는 등의 투자로 생산성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수천 개의 은행이 정리되고 1994년부터 2002년까지 총여신이 73% 감소한 상황에서 전통적 신용불량자인 영세농에게 돈을 빌려줄 은행은 없었다.
신용경색과 경쟁력
게다가 남은 은행의 85%가 외국계로 바뀌면서 은행은 비교적 안전하고 마진이 좋은 소비자금융에 치중, 1994년 GDP의 10%이던 기업대출은 2002년 0.3%로 줄어든다. 미국, 캐나다 외에도 30개국과 FTA를 체결한 멕시코 시장에 인형부터 구두까지 전세계에서 더 싸고 좋은 물건이 쏟아지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내수위축에다 대출이 막혀버린 내수부문은 생산성을 높여 경쟁력을 갖출 여력이 없었다. 신용경색과 페소화 붕괴에 따라 실질소득이 25% 감소하면서 위축된 내수 때문에 경이적인 수출증가에도 불구하고 1996년에서 2003년 사이 경제성장률은 평균 2.1%에 불과했다. 세계은행은 NAFTA가 없었다면 성장률은 1.1에서 1.3% 정도였을 것이라 추산한다.
중소기업의 몰락은 내수부문에 그치지 않고 멕시코 경제 전반에 위기를 초래하였다. 평가절하된 페소화로 경쟁력이 높아진 멕시코 경제는 내수가 위축된 상황에서도 1995년 수출이 40% 증가, 1996년 빠르게 회복된다. 그러나 신용경색으로 투자여력이 없어진 비수출부문은 수출부문을 위한 연관산업(supply chain)의 역할을 해낼 수 없었고 연관산업의 부재는 전체 경제의 병목이 되어 수출부문의 발목을 잡았다. 마킬라들이 노동력 외에는 단지 3%만 멕시코에서 조달하고 원자재의 80%를 해외에서 조달하는 것은 당연하다.
2000년 멕시코 수출의 90%를 차지하는 미국경제가 불황에 빠지면서 생산의 98%를 미국으로 재수출하던 마킬라 부문은 2002년까지 고용의 21%, 생산의 30%가 줄어 멕시코의 (석유를 제외한) 수출은 연 1%씩 감소한다. 더군다나 멕시코 임금의 1/8에 불과한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서 멕시코의 이점은 거의 사라졌고 마킬라를 운영하던 회사들이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면서 미국경제가 회복된 후에도 마킬라 부문은 회복되지 않았다.
NAFTA는 원래 의도대로 회원간의 무역을 늘려 멕시코 경제의 파이를 키웠지만 NAFTA와 동시에 터진 외환위기 때문에 멕시코 정부가 기대한 것처럼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경제구조가 바뀌지 않았다. 신용경색으로 중소기업이 몰락하면서 산업기반이 만들어질 수 없었고 멕시코는 NAFTA 이전처럼 저임금가공무역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세계 어딘가에는 더 싼 노동력이 있게 마련이고 저임금은 지속적 성장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이석우 cura_lee@hotmail.com
26호 (2006.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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