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라 텡고(Yo La Tengo, 이하 YLT)의 음악은 재즈가 아니다. 그러나 정해진 악보 없이 리허설 중에 작품이 쓰여지고 연주마다 악보가 달라지는 작곡 패턴, 불규칙하고 예측하기 힘든 곡의 진행은 어떤 형식적 제약도 거부하는 프리 재즈(free jazz)에 가깝다. YTL의 장르는 일렉트로니카가 아니다. 그러나 몽환적인 사운드스케이프는 앰비언트 일렉트로니카의 그것이다. 어떤 밴드의 사운드도 YLT의 사운드와 같지 않다. 그러나 60년대 락앤롤, 컨트리락, 펑크, 뉴웨이브, 개러지락, 로우파이, 노이즈팝, 드림팝 등 거의 모든 락 스타일이 인용되는 YLT의 사운드는 거의 모든 밴드와 비슷하게 들린다. 이러한 모순이 YLT 스타일의 특징이다.
YLT의 음악은 다양하게 변해왔다. 데뷔앨범, ‘Ride The Tiger (1986)’에서 ‘Fakebook (1990)’까지 이들의 음악은 포크락과 사이키델릭의 결합이 중심이었다면 ‘I Can Hear The Heart Beating As One (1997)’까지는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풍의 노이즈 팝과 멜로딕 팝의 결합이 축이 되며 ‘And Then Nothing Turned Itself Inside-Out (2000)’부터는 음악의 뉘앙스에 무게가 실린 재즈, 인더스트리얼과 인디언 음악의 실험이라 볼 수 있다.
1984년 결성된 이래 ‘인디락의 마돈나’, ‘비평가의 연인’으로 불리며 평단의 절대적 지지와 두터운 팬층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안주하지 않는 실험정신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동원하는 다양한 스타일은 효과음을 위한 부품일 뿐이다.
YLT의 음악은 질서와 무질서의 균형이다. 그들 음악의 특징인 포크풍의 잘 짜인 멜로디 라인은 곡에 질서를 잡아준다. 그러나 그 멜로디가 흐르는 공간은 신디사이저의 변칙리듬(syncopation)과 전자기타의 피드백과 리버브(reverb)로 만들어진 화이트 노이즈 즉 무질서의 텍스쳐이다. 이들이 인용하는 다양한 스타일은 멜로디와 텍스쳐를 만드는 기법일 뿐이다. 멜로디와 노이즈, 질서와 무질서의 긴장관계는 조용하면서 요란하며, 부드러우면서 힘이 있고, 밝으면서 어두우며, 가벼우면서 무거운, 모순적인 무드의 변주를 만든다.
스타일만이 효과음의 부품은 아니다. 보컬은 다른 악기와 동등한 지분으로 무드를 만드는데 참여할 뿐이다. 캐플런과 허블리 부부가 주인공인 YLT의 가사는 직설적이고 개인적이며 이라크 전쟁 반대를 위해 쓰여진 ‘Nuclear War’와 같이 정치적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매혹적이지만 조용히 속삭이는 캐플런의 음성은 지나치게 억제되어 주목을 끌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가사의 내용이나 가사를 말하는 보컬이 아니라 곡의 무드이다. YLT가 유명한 것은 보컬이 아닌 그들의 작곡과 연주 때문이며 그들의 음악에서 분위기는 (악기로서의) 보컬과 악기의 합주로 만들어진다. YLT의 스타일은 내용이나 형식보다는 감수성에 근거한 절충주의이다.
YLT의 음악은 분명 쓸쓸하지만 분노나 증오, 자괴감 등의 부정적인 감정과는 거리가 멀다. 편안하고 느릿하게 속삭이는 이들의 음악은 방금 실연한 이를 위로하는 데는 어울리지 않지만 첫 데이트나 이런저런 세상사가 오가는 잡담의 훌륭한 배경음악이 되어준다.
YLT가 팝에선 영원과도 같은 20년이란 시간을 견뎌온 비결은 자기변신을 통해 락의 흐름을 지배해온 그들의 적응력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벨벳 언더그라운드로 불리는 그들에게 골치 아프고 난해한 음악만을 기대한다면 그건 기우일 뿐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팝밴드이며 백과사전적인 인용과 끊임없는 변신은 소비자는 변덕스럽지만 ‘진짜’를 알아본다는 상식의 실천일 뿐이다.
추천앨범: Prisoners Of Love: A Smattering Of Scintillating Senescent Songs 1984-2003 (2005)
이석우 (cura_lee@hotmail.com)
27호 (2006.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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