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ubject	[시] 내고장 동성로 - 정추식

언제나 고향을 못가진
슬픈 떠돌이가
대구역에와 몸을 풀면
어느덧 아늑한 나의 뜨락은 열린다.

교동시장 입구에서부터
달러장사들의 흥정속에
싸구려 바지 저고리도 한 벌 싸들고
주린 향수도 포식하며
할 일 없이 골목길을 돌아들면
쭉 뻗은 도심(都心)을
강으로 미끄러져 가고
출렁거리는 목숨의 빛깔들은
깃발로 나부낀다.

제자리 사람들은 잘 모를게라
저녁무렵 동성로를 한바퀴 돌아야
그날 하루가 졸업되는 나그네 맛을……
소음이 감미로운 거리
동성로에 서면
예쁜 마네킹의 손짓 속에
꿈속의 얼굴들도 떠오른다.

먼 저승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키다리 박시인(朴詩人)도
땅따리 K화가도……

일찍이 이 거리를 거쳐간
때묻은 정들이
한껏 꿈틀거리며 핏줄이 당기는데
밤이 오면 동성로는
그 많은 아우성을 삼키고도
황홀한 무지개로 선다.

정추식

약력
대구 달성군 다사면 문양동 출생
대구 영남대학 법학과 졸업
경희대 행정대학원 졸업
월간문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5호 (2005.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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