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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연재소설] time to remember (10-1) - 박미정

심홍(深紅)의 안타레스(Antares)

“많이 좋아졌다고 하더군요.”
포가 뜬금없이 말을 이었다. 그들이 있는 이 곳은, 저 멀리 보이는 장미 정원과는 또다른 세상이다. 이 곳은 바깥에 흰 칠을 한 병원 속이다. 정원에 들어가지 않고도 그 안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 냉막하고 무표정한 얼굴의 간호사들이 더러는 차트를 들고, 더러는 카트를 끌고 수없이 곁을 스쳐 지나간다. 이 곳은 현실이다. 꿈 속으로 달아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어쨌든 발을 딛고 살고 있는.
“그래도 이젠, 발작의 횟수가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그는 미소를 짓는 듯한 애매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다니. 그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말씀 듣고 처음엔 꽤나 당황했었습니다만.”
그녀는 아버지의 상을 치르던 중, 상가집에서 혼절을 했었다. 잠시 자리를 비우더니 한참동안이나 돌아오지 않아 찾아나섰더니, 빈소 앞 복도에 죽은 듯이 쓰러져 있었다. 그러다 깨어나더니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어린애처럼 울고 보채고 두려워하며 끝없이 겁먹은 눈망울만 깜박거릴 뿐, 그녀는 죄다 잊어버렸다고 했다.
“추억을 회수했을 때, 기억상실증까지나 걸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차라리 그게 나았을 겁니다.”
포는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저 애의 불행은 너무도 뿌리가 깊으니까요. 그 불행만을 도려낸 기억을 가진다는 건, 저 애에게는 무리였을 겁니다. 나도 처음엔 무척이나 놀라고 당황했습니다만 곧 깨달았죠. 저 애에겐, 그 불행만을 찾아서 지운다는 게 처음부터 무리였던 겁니다.”
“바오밥 나무인가요.”
“그런 셈이죠.”
포는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가만히 눈을 돌려 창가에 붙어선 채 바깥을 내다보는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시선이 한 군데 고정되어 있는 걸로 봐서는, 아마 정원 한 구석에 있는 그녀를 발견한 모양이다.
“후회하지는 않으십니까.”
그는 스쳐지나가듯 물었다.
“저에게 그런 의뢰를 하신 걸 말입니다.”
“그다지.”
그는 짤막하게 답했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요즘의 저 애는 죽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으니까요.”
“......”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일까. 그 짤막한 말 한마디가 묘하게 가슴을 울려오는 구석이 있어 그는 눈을 깜박였다. 유리에 이마를 기댄 채 밖을 바라보는 그의 눈매는 여전히 어딘가 피곤해 보였다. 그러나 그 입가에는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부탁이 있습니다.”
그는 말했다. 시선은 여전히 바깥에 고정한 채로.
“만일에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가끔씩 찾아와 주겠습니까.”
“무슨 뜻입니까?”
“별 일은 아닙니다. 단지.”
그는 피곤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하는 일이라는 게 워낙에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일이라. 게다가.”
그는 딱딱하게 말을 끊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일전에 그 놈의 일로는, 아직도 여러 사람이 나를 찾아다니고 있으니까요. 그 놈들이 설마 나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도 사람이니까.”
그는 언짢은 듯 잠시 입을 다물었다.
“별 거 없습니다. 빨간 장미 한 다발이면 됩니다. 저 애, 장미를 무척 좋아하거든요.”
“......”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확인한 후에야 포는 가볍게 유리창에 쓰러지듯 기댔던 몸을 일으켰다.
“그럼 전 이만.”
언제나 그랬듯 그는 인사에 긴 시간을 들이지 않고 몸을 돌려 층계 쪽으로 사라져갔다.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저기였군. 그 또한 어렵지 않게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벤치에 앉아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다. 입고 있는 하얀 환자복이, 어쩐 일인지 그녀에겐 퍽이나 어울려 보인다. 그리고 잠시 후. 그 견에 사람의 그림자가 끼친다. 그를 발견한 그녀는 서슴없이 옆으로 물러앉아 사람이 앉을 자리를 만들어 준다. 그는 그 곳에 앉는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같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리게 푸른 늦은 봄의 하늘을.
당신이 선택한 것은 그것이군요. 그는 미소지었다. 같이 하늘을 보는 것. 사랑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논하기 전에 당신이 택한 것은 결국 그것이었군요. 그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행복할까. 그것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예전보다는 지금이 낫겠지. 뭐가 행복인지 뭐가 불행인지, 당시엔 모르는 법이다. 지나고 나면 알 수 있는 것. 당신의 선택이 그르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는다. 안타레스의 차가운 결정이 만져진다. 그 속에 뒤엉킨 분노와 슬픔, 절망들은 아직도 그 붉은 결정 속을 요동치며 비명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다. 그는 짐짓 주머니 속에서 안타레스를 꽉 움켜쥐었다. 두 분, 부디 행복하길. 함께 하늘을 보는 그 작은 행복만이라도 두 분께 허락되길. 그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다시는, 두 분을 만날 일이 없기를.

No.33
2007.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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