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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행복과 불행의 엇박자

인생살이 새옹지마라지만 행복과 불행이 오고 가는 것은 자신이 처신하기에 달렸다

  얼마 전의 일이었다. 일본 여행 중에 NHK방송에서 특집으로 방영한 당대의 인기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추모실황을 본 적이 있다. 장장 4시간에 걸친 생방송에다 일찍이 그가 주연했던 영화까지 방영한 대행사였다.

  평소에는 별로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던 것이었지만 이미 타계한지 십 수 년이나 되는 대중가수 한 사람을 두고 이렇듯 거국적인 대행사를 치르는 것을 보니 참으로 야릇한 감회를 금할 수 없었다. 그 여가수는 일본에서 백 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대가수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열 살 안팎의 나이로 데뷔하여 노래는 물론 영화주연까지 휩쓸어 명실 공히 한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연예인이었다. 거기다가 뛰어난 미모까지 겸한 탓에 전 일본인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됨으로써 한때는 이를 시샘했던 한 여인으로부터 염산테러까지 받을 만큼 선망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한 때는 그녀가 한국계 혈통을 가졌다는 풍설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바는 없다고 했다.

  때마침 우리나라 인기가수 몇 사람도 그곳 무대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었기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보게 되었다. 어떤 이의 말로는 그가 생시에 누렸던 인기와 명예는 가히 천황을 능가할 정도였고, 그가 벌어들인 돈을 한 줄로 쌓아 올린다면 후지산(富士山) 꼭대기에 이를 것이라는 익살까지 서슴지 않았다.

  언뜻 느끼기에는 뛰어난 미모에다 최고의 명예, 한없는 부(富)를 누렸으니 한 세상 원 없이 행복한 삶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 가득이 고여 들기도 했다. 하지만, 4시간에 걸친 남녀 아나운서의 해설을 들으면서 좀더 깊이 음미해보니 그 인기와 명예와 부에 비례할 만큼 가혹한 시련도 겪어야 했던, 그야말로 행복의 엇박자를 살다 간 여인임을 알 수 있었다.

  일류배우와의 결혼과 파경, 폭력조직에 연루된 남동생 때문에 납치의 몸이 되어 곤욕을 치렀던 일 등, 한 때는 일본 땅에서 살지 못할 정도로 괄시도 받았다. 그래서 끝내는 미국으로의 도피생활까지 감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늘 곁에 있으면서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주던 어머니가 타계하고 또 연이은 두 동생의 죽음이 겹치는 바람에 갑자기 의지가지없는 외로운 신세가 된 그녀... 이리하여 눈물 속에서 세월을 보내던 그는 마침내 간질성 폐질환에 걸려 51세로 요절(?)해버렸으니, 이보다 더한 비운의 여인도 없을 것 같아 연민의 정을 금할 수가 없었다.

  절정에 이른 명예와 부, 그리고 극한상황에 다다른 불행의 낭떠러지 등... 만약 운명의 신이 있다면 이토록 작위적으로 행, 불행을 안배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복(起伏) 심한 한 인생의 얄궂은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굳이 종교적인 섭리까지 결부시킬 필요는 없지만 이토록 균형 잡힌 듯한 운명적인 드라마는 그녀의 노래 가락만큼이나 심금을 울려주었다. 원체 뚜렷한 획을 긋고 간 거물 가수의 운명이라, 그 삶의 내용도 확연하게 구별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우리의 평범한 인생살이에 대입시켜 놓고 본다면 이러한 인생의 쌍곡선은 도처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때 내 주위에는 ‘네 인생과 내 인생을 한번 바꾸어 살아보았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만인으로부터 부러움을 샀던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내가 현역군인생활을 할 때는 혁명대열에 참여했던 선후배 동료들이 우선 그 대상이었다. 일반 장교들로서는 그토록 어려운 진급이었는데도 그들은 특진에 특진을 거듭하였고, 나중 군복을 벗은 후에는 삼사십 대에 장차관에까지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이토록 그들이 누리는 부와 권력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적잖이 부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내가 부러워했던 그때 그 사람들은, 몇 번인가 정변(政變)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비명횡사(非命橫死)하거나 줄줄이 쇠고랑을 차는 신세가 되었었다. 또한 거듭되는 선거에서의 낙선(落選)과 더불어 가산을 탕진한 후 마침내 화병까지 얻어 대부분 환갑도 되기 전에 타계한 사람도 많았다. 지금 70대 중반을 넘기고도 건강하게 지내는 나의 입장과 비교해보면, 한때나마 부러워했던 그들 대열에 끼어들지 않았던 것이 그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하고 혼자 자위하기도 한다.

  꼭 오래 사는 것만이 좋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에 비추어 보면 역시 인생의 행과 불행은 끝까지 견주어 보아야 한다는 것을 곱씹지 않을 수 없다.

  어디 그 뿐인가.  속칭 수없이 거듭되는 ‘왕자의 난’을 보고 있노라면 부와 권력이 가져다 준 화(禍)에 소름 끼칠 때가 많다. 이미 일상사(日常事)가 되어 버리고 만 부와 명예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형제와 집안싸움이 그 자손에까지 대물림되어 원수가 되는 것을 볼 적에는 참으로 안쓰럽기만 했다. 일본 속담에 ‘형제는 타인의 시작’이라고 하더니 이 땅에서 그 속담의 진수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일까. 어쩌다가 공원이나 놀이터에서 천진난만하게 뛰어 노는 어린 형제자매들을 보아도 예사롭게 보아지질 않는다. 저 순진무구한 아이들도 나중에 커서 처자식을 거느리게 되면 물욕에 사로잡혀 서로 원수가 되어 싸우지 않을까 생각하니 자손들이 번창하는 일까지도 두렵게만 느껴진다. 만약 조상의 혼이 있다면 저렇듯 자신의 분신(分身)들이 벌이는 이전투구(泥田鬪狗)를 어떻게 바라볼까...

  언젠가 방송보도에서 놀라운 뉴스를 접한 일이 있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속칭 인생대역전(人生大逆轉)의 주인공이 된 고액복권 당첨자들을 살펴보니 대부분 불행의 종말을 맞고 말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역정(人生歷程)에서 명예나 부를 이룬 자는 반드시 불행해진다는 그 어떤 등식이라도 성립된다는 말일까?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통찰력을 가지고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행, 불행의 역전드라마는 단순한 운명의 행로라기보다 필연적인 인과응보(因果應報)요 자업자득(自業自得)의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욕망의 노예가 되어 명리추구(名利追求)에만 급급하여 앞으로만 나가다 보니 그만 자신의 인생이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조차 몰랐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저 유명했던 일본 여가수의 불행이나 속칭 왕자의 난 주인공들이 벌이는 이전투구(泥田鬪狗)는 그 모두 단순명료한 원인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성서 구절에는 ‘욕망이 자라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 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이러한 행복의 엇박자를 극복하려면 ‘행복할 때 긴장하고 불행할 때 인내하라’는 선현(先賢)들의 가르침을 미리미리 마음에 새기고 몸에 익혀야 할 것이다. 그 것만이 어떠한 운명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 주리라.

김병권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No.37
2007.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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