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을 떠나고 싶다. 여행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싶다. 우선은 쉭쉭 바퀴소리를 내며 수성못을 한 바퀴 돌아보았으면 한다. 여행이라면 분에 넘치는 일이겠지만, 수성못 둘레를 돌아보는 것쯤이야 뭐 그리 대단한 일이랴.
내 일터가 자동차를 타기에는 가깝고 걷기에는 만만치 않은 거리에 있다. 자전거면 꼭 알맞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지만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대학 다닐 때 자전거를 배우겠다고 몇 날 며칠 넘어지고 끙끙대다가 포기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창나이 때도 못했던 것을 지금 해낼 수 있을까.
나는 잘 못하는 것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운동을 가장 못하는 편이다. 중ㆍ고등학교 때는 피하기만 하면 되는 피구에서도 제일 먼저 공을 맞고 나왔다. 친구들이 던지는 공이 너무 무서웠다.
그런 내 표정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공은 나에게 먼저 날아오곤 했다. 교양학부 시절에도 유일하게 체육이 F학점이었다. 탁구, 배구, 정구, 내가 친 공은 한 번도 네트를 넘지 못했다. 달리기는 좀 했다. 다행이 몸은 가벼웠고 앞으로 달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운동에 관한 한 나는 콤플렉스가 심하다. 그러니 하기도 싫다. 하지 않으면 그만인데 건강 때문에 그럴 수도 없어서 여간 곤혹스럽지가 않다. 수영이나 에어로빅은 난이도가 너무 높다.
아무래도 걷기가 제일인 것 같아서 한동안 아침저녁 열심히 걸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없어서, 날씨가 추워서, 잠이 모자라서 등등 핑계거리가 열 가지도 더 생겨나는 것이다.
어느 날 수성못가에 있는데 자전거 세 대가 휙휙 지나갔다. 중년 남자 세 명이 자전거로 못 둘레를 계속 돌고 있었다. 참 편안하고 재미있는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방 자전거로 신나게 달리는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참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따로 시간 내기가 어려우니 출퇴근을 자전거로 하자. 운동과 생활의 멋, 양손에 떡을 쥔 격이 아니겠는가.
규모가 꽤 큰 자전거 가게에 들렀다. 아주 예쁘고 날씬한 자전거 한 대를 샀다. 바퀴도 보통 자전거보다 작고 안장도 높낮이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그야말로 나에게 안성맞춤인 성싶었다.
나는 운전을 못하지만, 멋진 선글라스를 끼고 고급 승용차를 운전하는 여인을 부러워한 적이 없다. 그런데 자전거를 사고 보니 그 날렵한 자전거로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는 내가 아주 근사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우거진 수목사이를 또는 노을지는 강둑을 페달을 천천히 밟으며 지나가 봄 직도 하지 않은가.
그 작고 날씬한 자전거는 그러나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첫날은 아들이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모처럼 공휴일이라 일찍 귀가한 고3 아들의 금쪽같은 시간을 빌려서 집 근처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중심잡기’에서 나는 벽에 부딪쳤다. 오른발을 페달에 얹고 밟으면서 왼발을 자연스럽게 올리는 것인데 그게 도무지 되지 않았다. 페달은 자꾸만 발에서 미끄러져 헛돌았고, 그때마다 자전거와 나는 한쪽으로 넘어지곤 했다.
아들이 먼저 지치고 오기로 버티던 나도 지쳤다. 집에 와서 보니 오른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물집이 잡히고 발목 부위에는 멍 자국이 여러 개 나 있었다.
기가 막힌다고 웃던 남편이 이튿날 가르쳐 주겠노라고 나섰다. 중심만 잡으면 그 다음은 저절로 나간단다. 그 ‘중심잡기’에서 또 한 번 실패했다. 아들보다 훨씬 편안하게 가르쳐 주었지만 해내지 못했다.
젊어서도 못해냈던 일인지라 새삼 실망할 것도 좌절할 일도 아니건만 나는 다소 의기소침해졌다. 페달을 밟으려다가 수없이 넘어지면서 문득 내 삶도 이러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쩌면 바람이 불 때마다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며 살아왔는지 모른다. 그냥 그럴 수는 없지, 다시 용기를 내야지. 자전거 페달에 두 발을 얹고 내 삶의 중심을 응시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련다.
정말 자전거를 잘 타고 싶다. 여행은 아닐지라도 수성못 몇 바퀴는 유쾌한 기분으로 돌아보고 싶다.
허창옥
9호 (2005.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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