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마을 입구엔 우람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수호신처럼 버티고 서 있다. 수령을 아는 사람은 없다. 내 어릴 적이나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이나 변한 모습을 감지할 수 없으니, 지금이 청년기인지 노년기인지, 언제나 푸름이 창창하니 만년 청년이라 해야 할까?
이 느티나무는 큰 그늘을 만들어 동네 사람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대담.토론의 광장을 펼쳐주기도 하였다. 나는 집이 가까이 있어 느티나무 우산 아래로 자주 찾아가 고향을 방문하면, 누구보다도 먼저 입구에서 나를 반겨주는 것이 느티나무이기에 ‘고향’하면 먼저 느티나무를 떠올릴 정도이고, 요즘 이것이 곳곳에서 조경용이나 가로수로 많이 등장하게 되었음을 쌍수로 환영하고 있다.
느티나무! 나는 그대 앞에 서면 마음이 경건해진다. 그대는 육중하고 웅대하지, 아무도 다듬어 주지 않아도 스스로 큰 우산을 만들어 아늑한 정자나무 모양을 이루어 가면서 자라 주니, 나는 그대에게서 ‘자율’을 배우게 되었다오. 또 무게가 있어 경솔하지 않고, 온갖 풍상을 겪고서도 속으로만 삭이고 견뎌내니 인고의 수도자요, 어진 선비와도 같도다. 그대는 하늘조차 받치는 커다란 우산으로 뭇 사람을 안아주고, 불볕 햇살도 가리어 보호하는 포용력을 지녔으니, 이처럼 도량 넓은 이를 또 어디서 찾을 수 있으랴.
나는 어디에서나 느티나무를 보기만 하면 마음이 숙연해지니, 이는 고향 마을 느티나무의 인상이 수호신으로 인각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모습이 피라밋처럼 안정감 있고, 말없이 입 다문 그 모습이 얼마나 믿음직 스러운가. 우리는 거기에서 온갖 삶의 고통을 이겨내고 의젓함을 풍기는 선비의 모습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여우가 죽을 때엔 머리를 고향 쪽으로 돌려 죽는다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이 있다. 연륜이 뭐 대수일까마는 나도 이제 세월의 나이테가 감겨가면서 귀소본능(歸巢本能)의 심정으로, 가끔 향수심에 잠기기도 한다. 언제나 ‘고향’하면 느티나무가 생각나고,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여생을 나도 그 느티나무처럼 포용력 있고, 의젓하고, 베풀면서 살아가는 삶으로 인생을 마무리했으면 하는 소망을 갖게 된다.
李炳壽
6호 (2005.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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