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대중적인 아카펠라 그룹이며 최고의 보컬 재즈 그룹으로 여겨지는 리얼 그룹(The Real Group)이 아카펠라 재즈라는 생소한 장르를 선택한 것은 1984년 그룹이 결성될 당시 밴드에 필요한 드럼 주자를 구할 수 없었으며 멤버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장르가 재즈였다는 엉뚱한 이유이다. 그러나 엉뚱한 시작과 달리 리얼 그룹만큼 ‘사람의 목소리가 최고의 악기’란 말이 실감나는 경우도 드물다.
형식적으로 아카펠라는 현악4중주와 비슷하다. 현악기라는 동질의 악기 4개를 사용한다는 것은 음악이론적으로 3개의 성부가 3화음을 연주하고 4번째 성부는 화성에 메이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멜로디를 표현한다는 것으로 음악의 기본이자 모든 것인 화성과 대위법에 얼마나 정통 한가에 곡의 성패가 달려있다. 다양한 악기를 동원할 수 없기 때문에 음색의 조합을 통해 음악적 재미를 더하거나 대편성의 웅장한 스케일을 구사하는 등 어떤 잔재주도 통하지 않는 형식적 제약은 작곡가에겐 특별한 도전이다. 모차르트는 6개 하이든 현악 4중주를 증정하는 편지에 ‘어떤 곡도 이처럼 쓰기 어려운 적이 없었다’고 적고 있다. 현악 4중주는 단순하기 때문에 오히려 교향곡보다 어려운 형식이다. 아카펠라 역시 3명이 악기 대신 화음을 부르면 남은 한 명이 멜로디를 부르는 4성부 형식이 기본이다. 그러나 아카펠라 형식은 현악 4중주보다 더 단순하고 더 어렵다.
악기를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음성은 음역과 성량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가장 넓은 음역을 갖는 피아노의 경우 7 옥타브를 표현한다. 바이올린은 4 옥타브,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가 3 옥타브를 조금 넘는다. 이 4악기를 겹치면 피아노의 음역을 표현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소프라노는 2 옥타브 정도, 알토, 테너는 이보다 약간 더 좁고 바리톤이 조금 더 넓다. 이들을 다 합쳐봐야 4 옥타브에 못 미친다. 더군다나 인간이 악기의 음량을 따라가기는 지난할뿐더러 악기만큼 운동성이 좋지도 않다. 사람이 바이올린의 활을 긁는 것만큼 빠르게 노래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다이내믹의 물리적 한계 때문에 현악 4중주보다도 더 단조로울 수 밖에 없는 아카펠라의 관건은 피치와 리듬의 조화를 이루면서 어떻게 다이내믹한 사운드를 만들 것 인가이며 이 점에서 리얼 그룹은 독보적이다.
각 성부가 제 목소리를 내면서 느슨하게 묶여질 때 그 곡은 다이내믹하게 들린다. 예를 들어 Manhattan Transfer나 New York Voices와 같은 아카펠라 재즈 그룹이 기술적으로 완벽하지만 지루하게 들리는 것은 각 성부가 화음과 리듬으로 타이트하게 묶여지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리얼 그룹의 각 파트는 하나의 전체로서 화음과 리듬을 만드는 동시에 각자의 다이내믹을 갖는 솔로로서 성부간의 다이내믹한 대비를 만든다. 각 파트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함께 템포와 볼륨를 바꾸는 것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룹으로서 이들이 만드는 다이내믹은 무대에 있는 것은 5명뿐이고 악기 반주는 일체 없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꽉 찬 사운드를 만들어 문외한도 즐길 수 있는 음악적 재미를 선사한다. 물리적 다이내믹의 한계를 마이크로 다이내믹으로 극복하는 것이 아카펠라의 재미라 말하지만 그것을 리얼 그룹처럼 ‘보여주는’ 경우는 듣지 못했다.
Bobby McFerrin, Die Prinzen, Boyz II Men 등의 인기에 힘입어 80년대 이후 아카펠라는 음악시장의 중요한 흐름이 된다. 그러나 아카펠라에 음악적 완성도와 함께 대중성을 부여한 리얼 그룹이 없었다면 ‘신기한 장르’라는 반응을 넘어 지금의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추천앨범: ‘Jazz:Live (1996)’
17호 (2005.12.15)
이석우 cura_lee@hot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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