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지붕들 위로 계란 노른자 같은 해가 떴습니다.
깨비 할머니는 오늘도 낡은 유모차에 폐휴지와 고물들을 한가득 싣고 골목에 들어섰습니다. 염소 등처럼 굽은 허리를 흔들며 할머니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드르륵 딸그랑, 드르륵 딸그랑” 소리가 납니다.
출근길에 걸음을 재촉하며 골목으로 나온 사람들은 할머니가 곁을 지날 때마다 눈살을 찌푸립니다. 유모차의 낡은 바퀴가 콘크리트 바닥을 힘겹게 구르는 “드르륵” 소리와 고물들이 서로 몸을 부딪치는 “딸그랑” 소리가 귀에 몹시 거슬리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할머니의 몸에서는 오래되고 지저분한 냄새가 났어요.
할머니는 비좁은 골목 한가운데를 차지하고도 사람들에게 먼저 길을 비켜주는 법이 없습니다. 앙상한 할머니의 손목은 닳아빠진 바퀴를 쉽게 굴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다가 할머니의 마음속에는 ‘바쁜 놈들이 비켜 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할머니가 고물과 폐휴지를 실어 나르는 아침 골목길은 출근을 서두르는 사람들과 할머니의 말다툼 소리로 시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오늘도 할머니는 이제 막 햇볕이 들기 시작한 골목 입구에서 반질반질한 양복 차림의 남자와 맞닥뜨렸습니다. 바쁜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 나가려던 남자는 갑자기 나타난 할머니와 ‘꽝’ 하고 부딪칠 뻔 했답니다.
남자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어요. 자칫하면 냄새나고 지저분한 할머니의 짐 위로 고꾸라질 뻔 했으니까요.
“어이쿠, 깜짝이야! 할머니, 조심하셔야죠!”
놀란 남자가 화난 목소리로 젊잖게 말했습니다.
“조심? 조심은 너나 해라. 이놈아!”
언제나 반말과 욕투성이인 할머니의 목소리는 가랑가랑 가래 소리가 섞여서 더 무섭게 들립니다.
“이 할머니가? 아침부터 왜 욕을 하십니까?”
남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어요.
“네 놈이 서두르다 봉변을 당한 게지. 누굴 보고 조심하란 말이냐?”
할머니가 이번에는 더 무섭게 소리를 질렀어요.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할머니의 목에서 금방이라도 가래가 튀어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남자는 사과는커녕 욕부터 내지르는 할머니가 몹시 못마땅하고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더는 덤벼들지 않았어요. 부글부글 끌어 오르는 화를 누르며 얼른 그 자리를 피해 버리고 말았답니다. 사과를 할 마음도, 비켜줄 생각도 없이 욕과 반말을 퍼부어 대는 할머니를 더 이상 상대해 봤자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남자가 사라진 뒤로도 할머니는 한참동안 욕과 반말을 중얼거렸습니다. 그러다가 골목 끄트머리 쯤, 자그마한 할머니의 집 앞에 이르렀어요.
할머니의 집은 나지막한 담장이 둘러쳐져 있었지만 할머니가 쌓아다 놓은 짐들 때문에 잘 보이지가 않았어요. 담이래야 한쪽은 다 허물어져서 동네 이곳저곳에서 주어다가 쌓아놓은 폐휴지와 고물더미들이 진짜 담장 같았지요. 기와지붕도 곳곳이 허물어지고 깨어져서 집인지 고물더미인지 얼른 분간이 안 될 정도였습니다.
밤이 되면 할머니의 집에서 도깨비가 나온다는 소문은 그래서 생긴 것 같아요. 무엇이든 마음먹은 대로 바꿀 수 있는 도깨비가 산다면 모를까 누가 보아도 할머니의 집에는 사람이 살기 어려워 보이니까요.
그 뿐이 아닙니다. 할머니의 집에서는 오래된 음식찌꺼기에서 나는 것 같은 시큼하고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어요. 그래서 할머니의 집 가까이엔 아무도 가려하지 않는답니다.
가끔 동네 사람들이 불편을 하소연 하며 할머니의 집안을 기웃거리기도 헸어요. 그 때마다 할머니는 늘 이렇게 소리를 지릅니다.
“내가 네놈들한테 밥을 달라더냐?”
가르랑거리는 할머니의 목청이 금방이라도 위태위태하게 쌓아놓은 고물더미들을 무너뜨릴 것 같아서 집 안을 기웃대던 사람들은 도망치듯 뒷걸음치기 일쑤였지요.
할머니는 툭하면 불평을 늘어놓으며 간섭을 일삼는 동네 사람들과 조금도 어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의 집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건 벌써 오래 전의 일이랍니다.
동네 사람들의 눈에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도 없이 고물과 폐휴지를 담장처럼 쌓아놓고 그 속에 묻혀 사는 할머니가 영락없이 도깨비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할머니를 ‘깨비 할머니’라 불렀지요.
오늘도 깨비 할머니에게는 다른 날과 조금도 다를 게 없는 아침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할머니의 몸놀림이 오늘은 다른 날과 달라 보입니다. 뭔가 서둘러야 하는 일이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집 앞에 유모차를 세운 할머니가 잠시 굽은 허리를 세웠습니다. 할머니의 허리는 너무 오랫동안 허리를 굽어 있어나 봐요. 한 손을 유모차 손잡이에 의지하고, 나머지 한 손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는 할머니의 입에서 저절로 “끙!” 소리가 났으니까요.
그대로 잠시 쉬면 좋을 것을 반듯하게 서 있는 자세가 오히려 더 불편한 것처럼 할머니는 곧 염소허리를 하고 맙니다. 그리고 숨 돌릴 틈도 없이 반쪽이 떨어져 나간 대문 안으로 “끙!” 소리를 내며 유모차를 밀어 넣었어요. 그러자 유모차에 위태롭게 실려 있던 고물들이 한꺼번에 쏟아질 것처럼 “딸그랑! 딸그랑 !딸그랑!” 소리를 냈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온 할머니의 움직임이 더 바쁩니다. 할머니의 손에 신문지, 빈병, 납작하게 누른 깡통과 과일박스 등이 줄지어 들려 나옵니다. 좀처럼 서두르는 법이 없는 할머니의 손이 오늘은 왜 이렇게 바빠 보이는 걸까요? 아무래도 서둘러 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아요.
한가득 실렸던 짐들이 거의 다 내려질 무렵, 숨이 더 가빠진 할머니가 유모차 한편에서 까만 비닐봉지 하나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걸 꺼내드는 할머니의 손이 하도 조심스러워서 마치 보물을 꺼내 드는 것 같았어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봉지를 안을 살피던 할머니의 얼굴에 머뭇머뭇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웃는 법을 잊어버렸다가 겨우 생각해낸 것처럼 쪼글쪼글 닫혀있던 입술 사이로 겨우 두 개 뿐인 이가 드러나, 웃는 낯인지 찡그린 낯인지 분간이 안 되는 그런 웃음이었습니다.
“아이고, 예쁜 것!”
곧이어 할머니의 벌어진 입술 사이로 어린아이 같은 말도 튀어 나왔습니다. 할머니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라고 믿기 어려운 목소리였지요. 마치 엄마가 아기를 안고 어르는 것 같았으니까요.
입술 옆으로 점점 번지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봉지 안을 더듬던 할머니가 이번에는 조심조심 뭔가를 꺼내 들었습니다.
할머니의 손에 들려나온 것은 노랗고 작은 꽃이 달린 풀 한 포기였어요. 한 손에 들어도 좋을 그 풀 한포기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할머니는 집 안 쪽으로 급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할머니의 종종 걸음이 어찌나 바빠 보이는지 굽은 할머니의 허리에서 바람 소리가 날 것 같았습니다. 굽은 허리를 흔들며 달음질치듯 걷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마치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어요.
얼마 후 할머니가 걸음을 멈춘 곳은 할머니의 집에서 유일하게 햇볕이 드는 담장 한 귀퉁이였어요. 거기에는 하얀 스티로폼 박스 하나가 놓여 있었어요. 예전엔 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생선이 담겨 있었을 법한 스티로폼 말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보기에도 축축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갈색 흙이 담겨 있었습니다.
“얘들아, 친구가 왔어요!”
할머니가 두 손에 담아 들고 있던 풀을 그 위에 살포시 내려놓으며 중얼거렸습니다. 거기에는 할머니가 이제 막 내려놓은 풀 말고도 색색의 꽃들을 피워 올린 작은 풀꽃들이 자라고 있었어요.
할머니는 그 풀꽃들 사이에 가져온 새 풀꽃을 정성스럽게 심어주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검고 쭈글쭈글한 할머니의 얼굴에서 함박꽃이 피어나는 것 같았어요.
“이름은 알아 뭣 해! 예쁘면 고만이지.”
마치 누가 묻기라도 한 것처럼, 할머니가 중얼거렸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쌓아놓은 짐들에 가려 더 이상 햇볕이 들지 못하는 게 못내 미안한 것처럼 하늘과 풀 위로 쏟아진 햇빛을 번갈아 보았어요.
“오……옳지!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이제 얘들이 덜 춥겠어.”
그렇게 해와 풀들을 번갈아보며 한참을 골똘하게 무슨 궁리를 하는 것 같더니 스티로폼을 끌어 자리를 옮겨 보는 거예요. 아마 할머니는 해가 움직이는 대로 풀들이 담겨 있는 스티로폼을 옮겨 줄 모양이에요.
햇볕은 검고 앙상한 할머니의 손 위를 가만가만 쓰다듬고, 풀들을 어루만지는 할머니의 얼굴엔 해보다 더 밝은 미소가 웃고 있었습니다.
남궁담
No.35
2007.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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