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蛋白)의 스피카(Spica) -上
결단코 로리타 따위의 취미는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나 술에 취해 구겨박히다시피 한 ‘어린애’ 따위에게 손을 대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그러나 옷을 벗긴다 라는 그 행위 자체가 풍기는 뉘앙스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다분히 낯뜨거웠던지라 그는 난처한 듯 입맛을 다시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려나. 그는 잠시 다음 행동을 결정하지 못하고 어물거렸다.
“욱...”
이런 젠장. 그는 짧게 부르짖었다. 어쩔 수 없다. 그는 양껏 미간을 찌푸리고는 군데 군데 더러운 것이 묻은 교복 넥타이를 풀어내어 몹시 더러운 것이라도 만지는 듯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만으로 집어 화장실 세면대 속으로 냅다 내던졌다. 그리고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 듯 입맛을 다시다가, 할 수 없다는 듯 목 아래부터 하나씩 블라우스 단추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흠짓 놀라 그 자리에 손을 멈추고 말았다.
“......”
세 개쯤 단추를 풀어내어 제법 속살이 비쳐보이는 블라우스 속으로는, 응당 보여야 할 속옷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제법 깊게 패인 앙가슴의 새하얀 골만이 따갑게 눈 속으로 들어올 뿐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나를 더 풀어내자, 헐겁게 들리워지는 블라우스 자락의 안쪽으로 새하얀 가슴의 실루엣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였다. 이런 세상에. 그는 어안이 벙벙해져 새삼 소파에 널부러진 소녀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노브라 위에 교복을 입고 등교를 할 만큼 날라리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자신이 매우 난처한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만취해 거의 의식을 잃어버린 웬 어린 여자애-그나마 속옷마저 입지 않고 있는-에다가, 그나마 자신은 지금 반쯤 그 옷을 벗기고 있는 중이니까. 이대로 사진이라도 찍힌다면 영락없는 원조교제가 되겠군. 그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머리를 내둘렀다. 게다가 무방비한 상태로 몸이 풀린 채 반쯤 벗겨진 교복 블라우스 사이로 가슴의 실루엣이 반 이상 드러나 보이는 그 모습은 아닌 게 아니라 상당히 난처한 성격의 것이어서, 그는 한참동안 어짜할 바를 모르고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후.”
빨리 하자. 그는 이를 악물고 그런 결론을 내렸다. 빨리 벗기고, 뭐라도 갖다 덮어놓자. 그것만이 해답이겠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냥 모르는 척 하고 올라와 버리고 말 것을,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의 우유부단한 성격에 생각나는 모든 저주를 퍼부으며, 그는 내키지 않는 손길을 뻗어 다섯 번째 단추에 손을 댔다.
“하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나 하는지, 소녀는 이젠 아주 제대로 된 신음소리까지 내며 가볍게 턱을 뒤로 젖혔다. 순간 머리가 핑 내두르는 느낌이 났다. 이런 젠장. 젠장. 젠장. 그는 치를 떨 듯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여난(女難)인가. 아무리 무엇한들 술 취한 어린애를 잡아먹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후안무치는 아니란 말이다. 그의 턱이 가벼운 경련을 일으켰다. 농담이 아니었다. 고통스러웠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럴 수는 없다. 나는 그러지 않을 거다. 절대로. 그는 이를 악물고 남은 서너개의 단추를 전부 풀어냈다. 보드라운 재질 탓에 몸의 양 옆으로 자락이 흘러내려 버려, 반라(半裸)의 몸이 여실히 눈 앞에 드러났지만, 그는 그런 것에는 눈을 돌리지 않고 소녀의 머리맡으로 다가가 오물이 묻지 않은 칼라 윗부분을 잡아당겨 옷을 끄집어냈다.
“......”
그는 냉정한 눈으로 소녀의 벗은 몸을 훑어보았다. 그 시선은 수술을 앞둔 환자를 바라보는 경험 많은 외과 의사의 그것이었다. 처녀거나, 최소한 성경험이 많은 아이는 아니다. 그런데 왜.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시선이 다시 한 번, 화장기 없는 소녀의 얼굴로 돌아갔다 내려왔다.
“......”
그는 블라우스를 쥔 채 자리를 떴다. 세탁기 속에 블라우스를 던져 넣고 언제나처럼 세제를 풀었다. 그리고 옷장을 열어 엷은 하늘빛이 나는 옥스퍼드 셔츠 하나를 꺼내 왔다. 그리고 단추를 풀어낸 셔츠를 등 부분이 위로 가게 돌려 소녀의 몸 위를 덮었다. 그때서야 문득, 저 아이가 깨어났을 때 자신에게 뭔가 몹쓸 짓을 한 것이 아닌가 의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는 저도 모르게 담배 한 가치를 꺼내어 붙여 물며, 그는 한숨 비슷한 것을 내쉬었다. 그는 문득 짙은 호기심을 느꼈다. 이 순진한 얼굴을 한 소녀에게.
고막을 잡아찢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 소리에 그는 깜박 들었던 단잠에서 잠을 깼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몇 번 눈을 깜박이고 나서야, 그는 짧은 졸음에 들기 전 자신에게 벌어졌던 일들을 어슴푸레 기억해냈다. 깨어난 건가 싶어 눈을 돌리자, 소파 위에 누여놓았던 소녀는 어느새 정신이 들어 셔츠로 벗은 몸을 가린 채 표독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일어났나.“
소녀는 검은 눈을 깜박이며 적의가 어린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크지 않은 몸집을 둥글게 움츠려, 짧은 단발머리에 반쯤 가려진 얼굴이 더욱 작아 보였다.
“제 옷, 어딨어요?“
소녀는 으르렁거리듯 물었다. 이미 예상했던 대로, 그녀는 이 상황에 대해 이미 나름대로의 해석을 다 끝낸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그녀를 탓할 마음은 없었다. 그렇게 오해하기 충분한 상황이었으므로.
“어딨냐구요!“
쨍 소리가 날 만큼 소녀는 고함을 내질렀다. 여자아이들의 목소리가 흔히 그렇듯, 귀 고막 한 구석이 얼얼해 올 정도의 매서운 파장이었다. 순간 머리 속이 핑 울려오는 느낌이 나,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왜, 설마 어디다 팔아먹기라도 했을까봐?“
“......“
“옷 축에도 못 드는 교복 블라우스 따위 돈 주고 사가는 사람도 있나?“
“아무튼, 내놔요!“
소녀는 다시 한번 빽 고함을 쳤다. 그리고는 이죽거리듯 덧붙였다.
“그걸로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아요?“
“오호.“
그는 재미있다는 듯 미소지었다.
“그러니까, 내가 무슨 여고생 교복 페티쉬 따위나 있는 변태로 보인다는 얘긴가?“
“알 게 뭐에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쏘아붙이듯 대꾸했다.
“아니라는 걸, 뭘 보고 믿어요? 아저씨 설마 저 취해 있는 동안에 이상한 짓이라도 한 거 아니에요?”
아저씨라는 호칭에 미간이 찌푸려진 것이 먼저였는지 자신을 잠재 강간범 취급하는 듯한 그 말투에 기분이 상한 것이 먼저였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거의 동시에 벌어진 일이 아니었을까. 순간 저도 모르게 벌레씹은 듯한 표정이 되어, 그는 힐책하는 듯한 시선으로 소녀를 아래 위로 훑어보았다.
“세상에 볼일 다 보고 아랫도리만 곱게 입혀놓는 강간범도 있나 보군.”
“그러게요. 취향인가보죠.”
소녀가 되바라진 목소리로 받아쳐 왔다. 빤히 뜬 그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차라리 기가 막혔다. 별로 노는 아이 같아 보이지도 않는데 그렇게나 술을 마시고 내뻗어 있는 모습이, 무언가 사연이 있는 것 같다고 넘겨짚은 것이 오산이었을까. 별로 많지도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요즘 애들 운운하는 장광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그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 봐, 꼬마 아가씨.”
그는 딱딱하고 차갑게, 마치 인수분해를 강의하는 수학 교사같은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내가 그런 인간이었다면 굳이 아가씨를 이리로 데려와서 혹시나 경찰에 어린애 강간한 파렴치범으로 체포될 법한 끄나풀 만들어주는 일 같은 건 굳이 할 필요가 없었으리라는 점은 생각이 되지 않아? 그리고 진짜 그런 일이 있었는가 아닌가는 병원 한 번만 가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인데, 이왕 얼굴 맞닥뜨린 마당에 굳이 오리발 내밀 이유 같은 게 있을까? 진짜 그런 거라면, 아가씨가 정신차리기 전에 어디로든 도망가는 게 정답 아닐까?”
“아, 그래요?”
소녀는 둥근 눈을 말갛게 뜨고 그를 올려다 보며 눈 하나 깜짝 않고 답했다.
“아님 말구요.”
“......”
뭔가 희롱당했다는 기분이 들어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차피 나도 술에 취해 널부러진 어린애 따위 집 안에 들일 생각일랑 없었다고, 그러니 그런 식으로 덤빌 생각이거들랑 당장 나가라는 말이라도 해야 분이 풀릴 것 같아 입을 떼려다 보니, 소녀는 무릎을 끌어안은 채 멍한 눈으로 자신이 덮어준 셔츠의 등 부분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순식간에 독기가 모두 사라진 그 표정은 오히려 조금은 슬프게 보이기까지 해서 잠시 그를 움찔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한동안 말없이 큰 눈을 깜박이며 그 곳에 붙박혀 있었다.
“옷 입지 그래.”
한참만에야, 그가 한풀 꺾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속옷도 제대로 안 입었던데, 그러고 있으면 감기 걸려.”
“......”
또 무언가 되바라진 소리 한 마디쯤 해 오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이번에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무서웠던 걸까. 순간 머리 속을 스치는 생각은 그것이었다. 역시나 무서웠던 걸까. 그래서 겁먹은 티를 내보이지 않으려고 그렇게나 악을 쓰고 달려들었던 것일까. 순간 그녀의 화장기없는 얼굴이 떠올라 그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역시나, 무서웠던 걸까.
“자리, 피해줄까?”
“......”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벗은 몸을 보이고 말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신이 든 이상 또 그럴 수는 없다는 그 태도가 그의 마음에 들었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코코아 줄까? 맛있는 녀석이 하나 있는데.”
“왜 하필이면 코코아에요?”
“단 것 좋아하지 않나? 여자애들은.”
순간 소녀의 눈 속에 가벼운 불똥이 튀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코코아 안 먹어요. 맥주 있어요?”
“이 봐.”
“맥주 있으면 맥주 주세요. 없으면 물이나.”
소녀는 고집스레 말을 맺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는 한동안 가만히 그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만난지 몇 시간 밖에 안되는 짧은 순간 동안 벌어진 몇몇 일들이, 천천히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을 느끼며 그는 말없이 등을 돌렸다.
“옷 입어. 니 블라우스는, 뭐가 좀 묻어서 세탁기에 담궈 놨으니까 그렇게 알고.”
제아무리 되바라진 목소리로 달려들었든지 간에, 역시나 어린애는 어쩔 수 없는 어린애였다. 자신도 남자치고는 그다지 크다고는 할 수 없는 체구였지만, 자신의 셔츠를 입혀놓고 보니 어깨선이 어깨 밑으로 한 뼘은 쳐지고, 소매는 두어번을 걷어야 겨우 손목에 맞았다. 아빠의 파자마를 걸친 일곱 살배기 아이같은 몰골을 한 채, 소녀는 소파 위에 무릎을 끌어안은 채 앉아 낯선 눈으로 티 테이블 위를 가만히 훑어보고 있었다.
“춥지는 않아?“
“네.“
“뭐 마실 거라도 줄까?“
“맥주 달라고 했잖아요.“
소녀는 고집스레 내뱉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그는 엄하게 혀를 찼다.
“그렇게 마시고, 또 술타령이냐?“
“......“
순간 소녀의 얼굴에 찔끔하는 기미가 스쳤다. 야단맞는데 익숙한 얼굴이다. 늘 야단을 맞으면서 자랐다기보다는, 엄한 집안에서 자란 아이인 것 같다. 무엇이 잘못인지를 이미 알고 있는 것 같군. 그는 한동안 말없이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훌쩍 몸을 일으켰다.
“술은 안 돼. 알아서 갖다 줄 테니까 얌전히 먹어.“
그는 무뚝뚝하게 내뱉고는 주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뒤통수 너머로, 소녀의 새된 목소리가 날아와 꽂혔다.
“코코아는 싫어요! 죽어도 안 먹어요.“
소녀는 말간 유리잔 안에 담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신기하다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딸깍 소리를 내며 접시를 놓고 그 위로 잔을 내려놓았다. 꿀 냄새와 섞인 짙은 레몬향이 확 밀려들어왔다.
“마셔. 레몬타임(Lemon Thyme)이야.“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녀를 향해, 그는 설명하듯 덧붙였다.
“숙취에 좋은 허브차야. 아가씨들 피부 미용에도 좋고.“
“......“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는 선뜻 찻잔을 손에 쥐었다. 맥주 아니면 안 먹겠다던 아까의 기세는 다 어디로 갔는지, 잔 밖으로 밀려나오는 따뜻한 차의 온기에 손을 부비며 향을 맡고 있는 그 모습은 오히려 퍽 만족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맥주가 먹고 싶은 게 아니었지. 그는 가만히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코코아가 싫은 거였어. 그것만 아니라면, 뭐든 다 괜찮았던 거야.
“그나저나.“
실은 커피를 마시고 싶었지만 오로지 자기 혼자 먹자고 새로 커피를 내리는 것도 귀찮았던 탓에 그냥 함께 우려낸 레몬타임 티를 마시기로 했다. 잔을 들어 입에 댔다 내려놓으며 그는 물었다.
“집에서는 걱정 안 하시나?“
“말해놓고 나왔으니까 괜찮아요.“
“밤새도록 술 먹고 길거리 쓰러져 있겠다고 말씀드렸단 말이야?“
“미쳤어요?“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렸음인지 그녀는 어깨를 움츠리며 혀를 낼름 내밀어 보였다.
“친구집에서 자고 오겠다고 얘기해 놨어요. 집안끼리 아는 친구라서. 뭐 괜찮을 거에요.“
나름 용의주도한가. 그는 눈을 깜박였다. 그 사이 그녀는 홀짝대며 차를 몇 모금 들이키다가, 문득 끌어안았던 다리를 아래로 내리고는 자연스레 다리를 꼬고 앉았다. 많이 연습을 한 듯 그 태는 꽤 자연스럽기는 했지만, 교복 치마 아래로 희게 드러나는 허벅지가 새삼 난처해 그는 속으로 가만히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먹을 만 해?“
“네. 맛있어요. 향도 좋고.“
“먹을만 하다니 다행이군.“
그는 중얼거리듯 되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코코아를 싫어하지? 알레르기라도 있나?“
“.....“
순간 소녀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어지는 것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알레르기 따위의 문제가 아닐 거라고 처음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아직 자신의 속내를 완전히 감추는 법을 익히지 못한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그 표정은 너무도 적나라한 것이어서 그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냥 싫어해요. 그 뿐이에요.“
그녀는 고집스레 대답했다.
“마냥 달기만 한 그런 거, 도대체 왜 먹는 건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설탕물을 마시는 게 낫지.“
“그래?“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태도로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코코아를 그렇게나 격렬하게 싫어하는 사람을 본 건 처음이라서, 좀 당황스러운걸. 코코아는 원래 유럽에서는 왕실 귀족들이나 마시는 음료였어. 특히 공주나 여왕 같은 숙녀들이 좋아했기 때문에 숙녀의 음료라고 불릴 정도였지. 지금에야 애들이나 먹는 것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 당시엔 정작 애들은 먹지 못했고 어른이 되어서야 먹는 것이 허락되었다고 하지? 코코아의 단 맛이 성적인 부분과 관련이 있다는 미신 때문에 말이지.“
물론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그는 원하기만 한다면 농담도 진담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코코아의 유래에 대한 가벼운 장광설을 한마디 던진 후, 소녀의 얼굴 위로 퍼져가는 당혹한 표정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하긴 요즘도 어른들이 코코아를 더 좋아하는 거 같긴 하더라만.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을 때 단 것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거든. 아무래도 애들보다야 어른들이 스트레스 쌓일 일이 많으니까.“
“......“
소녀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얼어붙었다. 그는 한동안 입을 다문 채 가만히 그런 그녀의 얼굴을 주시했다. 만취, 노브라, 맥주, 어울리지 않게 다리를 꼬고 앉은 지금의 태도. 코코아는 싫어요 라고 앙칼지게 소리치던 그 목소리와 무언가가 하나씩 하나씩 틀이 맞아 가는 것을 느낀다.
No.34
2007.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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