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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나의 서재, 봉화산방(烽火山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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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소음 천국이다. 시골의 산야나 조용한 교외만 나가면 나는 손나팔을 만들어 최대한 큰소리로 ‘야호’ 하고 외치는 버릇이 있다. 기억나는 웅변원고로 한바탕 사자후를 토하며 고함을 내질러야 속이 후련하다
독서실의 분위기는 깨끗하고 조용하며 절간 같아야 제격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독서실은 교통이 복잡한 대로변에 위치하고 있어서 여러모로 부적합한 곳이 많다.
나는 이면도로의 아늑하고 조용한 주택가에 수년간 방치된 폐 동사무소 1, 2층을 통째 시(市)로부터 임대했다. 우중충한 외벽을 깔끔하게 도색하고 내부를 산듯하게 개조하여 독서실로 꾸몄다. 주위에 독서실이 없어서 먼 곳의 독서실을 이용하던 학생들과 주민들로부터 대환영을 받아가며 몇 년간 독서실을 잘 운영해 그런대로 재미를 보았다.
시로부터 구 동사무소를 불하받을 수 있다는 언질을 받았다. 폐 동사무소 건물을 헐고 신축하여 그야말로 아늑하고 조용한 주택가에 새 독서실을 멋지게 운영해 보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을 때 주민들이 느닷없이 주민 자치 센터 건립을 추진했다. 그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마침 독서실 임대광고를 보고 찾아가 계약했다. 8월 염천에 비지땀을 흘려가며 며칠에 걸쳐 독서실 내부 단장을 끝냈다. 그러나 개업하고 보니 독서실로는 주위환경이 너무나 부적합했다. 도로에서 약간 들어간 시장통이지만 대로변 소음이 독서실의 허술한 창틈으로 그대로 들어왔다. 가까운 철물점에서 들려오는 쇠파이프와 앵글 자르는 소리는 고막을 뜷을 듯했다. 독서실 개설한 것을 몹시 후회했다. 그러나 대청소를 하고 독서실다운 실내장식을 하느라 너무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야 했다.
아직 무더운 9월. 에어컨을 최대한 틀어주고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니 그런대로 학생들이 많이 왔다. 덕분에 9월 한 달은 주위의 소음공해에도 불구하고 운영의 묘를 살려 재미 좀 보았다.
독서실 문을 연 지 한 달 후, 건물 주인은 2층 독서실 사정은 고려치 않고 3층에 합기도 체육관을 들여놓았다. 체육관에서 들려오는 카랑카랑한 구령, 기압 넣는 소리 등이 창을 넘고 바닥을 구르고 울리면서 지척에서 들려온다. 처음에는 속이 상하고 낭패스러워 3층으로 뛰어 올라가 좀 조용히 하라며 고함도 치고 으름장도 놓았다. 그러나 으름장이 잦으면 잦을수록 체육관관장은 예, 예 성의없는 대답만 할 뿐, 행동은 더욱 거칠어갔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생겼다. 체육관이 들어서고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구령과 기합소리를 지척에서 듣다보니 주변에서 들려오던 다른 소리들이 들리지 않는 것이다. 가스통 내리는 소리, 파이프 자르는 소리, 시장통 확성기 소리, 동사무소의 안내 방송 따위가 쥐죽은 듯 숨어버렸다. 우리가 딛고 선 지구가 하루 한 바퀴씩 굉음을 내면서 자전을 하건만, 그 소리는 들리지 않고 독서실 모퉁이에 놓여있는 커피 자판기 소리만 요란하다.
달리 방법이 없다. 합기도 도장의 소음에 대해 나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관용을 베풀기로 했다. 피하지 못할 소음이라면 차라리 즐겨나 보자. 내가 살아가는데 아무리 방해가 되고 어려움을 주는 이웃이라 할지라도 치고받고 당기며 싸울 필요가 있겠는가. 시야를 넓혀 긴 안목으로 인생을 달관하며 사는 것도 마음의 수양이 되고, 또한 적선하는 셈치고 살기로 마음을 굳히고 나니 그렇게 흡족하고 기쁠 수가 없는 것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아주 모르는 남은 재벌이 되어 떵떵거리며 살아도 부러워하거나 개의치 않는데, 왜 하필이면 가장 가까운 친척이 잘되면 샘이 나고 배가 아플까.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있다. 멀리 사는 친척보다 옆집 사는 남이 더 가깝다는 뜻이다. 불이 나서 위급할 때나 도둑이 들어 고함을 쳐도 가장 먼저 달려올 사람은 이웃이기도 하지만, 이웃과 척을 져서는 불편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자신의 공간을 필요 이상 차지하기를 원하고, 이웃의 어려움에 귀 기울이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살면서 식구들과의 대화조차 없이 사는 이들이 좀 많은가.
한번은 화재경보기에 오류가 생겼다. 불이 나지 않았는데 3층 건물 화재 경보가 요란하게 울렸다. 정말 불이 난 줄 알고 모든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살길을 찾아 달아나기 바빴다. 그런데 체육관 관장은 불길에 뛰어들기라도 할 자세로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지난 신정 때 옥상탱크 수도관이 얼어 파열되면서 물이 콸콸 쏟아졌다. 큰 낭패였다. 관리인은 연후로 휴가를 떠났고, 철물점 등 모든 상가가 철시했으니 속수무책이었다. 발만 동동 굴렀다. 어떻게 알았는지 체육관장이 달려와서 파이프를 자르고 이어서 원상대로 회복시켜 물이 정상적으로 흐르도록 해 놓았다. 멀리 여행가서 연휴를 보내고 있는 집주인보다 아래 위층에 사는 이웃과 돈독한 우정을 평소에 쌓아 놓는 것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꼈다.
이젠 일요일이나 공휴일, 합기도 체육관에서 심사를 보느라고 하루 종일 떠들어도 개의치 않는다. 오로지 이웃간의 정리로 묵인하고 인내할 뿐이다. 오히려 상대방이 죄송한 맘에 술과 떡 등 음식을 돌린다. 내가 술을 좋아하는 줄 알고 맥주를 추가로 한 병 더 가져온다. 나는 이것이 ‘뇌물’인 줄 알지만 이웃의 정리로 생각하면서 즐거운 맘으로 병마개를 딴다.
邦久(김상환)
34호
2007.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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