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지만 어깨가 들썩이는 비트가 있고 편안하지만 날이 선 락의 맛도 느껴지는 음악이란 마법을 보여준 28살의 늦깍이 신인 젬(Jemma Griffiths)은 미국에서만 데뷔 앨범 판매고 25만장을 기록, 데뷔와 동시에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다이도(Dido), 베스 오튼(Beth Orton)을 연상시키는 안개처럼 어둡게 가라앉은 음색과 전자음과 샘플이 강조되는 트립합 기법 때문에 보통 싱어송라이터로 분류되지만 멜로디가 먼저 쓰여진 다음 새로울 것 없는 사랑타령의 가사가 얹혀지는 젬의 음악은 사랑과 삶에 대한 오리지널한 사적 고백과는 거리가 멀다.
부드럽고 조용하지만 약간 허스키하면서 사는 것이 피곤한 듯 슬픔이 느껴지는 그녀의 음색은 분명 그녀 음악의 첫인상을 결정하지만 그녀의 음악을 우울하다거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라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그녀의 가사는 낙천적이며 탄력적인 비트와 매력적인 멜로디는 근심걱정은 잊어버리라는 듯하다. 그녀의 음악을 결정하는 것은 보컬의 음색이나 가사가 아닌 비트와 멜로디로 세련된 매력적인 팝이란 말 이외에 다른 말로 젬의 음악을 설명하기는 곤란하다.
처음 듣는 사람의 귀를 사로잡고 리듬에 맞춰 머리를 끄덕이게 하며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하는 것은 전공인 법학 강의를 듣는 시간보다 클럽과 음악 페스티벌에서 DJ와 프로모터로 일하는 시간이 더 많았고 졸업 후 브레이크비트 전문 음반사를 운영했으며 마돈나의 히트곡을 쓰기도 한 그녀의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감각이다.
젬의 음악에 등장하는 테크노, 힙합, 레게, 락 등의 다양한 리듬은 차용에 그치지 않고 리듬섹션만 연주하더라도 음악이 되는 수준으로 리듬에 대한 탁월한 감각이 있는 그녀가 댄스 뮤직이 아닌 팝을 선택한 것은 멜로디를 강조하는 그녀의 성향과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담아낼 수 있는 편안한 다운템포의 곡을 쓰려는 의도 때문이다.
젬의 음악은 힙합, R&B, 주류 팝, 싱어송라이터, 락, 클래식 등 다양한 스타일의 세련된 결합으로 고급스런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아시아나와 빈폴 광고에 그녀의 곡이 사용된 것은 그녀 음악의 성격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기존의 스타일을 혼합하는 것은 물론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젬만큼 그것을 세련되면서 새롭게 들리는 경우도 드물다. 젬의 음악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는 21세기에 새로운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추천 앨범: ‘Finally Woken (2004)’
19호 (2006.1.19)
이석우 cura_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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