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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독립운동 인정, 행적ㆍ증언은 소용없나요"

대구 이언식씨 "기록 유실돼 선친 명예 찾을길 막막"

"선친의 독립운동이 이렇게 묻혀서야 되겠습니까? 선친의 명예를 찾아주는 것이 마지막 할 일이라고 봅니다."
대구에 사는 이언식(77)씨는 2월 28일 선친인 이승해(1903~1957) 선생의 독립운동 업적이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소연했다.

이승해 선생은 광주이씨 집성촌인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에서 박곡종가(朴谷宗家) 종손으로 태어났다.

이 선생은 서울 중동고보 재학 중에 1919년 3ㆍ1 만세운동이 벌어지자 항일 학생운동을 주도하다가 일경에 검거돼 퇴학처분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는 낙향한 이후에도 독립 자금을 대고 야학을 설립해 일가 친척과 주민을 가르쳤다는 것.

마을 주민들은 선대로부터 그가 창씨개명에도 응하지 않았고, 집안에서 일본말을 쓰지 못하도록 했을 정도로 철저한 애국정신을 지닌 인물이라고 들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일본 경찰에게 모진 고문을 당해 후유증으로 대인 공포증과 물 공포증이 생겼고 광복 때까지 요시찰인물로 지목돼 일제의 압박을 받다가 54세로 세상을 떴다.

이언식씨는 주위 친척에게서 선친의 독립운동 얘기를 들었으나 선친이 숨진 이후 먹고 살기에 바빠 독립유공자 지정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다 뒤늦게 최근에서야 선친의 항일운동 업적을 찾아 전국을 헤매고 있지만 근거 자료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선친을 검거해 고문한 종로경찰서의 기록은 광복 직후 소멸됐고, 항일운동을 하다 퇴학당했다는 학생부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매원리 종가에 남아 있던 당시의 사진이나 자료는 1950년 한국전쟁 때 모두 소실됐고, 선친의 행적을 전해주던 고향 마을 친척도 대부분 고령으로 사망했다.

게다가 선친이 중동학교에 같이 다니며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안호상(초대 문교부 장관), 변영태(전 외무부 장관), 전진한(초대 사회부 장관) 선생 등과 같이 찍은 사진도 있었으나 잃어버렸다고 한다.

그러다 안호상 전 장관의 아들 경호씨를 통해 안 전 장관과 선친이 학생운동을 주도했고, 선친이 퇴학처분을 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안경호씨를 만나 사실을 확인했고 자필확인서를 받았으며, 칠곡군지에도 선친의 독립운동 기록이 설명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보훈처는 이승해 선생의 독립운동을 입증해 줄 기록물이 없기 때문에 유공자 지정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씨는 "행적이나 유족 증언도 참고해야 하는데 보훈처가 객관적 자료만 요구하니 부당하다"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고인의 항일운동이 밝혀지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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