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그 느티나무 가지에서 그렇게 신나게 매미가 울더니
농부의 이마에 그렇게 송골송골 땀방울 맺히게 하더니
소낙비 억수로 퍼부어 강물을 그렇게 누렇게 물들이더니
둥근 보름달 앞세우고, 서늘한 풀벌레소리 거느리고
석류 붉은 입술로, 감나무 가지마다 추억 매달고
하, 이 가을은 이렇게 찾아왔다.
이 가을엔 누군가에게 다정한 엽서葉書라도 띄워
아직껏 한 번도 쓰지 못한 언어들로 채우고 싶고
가냘픈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들판에 서서
소슬하게 불어오는 가을 잎새 바람소리 들으며
잊혀진 그리운 이름 하나하나 불러보고 싶다.
고추잠자리 높이 떠 맴도는 메밀밭 한가운데서
그대 이름 간절히 부르며 사랑한다, 사랑한다 외치고도 싶어
이슬 맞으며 함초롬히 핀 들국화 언덕길을
그대 손잡고 그윽한 향기 마시며 마냥 달려보고 싶다.
농濃익은 가을 풀내음 코에 스미고
황금들판 춤추는 아스라한 논둑길에서
풍성한 농부의 구수한 노랫가락도 듣고 싶고
어릴 적 옛집에서 아늑한 어머님 가슴에 묻혀
싫도록 울고, 자장가 들으며 잠들고 싶다.
어눌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두메산골 여느 집에서
마리아 릴케의 시 읊조리며
감사의 진지한 기도를 드리고 싶고
모두가 떠나버린 쓸쓸한 카페에 그대와 마주앉아
이브몽땅의 ‘고엽枯葉’을 밤늦도록 듣고도 싶다.
하, 이 가을엔 맑디맑은 가을, 파아란 술 마시며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진한 삶의 더께들을 어루만지고 싶고
달빛 젖은 추억의 강가에 서서
영혼 깊숙한, 그리운 노래들을 밤새 부르고 싶다.
여기저기 울긋불긋 정情심은 산자락과
고즈넉한 산사山寺의 저녁 풍경을
내 마음 삭막索莫의 화폭畵幅위에 그리고 싶고
떨어지는 잎새 하나하나에 깊숙한 의미들을 붙여
삶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음미吟味하고 싶다.
하, 이 가을엔 많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고
잊혀진 많은 것들을 사랑하고 싶다.
약력
경북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월간 ‘한울문학’ 시부문 신인문학상수상
시하늘, 복현문우회, 대한문인협회
한울문학 영남문인회 부회장
현 대구공업고등학교 교사
15호 (2005.1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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