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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판타지 세계: ルルティア (Rurutia)

루루티아(ルルティア)가 사는 곳은 주작(朱雀)이 살고 푸른 장미가 피며 사람을 숙주로 생각의 포자가 자라는 환상의 세계이다. 미인이라는 것 외에는 나이, 출신, 경력 등 일체의 개인사가 알려지지 않은 그녀처럼 그녀의 세계는 모든 것이 불분명하다.

루루티아의 음악에는 일관된 스토리가 있다. 그녀의 1집에서 3집까지는 기억을 잃어버린 여자와 그녀의 과거를 아는 남자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탐욕과 위선, 광기, 잔인한 폭력이 가득하다는 것 이외에 그들의 세계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생략된 것이 많은 배경 이야기, 출처가 애매한 造語와 은유로 가득한 시적인 가사, 어떨 때는 일본인조차 듣기 힘든 발음의 보컬 등 그녀의 언어는 분명한 의미를 만들지 않는다.

그녀에게 음악의 의미는 곡의 분위기가 만드는 이미지이다. 멜로디가 만들어진 다음 그 멜로디의 이미지에 맞춰 가사를 쓰는 루루티아의 음악에서 우선되는 것은 사운드가 만드는 ‘분위기’이며 분위기는 레이어의 대위법적 관계에서 만들어진다.

표: 사운드 레이어
        레이어                       악기                                          역할
4        리드        보컬/기타 등의 멜로디 악기                        멜로디, 즉흥연주
3        백그라운드        기타, 피아노 등의 화음악기/백 코러스        멜로디의 화음연주
2        레퍼런스        베이스 기타                                        루트(tonic), 레퍼런스 화음연주
1        패턴        드럼, 신디사이저                                        어택감, 공간묘사

멜로디 라인을 중시하는 고전파 음악과 발라드에서 4개의 레이어는 최상층의 리드 레이어를 중심으로 일치된 진행을 만든다. 그에 반해 바로크 음악에서 4개의 레이어는 서로 독립된 진행라인을 갖는다. 바로크 음악의 대위법적 논리를 재해석한 70년대 일렉트로니카에선 레퍼런스와 패턴 레이어의 진행을 음악의 중심으로 삼아 분위기와 리듬감을 강조한다. 일치된 협화음적 진행이 아닌 대위법적 진행을 갖는 바로크적 논리는 80년대 드림 팝, 노이즈 팝 90년대 트립합, 고딕 메탈의 논리적 근거를 제공한다.

멜로디 진행과 독립된 대위법적 진행으로 모호해진 공간과 사운드 윤곽은 불안정한 느낌을 만들어 앰비언트와 같이 꿈꾸는 듯한 느낌을 연출하거나 스칸디나비아 메탈처럼 슬픔, 분노 등 부정적 정서의 배경을 만드는데 적합하다. ‘환상적이다’ ‘신비감과 광기가 느껴진다’는 루루티아 음악의 인상은 바로크적 논리의 연출효과이다. 그러나 보컬이 아예 없거나 존재감이 약한 앰비언트나 스칸디나비아 메탈과 달리 보컬의 존재감이 강하고 멜로디가 아름다운 루루티아 음악의 정서는 보컬과 하위 레이어의 긴장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작곡가가 아닌 보컬로서의 루루티아는 특이하다. 그녀는 숨을 내쉬고 바로 삼키듯, 맑고 가는 달콤한 음색으로 언제나 소곤거린다. 웅얼거리듯 소곤거리는 것은 지금, 여기의 사건보다는 여기가 아닌 과거에 일어난 일을 회상하는데 적합하며 자기주장이 약하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것은 사라져간 것에 대한 아픔과 슬픔이며 깨질 것 같은 덧없는 아름다움이다. 그녀 음악의 신비감은 이러한 보컬의 정서에 하위 레이어의 윤곽이 불분명한 텍스쳐가 대비되어 만들어진 효과이다. 그러나 바로크적 텍스쳐가 만드는 분위기에 멜로디 라인의 통일성이 더해져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은 그녀가 원용한 앰비언트나 스칸디나비아 메탈에선 보기 힘든 것이다.

그녀의 음색과 정서를 모두가 좋아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미디어 기피증 때문에 지금까지 라이브는 물론 인터뷰, TV 출연은 물론 일체의 프로모션도 거부해온 그녀의 음악은 아는 사람만 아는 매니아의 전유물이 되었다. ‘포포로’와 같은 게임과 인기 애니메이션, 드라마에 채택되어 왔고 그녀의 곡이 모티브인 라디오 드라마, 단편영화가 만들어질 정도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대중적 지명도는 미미하다.

그러나 라디오 또는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서 한번 듣고 1년 동안 곡명과 아티스트를 찾아내 앨범을 사게 되었다는 식의 사연이 루루티아만큼 많은 아티스트도 없다. 루루티아의 음악은 정서적 코드가 맞는다면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추천앨범: R° (2002)

이석우

32호
2007.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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