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짙은 그늘에 앉아
더위를 식힌다.
잎새를 지나는 바람이
등골에 밴 여름을 씻어내듯
흔들리는 가지 끝 바람에 살랑이는 잎새로
한 세월 뚜벅뚜벅 가려던 길
어쩐 일이냐, 누런 단풍잎으로 지레 떨어져
더위에 허덕대는 몰골로 앉아 있느니.
한 때 물살을 타고 오르는 은어 떼처럼
맑고 서늘한 여울물에 몸을 맡기고
바람처럼 물처럼 시중 더위 건너가려는 걸음
깨금발 딛고 세상 넘보는 욕심이라니.
찌는 듯한 여름 대낮, 막힌 마음 환히 열어놓는
목덜미 간지리는 향그론 산들바람 길이고자 했는데
손바닥 그늘 하나 짓지 못하는 재간으로
앉아 있는 오늘, 캄캄한 낭패의 길
내 몸 어디에서도 시원한 바람 한 점
일지 않았다.
(시인ㆍ경주문인대학 학장)
16호 (2005.1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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