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홍(深紅)의 안타레스(Antares)
“그 분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둘 다 죽여버렸죠. 그 놈이.“
그는 섬짓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순간 오싹 소름이 끼쳐 그는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러나 정작 그 말을 꺼낸 사람은 별 일 아니라는 듯 제법이나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다른 일 같으면 분명 내게 시켰을 텐데, 그 일은 직접 해치워 버리더군요. 저로 봐서는, 다행한 일입니다만.“
포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만일에, 정말 만일에 내가 그 애의 어머니를 죽이기까지 했다면. 그랬다면, 정말 무슨 낯으로 지금 그 애를 볼 수 있겠습니까. 그게 그나마 다행한 일이지요.“
“......“
그러고 보니, 방금 그는 양부는 그 놈이라 호칭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양모였을 그녀는 부인이라고 불렀다. 일말의 존경심의 발로일까.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복잡한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명목상 친딸로 되어있는 사람에게 그런 짓을 저지르는 인간이 과연 부인에게 좋은 남편이었을까. 그러나 어찌되었든 그녀 또한 불륜을 저질러 아이를 가진 것 또한 사실이 아닌가. 그런 사람에게 존경심 따위를 품기에는, 눈 앞의 이 사람 또한 너무 빗나가 있었다. 그렇다면.
“물론, 그 애는 모릅니다. 명색 아버지라는 작자가 어머니를 차 안에 가두고 불을 질러 태워 죽여버린 걸. 안다면 그땐 정말로 미쳐버릴 겁니다. 뭐 지금도 그다지 정상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는 씁쓸히 웃었다. 새삼 입이 타는지 그는 다시 손을 뻗어 담배 한 가치를 더 끄집어냈다. 후우. 길게 뿜어져나오는 담배연기의 절반쯤은 이미 한숨인 것 같다. 그는 찬찬히, 착잡히 눈을 깜박이는 그 얼굴을 넘겨다보았다.
“사랑하시는군요. 그 분을.“
순간 그는 멈짓거렸다. 허를 찔린 듯한 표정이 여실히 얼굴 위로 스쳐가며, 그는 잠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거렸다. 그런 상황에서의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정의내리기 힘들며 또한 덧없어 보일 것인지 일말의 짐작이나마 갔던 탓에, 그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돌렸다.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좋다는 듯이.
“어려운 선택을 하셨군요.“
그는 중얼거렸다. 여지까지도 힘들었겠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상처가 많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때때로 스스로를 너무도 쉽게 내던져 버리기 때문이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사랑과 싸워야 한다는 딜레마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한참만에야 차라리 탄식에 가까운 목소리로 그는 답했다. 어지간히나 초조했던지,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그는 벌써 세 가치째 담배를 꺼내어 물고 있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요.“
“......“
그 짧은 말은 그에게 묘한 감흥을 안겨 주었다. 그는 한동안 아무런 사심도 담기지 않은 눈으로 조용히, 말없이 담배 연기만을 피워 올리고 있는 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좋습니다.“
그는 유쾌하게 말했다.
“안타레스, 가져가지요.“
순간 그의 얼굴에 짧은 안도의 기색이 스쳤다. 그는 한동안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짧은 순간 새삼 여러 가지의 감회가 스치는 듯, 그는 오랫동안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고맙습니다.“
짤막하게 감사의 말을 내뱉은 그는 다시 조금은 무뚝뚝하게 입을 다물어버렸다. 어쩐지 그런 그에게서 짧고도 격한 비장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말하기 힘든 것을 말해 버리고 난 직후의 여진(餘震)이라기에는 다소 강한.
“그럼 한 가지 묻겠습니다. 안타레스를 가지고 계신 분은 그 아가씨이신가요?“
“네.“
“어쩌다가?“
“그건.“
포는 지그시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본래 그 애 어머니의 유품이었습니다. 결혼선물이었다고 하더군요.“
무언가 불쾌한 생각이 난 것인지 그는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무어라 입을 열어 말을 이으려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말로 하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듯 했다.
“알겠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는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 재빨리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포는, 천천히 입을 열어 마지막 단서를 꺼냈다.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 부분에서 어쩐지 짧지만 강렬한 머뭇거림이 느껴진 것은 어째서였을까.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며칠 후에, 제가 다시 오겠습니다. 일은 그 때 처리해 주십시오. 오늘은 일에 대한 약속을 한 것만으로 끝냅시다.“
일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차 한잔 들겠느냐는 말도 사양한 채 돌아가 버렸다. 베란다에 기대어 선 채 아래를 내려다 보자, 총총히 입구를 빠져나와 차에 올라타는 그의 검은 옷깃이 흘끗 보였다. 그리고 행여 이 곳에 온 것이 누구에게 들킬세라 걱정이라도 하는 양,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는 재빨리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 끼이익. 윗층에서도 들릴법한 타이어 마찰음을 내며, 차는 얼마간을 후진하여 격렬하게 멎었다. 그러더니 고스란히 기역자로 방향을 틀어, 나는 듯이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볼보(Volvo)인가. 그는 중얼거렸다. 뭐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에 대한 인간적인 호기심이 일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알아낼 방법이 없다. 그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람을 죽이고 그 살인 현장에 자신만의 표식을 남겨놓고 사라지는 킬러 같은 것은 지어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상일 뿐이다. 직업으로서의 살인은 현실이다. 그런 겉멋 든 짓을 하는 자라면 오히려 진짜라고 볼 수 없겠지. 그는 그럴 사람은 아니다. 자연히, 그에 대한 정보 같은 것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겠지. 있다손 치더라도, 한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가 아닌 잔인무도한 연쇄살인범으로서의 전과 경력만 남아있을 뿐일 테니, 그것은 내가 알고 싶어 하는 바가 아니다.
심홍의 안타레스. 그는 가만히 입 속으로 그 보석의 이름을 중얼거려 보았다. 사파이어 중에 붉은 빛이 나는 것을 특별히 루비라고 부른다. 피전 블러드(pigeon blood)에 가까운 색깔일수록 상급의 루비로 취급되니까, 보석을 만지는 사람 치고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안타레스라면 그 빛깔이 얼마나 붉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 바가 있었다. 어쩌면 피전 블러드가 아닌 휴먼 블러드(human blood)에 가까운 색일지도. 그러고 보니, 그 보석은 이 피비린내 진동하는 커플에게 참으로 어울리는 예물이 아닌가. 그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런 것이겠지. 이미 그도 한 말이지만, 그녀는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초경이 시작될 무렵부터 줄곧 아버지에게서 성폭행을 당해왔다고 하니까, 제정신이라면 그게 오히려 문제가 있는 것이겠지. 그녀를 데리고 멀리 도망이라도 칠 셈일까. 그런다 하더라도 이미 산산이 부서져 황폐해져 버린 그녀의 정신을 되돌리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마도 내게 이런 부탁을 해 온 것이겠지. 아버지의 추억을 지워 달라는. 그러고 보면, 거절을 들먹였을 때 말없이 총구를 들이대던 그 모습조차도 참으로 그 사람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리도 아닐 것이다. 그가 아는 방법은 그것밖에는 없었을 테니까.
“......“
하지만, 그것이 다일까.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단순히 그렇게만 생각하고 말기에는, 그의 육감(六感)이 느끼는 사건의 진상은 조금 더 심각한 것이었다. 정확히 어떤 것이라고 집어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무언가, 지금 자신이 정리한 대로만은 아닐 것이라는 강렬한 불길함이 온 몸을 끼쳐왔다. 문득 오싹 소름이 돋았다. 저도 모르게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뭘까. 도대체 이 기분은.
“......“
후우. 그는 짐짓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언가 자신이 채 다 모르는 것이 있다는 심상치않은 기분이 저절로 입맛을 다시게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이미 약속을 했으니까. 그는 몸을 돌렸다. 아까 사 온 얼그레이 티백 팩이, 아직 뜯지도 못한 채 티테이블 위에 던져져 있었다.
이번에 산 얼그레이는 그 맛이 이상했다. 특유의 베르가못(bergamot) 향은 여전했지만, 평소 때 늘 상큼하게만 느껴졌던 그 엷은 오렌지 향 속으로 어쩐지 비릿한 피의 냄새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평소 하던 대로 흰 찻잔에 티백을 담가 둔 채 한참동안 다른 일을 하다가 문득 돌아보면, 흰 잔 속에 우러난 붉은 홍차가 마치 금방 흘린 피처럼 보여 흠짓 놀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몸이 허해지기라도 한 건가 고개를 내젓고 찻잔에 입을 대면, 입 속으로 넘어오는 그 느낌이 끈적한 듯 느껴져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흡사 동물의 생피를 빨아대는 느낌이었다. 평소 입 안을 가시는 그 깔끔한 맛을 높이 사 얼그레이를 즐겨마시던 그였던지라, 느닷없는 이런 얼그레이의 변화는 조금도 달갑지 않았다. 심지어는 몇 번이고 팩 위에 찍힌 유통기한 날짜를 확인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혹시나 몇 천개 중에 하나 나온다는 불량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어디 팩 중에 티백 한 두개도 아니고 팩에 든 홍차 전부가 이런 맛을 낼 수는 없다는 쪽이 오히려 사리에는 맞았다.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 내 입맛에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그는 씁쓸히 웃었다. 그러고 보니 이 홍차를 사러 나갔다 온 날 그 사람이 여기로 찾아왔었지.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찻잔 속에 출렁이는 붉은 액체를 바라보았다. 홍차의 맛이 변해버린 건 그 사람이 남기고 간 여운이 너무 커서일 것이다. 그런데 그 여운이란 건 도대체 무엇일까. 피처럼 붉다는 안타레스일까, 아니면 그 주위를 맴돌던 이유를 알 수 없는 피비린내일까.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천천히 잔을 들어 홍차 한 모금을 삼켰다. 그의 표정은 곧 찡그려졌다. 그리고, 정말로 견딜 수 없다는 듯 싱크대 속으로 아직도 온기가 남은 홍차를 쏟아 부어 버리고 말았다.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흠짓 놀라 잠에서 깨어나 벌떡 몸을 일으켰다. 철이 들고 난 이후로 숙면(熟眠)은 이미 그의 것이 아니었기에, 그 동작은 잠자다 깨어난 사람의 그것답지 않게 날렵하고 민첩했다. 소리없이 뜨여진 다갈색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싸늘하게 빛났다.
“......“
탕탕탕.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재빨리 침대 아래로 내려섰다. 침대 아래 벗어둔 슬리퍼를 신는 것도 잊은 채, 그는 맨발로 현관 앞까지 전력질주하듯 달려갔다. 초인종도 아닌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라. 그것도 이 늦은 시간에. 흘끔 시계를 본다. 새벽 세 시가 좀 못된 한밤중이다.
“......“
조금만 기다려요, 이 성질 급한 양반. 나직이 중얼거리며 걸쇠를 벗기고 문을 연다. 문이 열리자마자 그 뒤에 서 있던 시커먼 그림자가 쏟아지듯 안으로 들어섰다. 그다지 훤칠한 키는 아니나마 작다고도 할 수 없는 자신보다 한 뼘쯤은 큰 키,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군데군데 희끗하게 보이는 은빛 머리칼.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위에 진동하는 피의 냄새. 하아하아. 그는 급하게 달려오기라도 한 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재빨리 문을 등지고 서서, 손을 뒤로 돌려 문을 잠그었다.
“...조심성이 없으시군. 누구냐고 묻지도 않고 문부터 열어주다니.“
숨이 턱에 붙은 듯한 목소리로, 그러나 그 지난 번 그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여유로운 목소리로 그는 말했다.
“하기야, 도둑 주제에 문단속도 안하고 나다니는 사람이니 어련할까만은.“
그것은 분명히 농담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사람에게는 더없이 어울리지 않는 것이어서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그 자리에 굳어진 채, 의혹이 가시지 않은 눈초리로 이 거한(巨漢)을 머리부터 발 끝까지 한 번 훑어보았다.
“조심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걸 눈치챘을 뿐입니다.“
그는 예의바르게 말했다.
“며칠 후에 다시 오겠다고 했으니까.“
“그렇습니까.“
포는 빙긋 웃었다. 그 모습이 여러 가지로 눈에 설어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를 만난 것은 단 한번 뿐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그것으로 족하다. 그리고 지금 같은 이런 건, 이 사람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늦은 밤에 불쑥 찾아와 죄송하군요.“
그는 유쾌한 목소리로 뒤늦은 사과의 말을 건네오기까지 했다.
“목이 마른데, 물이나 한 잔 주시겠습니까.“
후우. 내어준 물을 반 잔 이상이나 한꺼번에 들이키고는, 그는 다음 순서라는 듯 담배를 꺼내어 물었다. 그는 들떠 있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랬다. 무언가 아주 재미있는 일이라도 발견한 사람인 양. 그러나 입술 사이에 물린 담배의 끝부분 불티를 바라보는 그 눈빛은 또 묘하게 처연하여, 그는 잠시 의아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무슨 일이십니까?“
“아.“
그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그 웃음에서는 또 들뜬 기색이 전부 사라지고 처연해 보이기까지 해서, 그는 잠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제, 안타레스를 가져와도 될 겁니다.“
후우.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듯 짙은 담배 연기를 뱉아내었다. 그리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놈을 죽여 버렸으니까.“
“......“
그 짤막한 말이 던진 충격은 제법 큰 것이어서, 그는 잠시 뭔가를 물어보려던 것도 잊은 채 망연히 눈을 깜박였다.
“살려달라고 빌더군요. 원하는 것은 다 줄 테니까, 제발 그만하자고. 이런 것 저런 것을 모두 입에 올리면서도 그 애 얘기만은 안하더군. 모를 거라고 생각했을까? 뭐 그랬을 수도 있겠지.“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희열일까. 그는 한 발 옆으로 비껴선 채, 술에 만취해 의식을 잃어버린 사람을 보는 듯한 기분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주절주절 말이 길어지기에 입에 총구를 물렸지. 그리고.“
휘익. 그는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웃고는 있었으나 그의 눈은 몹시도 허망해 보였다. 양부라고 했다. 어떤 사연에서 그런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사람은, 처음부터 그렇게 죽어 없어져야 마땅했을 그런 사람이었을까. 처음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 사람 또한 한 때는 마음 속으로부터 그를 존경하고 따랐을지도 모른다. 그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사람은, 지금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 버린 것이다.
“그랬군요.“
그는 중얼거리듯 답했다.
“기억을 죽이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셨습니까.“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니까요.“
그는 답했다. 언젠가 한번은 했던 말. 스스로 뱉어낸 그 말의 무게에 짓눌린 듯 그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한참만에야 고개를 들어 입을 열었다.
“이제 됐습니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가서, 안타레스를 가져가시죠. 그리고, 그에 얽힌 기억들 모두. 부모도, 그 집도, 그리고, 나도.“
아주 힘든 말을 해버린 듯 크게 한숨을 내쉬며 길게 담배연기를 뿜어내는 그 옆모습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추억마저 지우라는 건가. 그럼 도대체, 이 사람은 무엇을 원해서 이런 부탁을 해 왔던 것인가.
“실례지만.”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천천히 물었다.
“그러니까, 모두 지워 달라는 겁니까? 당신의 추억까지도?”
“들으신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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