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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중학시절 모교 봉양정 앞에서 - 김재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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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50주년 자축연장이다. 반세기 세월은 젊음을 싣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우리는 고희(古稀)를 바라보며 주름진 얼굴에 백발의 관을 쓰고 다시 모였다. 아득한 상주 중학 시절을 추억하며, 그리고 살아온 날들을 회상하며 옛 벗들이 만나 정을 나누는 장(場)은 아쉬움이 가득하다. 긴 과거보다 짧은 미래에 대한 조급증일까. 위 세대는 가고 자손들이 따라온다.
먹고 마시고 노래하며 춤을 추니 시간이 지났다. 이별의 시간이다. 손에 손을 잡고 ‘친구여’와 ‘이별의 노래’를 불렀다. 낙엽처럼 떨어지는 인생, 언제 또 만날까. 눈물을 머금는다.
정들었던 교정을 거닌다. 북천 변 긴 뚝, 등하교길은 새 포장에 묻혔고 단오절 놀이터였던 학교 앞 모래사장은 징검다리를 놓아 놀이 공간으로 변했다.
학교로 통하는 유일한 북통 영빈교는 넓어졌고 사통팔달이 되었다. 우뚝 솟은 천봉산 봉우리는 옛날과 다름없는데 이곳도 수림으로 덮여 있다. 옛 길 교문은 굳게 잠겨 녹슨 자물통만 걸려있고, 휴일 교정엔 송림과 죽림에 바람만 분다.
교정에 들어섰다. 예전 음악실에는 설립자 ‘고 상산 박공인양 옹(故商算朴公寅陽翁)’의 공헌비가 모교의 옛날을 새긴다. 교훈석에는 상주공립농업실업학교에서 현 위치로 옮기며 이름도 상주중학교(1950. 5. 21)로 바뀌었다고 새겨져 있다. 6․25 전쟁 1개월 전이다. 고향을 떠난 내가 중학생이던 때는 전쟁 중의 어려운 시절이었다.
내가 다닐 때 정들고 손때 묻은 건물은 찾을 길이 없다. 새로 지은 모교는 새롭기만 한데 푸른 하늘과 천봉산 우둑 솟은 봉우리, 오늘도 흐르는 북천물은 변함이 없다. 우리 학우들 모이고 헤어짐도 변화무쌍한 인생이다.
본관 4층 건물과 강당은 도서관 등 부속 건물과 잘 어울린다. 정든 교실은 아니지만 지금도 후배들이 열심히 꿈과 희망을 준비하니 대견스럽다.
봄․가을 소풍과 운동회, 유일한 교통수단인 기차 통학과 미루나무 가로수 길을 달리던 자전거 행렬, 화물 자동차를 타고 까만 교복과 모자에 먼지를 쓰며 속리산 법주사로, 경주 불국사로 수학여행 가던 때가 어제 일 같다. 넓은 절간 방에 합숙하던 즐거움, 큰 쇠솥에서 지어낸 밥과 된장국을 맛있게 먹던 생각도 난다. 체육시간, 월요 애국조회, 육상선수로 뛰던 반세기 전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강산도 다섯 번이나 변했다. 이제는 거목이 된 서편 플라타너스가 모교를 내려보고 팔 벌린 히말라야시다 상록수 가지가 너울거리며 반겨준다.
‘사랑으로 가르치고, 존경으로 보답하자’, ‘정직하고 창의적인 사람이 되자’는 낡고 흔한 본관 표어가 새롭다. 연혁에는 59회 졸업(2005. 2. 17) 237명, 총 졸업생 20,744명이라 적혀있다. 나는 50년 전에 9회로 졸업했다.(1955. 4. 1)
고인이 되신 스승님의 가르침과 함께 한 3년은 짧고 멀지만 그 여운으로 지금까지 길게 남았다. 북천면 5월의 아까시 꽃향기가 짙다. ‘그때 그 친구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어이하여 떠나 살게 되었는가’를 흥얼거리며 새로 난 북천교(北天橋)를 거닐었다.
2005년
2007.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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