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타 준(柴田淳, 1976년생)이 처음 음악을 접한 것은 3살부터지만 그녀가 음악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사촌이 바이올리니스트란 이유로 피아노를 배워야 했던 그녀는 입시를 위한 주입식 교육에 적응할 수가 없었고 초등학교 4학년 때 포기한다. 그녀에게 음악은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고1때 우연히 TV에서 본 SING LIKE TALKING의 곡을 계기로 그녀는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음악을 시작한다.
다운 또는 미들 템포의 리듬, 피아노 중심의 심플한 편성과 편곡 등 시바타 준 음악의 특징은 멜로디를 강조하는 장치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녀의 멜로디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 쉽게 와 닿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녀의 앨범처럼 변화가 적고 평탄한 멜로디만 반복된다면 단조롭게 들리기 쉽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가 바라는 것은 안정적인 구조를 만들어 차분하게 생각하면서 가사를 듣도록 하는 것이다. 시바타 준에게 음악은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분명하게 의미가 전달되어야 한다. 힘을 뺀 채 자연스럽고 쉽게 쉽게 부르는 느낌의 그녀의 보이스 역시 정확한 가사전달을 위한 장치이다. 예를 들어 R&B풍의 힘이 들어가는 발성에선 ‘이’와 ‘에’ 음이 뭉개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파세토의 비브라토에서조차 차분하고 부드러운 시바타 준의 발음은 정확하다.
연애는 물론 남과 어울리는 것이 서툰 그녀에게 음악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싫어 배려(面前)란 말로 예의를 차리고 속내(本音)를 가려야 하는 인간관계는 어떻게 익숙해질 수 없는 피곤함이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바라는 것이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이다. 그러나 음악으로는 가능하다.
여성의 불안한 연애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한 시바타 준의 음악은 20대 직장여성에게 인기가 높다. 그러나 언제나 자신을 걱정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랑을 쏟아주는 어머니에 대한 생각(‘光’), 자신의 청소년기를 돌아보면서 사랑을 받는 방법도 주는 방법도 몰라 삐뚤어져 가는 시기의 심리(‘未成年’)나 야근을 마치고 주저앉아 마시는 캔맥주의 거품을 보며 떠오르는 부서진 꿈과 미래에 대한 의문 등 살면서 부딪칠 수 밖에 없는 문제들의 비중이 높아진다. 그녀는 사랑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용기가 없어 말하기 어려운 속내를 음악으로 털어내고 싶은 것이다.
시바타 준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길을 가다 문득 돌아보게 만드는 외모를 가진 털털하고 재미있으며 짜증도 낼 줄 아는 보통사람이다. 그러나 음악이란 자화상에 그려진 그녀는 사랑과 이해를 구하지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스스로도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내향적인 여성으로 남성에겐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부모와의 갈등, 실연, 이별, 소소한 일상사 등 자신의 개인사를 통해 그녀가 말하려는 것은 실제 사건의 뒤에 숨은 자신의 속내이다. 예의란 껍질로 가리고 싶은 연약한 속내는 그녀의 깔끔한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쓸쓸하고 우울하다.
그녀의 슬픈 노래도 우울한 노래도 더 슬프게 더 우울하게 부를 수 있을 것이고 더 강한 말과 사운드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녀의 음악은 눈물을 강요하는 것도 세상에 싸움을 거는 것도 아니다. 그녀 음악의 메시지는 명쾌하고 솔직하지만 절제된 정서는 끈적이는 감정의 홍수와는 거리가 멀고 무엇을 생각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들어줄 사람이 있으면 듣고 자신의 경험에 비춰 ‘그래 나도 그런 적이 있었지’란 말 한마디면 그녀 음악에 대한 최고의 찬사이다.
그녀의 음악은 힘을 내라고는 하지 않지만 피곤하거나 괴로워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을 때 등을 가볍게 밀어주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 힘이 시바타 준이 조금씩 인기를 모아가는 이유이다.
추천앨범: Single Collection (2005)
26호 (2006.7.31)
이석우 cura_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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