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신문
 

 

 
 

 

    홈 / 문화 / 문학

subject [수필] 담배 끊기 - 김문호

내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것은 남녘에 있는 어느 국립대학에 입학한 그해 늦가을쯤이었다.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주말에만 외출이 허용되었다. 그해 2월 초하루, 갯바람이 매서운 바닷가 교정의 가 입학식장에서 만난 기숙사 룸메이트는 서울에서 왔다는데 담배 냄새를 푹푹 풍겨 “야, 장래가 구만리 같은 놈이 담배는 와 피노?”라고 하자 그는 같잖다는 표정만 지을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때 이미 삼수(三修)의 노장이었던 그는 까까머리 애송이의 투박한 사투리에 기도 안 찼을 것이다.
한 달간의 혹독한 훈련에 동병상련의 정분으로 가까워진 우리는 주말외출도 함께 했다. 그때 풍선처럼 부푼 기대로 규제의 울타리는 벗어났지만 완벽하게 객지인 그 곳에서 막걸리나 마시는 것이 고작이었다. 모처럼 만의 자유를 놓칠세라 밤을 새워가면서 마셔대곤 했다. 그런 밤이면 철로 변 빈대떡집 2층 골방창 너머로 야간열차들이 철거덕철거덕 지나다니고, 내 골초 친구는 담배를 붙여 물었다. 그런 그가 멋있다는 생각은 해도 담배를 끊으라고 윽박질렀다. 그는 언제나 빙긋이 웃을 뿐 들은 체도 않고 도리어 “너 같은 놈이야말로 한 번 맛들이면 평생을 헤어나지 못 할 걸”하면서 이기죽거리기까지 했다.
그해 가을이었다. 생일 턱을 내겠다는 그를 따라 ‘빠’라는 술집에 갔다. 밀폐된 공간의 생소한 분위기가 어색하고, 노출이 심한 여급들의 밀착시중이 민망스러웠다. 맛도 모르는 맥주를 냉수처럼 들이켜는 나의 면전에서 친구는 능수능란하기만 했다. 그의 현란한 유영 앞에서 눈길조차 가누지 못해 화끈거리는 내 귓등으로 뜨끔한 충격이 꽂혀들었다. 내 짝지 여급이 생각 없이 뱉은 “하이고, 담배도 못 피는 요 맹추. 귀여운 숫XX.” 이라는 한마디가 수모 자체였다. 취해있었던 그녀가 나보다 몇 살 많다고 하더라도 사나이의 자존심에는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담배를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그녀들을 제압하고 싶었다. 염치를 접고 친구 녀석에게 한 수를 청했더니, 담배는 권하면서 배우는 것이라 했다. 가로변 점포에서 파고다 한 갑 사들고 여체의 신비를 벗기듯 밀봉 띠를 풀어내던 것이 내 흡연의 시발이었다.
그로부터 사십여 년. 주변 대다수의 골초들이 비 흡연으로 변하고 별의별 권리까지 들이대면서 몇 안 남은 애연가들을 핍박하는 세태가 되어버렸다. 실은 나도 몇 번이나 끊어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아서였다. 친구 녀석마저 어느새 입을 씻고는 벙긋거리는 것이 아니꼬워 딱 끊어버리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술을 마시거나 바둑을 둘 때까지는 그런대로 견디겠는데 뭐라도 써보려고 긁적이는 시간에는 도무지 참지 못했다. 두어 번의 시도가 실패로 끝났을 때, 담배 끊기를 포기해 버렸다. 나이 마흔이면 자신의 어떤 행위도 정당화한다는 교활성 때문일까.
나는 끽연 옹호론자가 되면서 예찬의 이론서를 준비했다. 그때 내 주체사상의 원전은 린위탕(林語堂) 박사의 지혜서였다.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은 단조로운 정신의 부러진 날개로는 상상력이 솟아나지 못하며 상상력 없이는 어떤 생각도 펼칠 수가 없다고 했다. 무척 위안이 되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끊겠다고 버둥거렸던 3주간은 일시적인 도덕적 타락의 발작이었다. 거기에 나 자신의 행동강령까지 구비하기로 했다. 국산과 외국산을 불문코 가장 순한 것으로만 피울 것. 어떠한 경우에도 하루 한 갑을 넘지 않을 것. 식전 흡연은 엄금할 것 등이었다. 그런 연후에야 약간의 해학과 풍부한 매혹의 결정체인 끽연의 도락을 향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금연빌딩이 확산되면서 당초의 터줏대감들이 길거리로 밀려나고, 구름 속을 날면서 구름을 짓던 멋진 운치는 공항의 닭장 끽연실로 쫓겨났다.
더욱 집안의 돌발 사태는 아내가 아파트를 금연구역으로 선포한 것이다. 자신의 건강 핑계에 이미 성가해나간 자식들의 청원까지 업고 얄밉도록 끈질긴 내 흡연에 회심의 일격을 가해왔다. 그야말로 내우외환에 삼각파도의 충격이었다. 그래서 글이라도 써보려는 날은 밤새 마당의 벤치로 드나들며 경비원의 눈초리를 감수해야만 했다.
마지막 시련은 핏줄을 타고 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천륜의 여린 새싹 앞에서 니코틴의 독성을 뿜어대지 못 할 거라 여기고 이번에도 내가 고심의 장고 끝에 묘수를 찾아낸 것이었다. 손자를 만날 때는 양치질에 샤워를 하고 의복 일체를 갈아입을 것이며, 손자와 함께 있는 시간에는 담배를 구입하지도, 보유하지도, 피우지도 않을 것임을 선포한 것이었다. 그러자 내 끽연은 난공불락의 반석 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어느 더운 날 얼음에 채운 동동주를 겁 모르고 마셨다가 며칠 병원신세를 진 일이 있었다. 술이 깨면서 멀쩡해진 나는 내과병동으로 옮겨졌는데, 그곳 병실의 여섯 환자 중 나를 뺀 다섯 명이 암환자였다. 그들은 나도 암환자로 생각하며 발병연유를 궁금해 하다, 설마 하면서 저렇게 줄기차게 피워댄 탓이지 하며 웃었다고 한다. 나처럼 건장한 사람이 폐암에 걸릴 줄 꿈에도 몰랐다는 것이며, 그러나 자기들은 다행히 조기에 발견한 경우라 약물치료만으로도 가능한데, “이주일이 권할 때만 끊었어도….”라는 어이없는 농담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밤중에 우연히 훔쳐본 그들의 모습은 사뭇 딴판이었다. 하나 같이 심각한 모습이었다. 간혹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와 병실을 섬뜩한 분위기로 돌변시키니, 남의 일 같지만 않았다. ‘크리스마스 캐럴’ 속의 스크루지처럼 내가 미래의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환상이 야음을 타고 엄습해오곤 했다.
병원을 나서던 날, 담배를 끊기로 작정하고 아내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글은 못 쓰겠네요?” “담배 하나 안 피운다고 안 써지는 글이라면 안 쓰고 말지 뭐.”
해외여행에서 막 돌아와 어리둥절한 아내는 뭔가 꼬투리를 잡아보려는 눈치였지만, 나는 내가 병원에서 당했던 일을 죽어도 발설하고 싶지 않았다.


(수필가)

26호 (2006.7.31)

list       

prev [연재소설] time to remember (3) - 박미정 kbnews
next 대지위에서 (탈북여성에게) - 임솔내 kbnews

Copyright 1999-2024 Zeroboard / skin by kimamore.com

회사소개  |  지역소식  |  시사  |  인물탐방  |  문화  |  공지사항  |  게시판  | 사이트맵

주소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2가 157 사조빌딩 223호
경북신문사 대표전화 :02-365-0743-5 | FAX 02-363-9990 | E-mail : eds@kbnews.net
Copyright ⓒ 2006 경북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등록 서울 다 06253 (2004.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