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2월 사상최저치인 $10에 거래되던 WTI(서부텍사스 중질유)는 2000년 3월 $31, 2001년 11월 $18, 2004년 10월 $56에 거래되었고 2006년 4월 $80에 육박하며 사상최고치를 기록하였다. 2004년부터 본격화된 최근 원유가격의 급등은 석유시장의 불안정한 수급구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다른 상품보다 원유시장이 더 불안정할 이유는 없다. GDP에서 유류소비의 비율은 일정하며 다른 산업보다 수요에 맞춰 더 쉽고 빠르게 공급을 조절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최근 유가의 불안정성은 OPEC이란 카르텔의 존재가 시장기제를 왜곡하기 때문이라 말해진다.
1987년 이후 OPEC의 역할은 공시가격을 제시하는 것에서 가격결정은 시장에 맞기고 수요를 예측, 적정공급량을 산출하여 회원국간에 생산쿼터를 할당하는 것으로 바뀐다. 그러나 회원국의 생산과 선적을 감시할 권한과 처벌수단이 없고 시장논리보다는 회원국의 이해관계에 좌우되는 의사결정구조는 원유공급에 불확실성을 초래한다.
수요가 감소하면 비OPEC 산유국은 OPEC이 산출량을 삭감할 때까지 기다린다. 삭감량에서 회원국 중 누가 어느 정도를 떠안을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며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삭감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필요보다 적은 경우가 많다. 수요가 증가할 경우 쿼터를 늘리는 것은 합의하기 쉬운 일이다. 그러나 수요증가에 맞춰 빠르게 반응하기 어렵고 수요증가가 일시적인지 확인하기 위해 생산량을 늘리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더 이익이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걸프전과 같이 OPEC이 통제할 수 없는 정치적 위기를 제외하고는 원유가격이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OPEC 때문에 원유시장이 불안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90년대 말부터 유가가 불안정해진 것은 다음의 4가지 이유이다.
첫째, 1,2차 석유파동으로 장기간 유지되었던 고유가 때문에 전세계의 원유생산설비는 수요이상으로 확장되지만 공급과잉에 따른 1986년의 유가폭락과 함께 생산설비의 확장은 중단된다. 그러나 비OPEC 산유국의 유정 고갈에 따른 공급감소와 동남아와 중국의 경제성장에 따른 수요증가는, 설비투자의 정체와 맞물려 수요의 갑작스런 증가에 대처할 잉여생산력의 여지가 줄어들고 이는 태풍 카트리나와 같은 갑작스런 시장충격에 따라 유가가 요동치는 원인이 된다.
둘째, 국제유통비용이 감소하면서 재고를 쌓아놓을 필요가 줄어들어 정유회사들의 재고관리방식은 비용절감을 위해 단기수요에 맞춰 재고를 최소화하고 수요의 장기변동은 국가의 전략비축유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그러나 시장충격을 완충해줄 재고가 적기 때문에 시장변화에 바로 대응하기 어려워 갑작스런 수요변동이 바로 가격에 반영된다. 하지만 재고와 유가의 관계는 상호적이다. 첫째 유가가 불안정하면 소비자는 재고를 늘려 가격변동을 상쇄하려 한다. 둘째 가격변동이 심할 경우 생산자는 선물가격보다 현물시장가격이 낮으면 생산을 기피하게 된다.
셋째, 지난 20년간 선물시장의 영향이 증가되어 유가는 현재상황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수요와 공급에 대한 시장참여자의 예상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게 되었다. 원칙적으로 선물시장은 앞으로의 투자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여 자원분배가 더 효율적으로 만든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의 유가변동은 시장 자체의 상황보다는 정치적, 심리적 변수에 더 큰 영향을 받아왔다. 2004년부터의 극심한 가격변동은 공급부족을 예상한 선물시장에서의 투기가 원인이다.
넷째, 유가의 결정과정은 과거보다 더 투명해졌지만 소비와 생산에 대한 정보의 질은 개선되지 않았다. OECD 회원국에 한정할 경우에도 유류소비에 대한 데이터는 불확실하며 제때 발표되지도 않는다. 유류소비에서 통계를 신뢰할 수 없는 중국과 인도의 비중이 증가되면서 문제는 더 악화되었다. 공급측면에서도 회원국 국영회사들의 불투명한 경영 때문에 OPEC은 회원국의 정보를 부정확한 2차소스에 의존하고 있다. 더군다나 OPEC 이외의 군소산유국들의 존재는 생산정보의 불확실성을 더욱 악화시킨다. 불확실한 수요와 공급은 수급균형의 불안정성을 증폭하고 투기를 조장할뿐더러 OPEC이 시장을 잘못 이해하도록 만들어 가격구조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든다.
4가지 변수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그리고 그 결과가 장기적인지 단기적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유가의 불안정성을 이해하려면 넓은 시야에서 OPEC의 정책과 이들 변수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접근해야 한다.
이석우 (cura_lee@hotmail.com)
25호 (2006년 6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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