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아버지가 계시지고 않은데 구두는 왜 열심히 닦아요?”
“힘든 길이지만, 네 아버지 가는 길이 빛나라고 닦아드리는 거란다.”
“그런다고 아버지가 나아지나요?”
지우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어머니도 역정을 냈습니다.
“저 애가 못하는 말이 없어!”
어느 날 저녁 어머니는 일찍 돌아 오셨습니다. 어머니가 찌개를 해 주었는데 고기 대가리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지우는 참 맛있게 먹었습니다.
“어머니, 이 찌개 참 맛있네요.”
그런데 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어머니가 갑자기 찌개냄비를 거두어 음식물 쓰레기통에 부어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울먹였습니다.
“지우야, 미안하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맛있는데...”
“사실은 시장 어물전에서 버리는 고기 대가리를 얻어서 끓인 게다. 네게 이걸 먹이려 했던 내가 나쁘다.”
결국 어머니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지우도 더 이상 밥을 먹지 못하고 제방으로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버렸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하늘이 도왔는지 어느 날 밤 아버지가 다리를 절며 지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상거지였습니다. 신고 나갔던 운동화는 때에 절고 너덜너덜했습니다. 그간 버스터미널과 역 대합실로, 공중변소 화장실을 이용해 고양이 세수를 하며 일자리를 찾아다녔다고 했습니다.
“여보, 우리 집 팔고 시골 갈까요?”
“그건, 왜요?”
“집 팔아 보증 빛 갚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아버지는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우가 소리쳤습니다.
“시골은 싫어요! 거기엔 컴퓨터도 없고 게임방도 없잖아요!”
얼마 후 지우네는 20여 년 가까이 정든 집과 집기를 버리고 시골로 내려왔습니다.
지우가 쓰던 컴퓨터는 빨간딱지가 붙어 가져갈 수 없었습니다.
“지우야, 미안하다.”
아버지의 말에 지우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빚은 겨우 정리되었지만 생계가 막막했습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려 했지만 시골이라 일자리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해질 무렵 느닷없이 지우 선생님이 찾아왔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놀랐습니다.
“지우가 무슨 사고라도?”
어머니가 걱정스레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사실은 지우 때문에 사정을 다 알게 된 거지요.”
“선생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버지가 의외란 듯 선생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지우가 <희망 21> 이라는 복지재단에서 주최하는 글짓기 공모에 응모를 해서 최고상을 받았습니다. 제목이 <아빠의 구두> 였습니다.
“<아빠의 구두>라니?”
아버지가 지우를 되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안 계실 동안에도 매일 아버지의 구두를 닦으며 아빠의 가는 길이 잘 되라고 하는 어머니의 정성을 보고 쓴 이야기였습니다.”
“짜슥도! 심통만 부리는 줄 알았더니 그래도 심지 하나는 깊구만.”
모처럼 아버지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습니다.
“그건 그렇고, 마침 학교에 일자리가 하나 생겼어요. 내키시면 연락주세요.”
선생님이 지우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버지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리를 절뚝거리며 궂은일을 하는 아버지를 매일 보는 것은 지우에게 크나큰 고통이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에게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어서 빨리 이 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가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지우가 집에 돌아가니까 어머니가 무말랭이를 마당에 널고 있다가 지우 손을 끌고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머니,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이것 봐라. 우리가 소송에게 이겼다. 보상금을 줄 수 없다더니 보험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래도 지우는 시큰둥했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지우는 방에 들어가자 깜짝 놀랐습니다. 새 컴퓨터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따라 들어왔습니다.
“보상금으로 네게 컴퓨터로부터 제일 먼저 마련해주자고 아버지와 논의 했다.”
“고맙습니다.”
“진작 보상금이 나왔으면 이런 고생은 안했지.”
가족회의가 열렸습니다. 아버지는 소를 몇 마리 키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논을 좀 사서 미꾸라지 양식장을 만들자고 했습니다. 지우는 거위를 사달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를 위해 장애인용 자동차도 사자고 했습니다. 오랜만에 가정에 활기가 넘쳤습니다.
시골로 온지 여섯 달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장애인 특별채용계획이 있으니 다시 회사로 들어올 수 없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지우, 네 생각부터 말해보렴.”
“이제 겨우 정착되어 가는데 또 이사를 가면 뭘 해요. 그냥 여기서 살아요. 어차피 저는 중학교 진학 때문에 곧 큰 도시로 나가야 되잖아요.”
지우의 말에 부모님은 의외란 듯 서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아버지, 그간 얼마간이지만 아버지를 미워한 것 정말 죄송해요.”
“아니다, 모두 내 잘못이지.”
“아빠도 힘좀 내세요. 그리고 남들처럼 활짝 웃기도 하고요.”
“그래, 알았다. 하하하.”
처음 들어보는 아버지의 쾌활한 웃음이 맑은 햇살을 타고 퍼져 나갔습니다.
손기원
11호 (2005.9.6)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