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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숨어서 피는 꽃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미덕이 되었지만 어느 시절이나 사람의 무게는 알리지 않아도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 집 정원에는 지난해 여름 거의 고사되었다가 되살아난 수국 한 그루가 있다. 평소 꽃나무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나였지만 막상 죽었던 꽃나무가 다시 살아난 것을 보니 여간 대견스럽지 않았다.

  이 수국은 지난해 여름 삿갓 모양으로 생긴 큰 향나무 밑에서 호된 시련을 치렀다. 나는 꽃나무의 생리를 몰라, 설사 나무그늘에서도 별 탈 없으려니 했는데, 실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여름에 피는 꽃일수록 햇볕을 잘 받아야 하고 통풍도 잘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 때까지는 미처 몰랐었다. 볕과 바람을 쏘이지 못해 질식 상태에 있던 것을 아내의 정성스러운 손길로 옮겨 심어 가까스로 기사회생(起死回生)시킨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는 꽤 싱싱하게 자랐는데도 다른 집의 아름드리 수국보다는 약간 빈약하고 포기도 적어 보였다. 여느 해 같았으면 벌써 탐스러운 꽃송이들이 만발했을 때인데, 요즈음에 와서야 겨우 한 송이만을 외롭게 피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좀 빈약하면 어떠한가. 내가 평소 좋아하던 연보라 빛 꽃술을 벙그리며 연신 함박웃음을 피워주고 있는 것을 보면 절로 쓰다듬어 주고 싶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꽃은 청순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당당하게 드러내지 않고, 수줍은 듯 다소곳이 서 있는 것이 못내 측은하게 느껴졌다. 온갖 무성한 잎들에 가려져 고개를 떨구고 있는 저 수국은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는 좀처럼 눈에 띄기조차 어려웠으니 말이다.

  옆에 있는 옥잠화 채송화 나팔꽃 모란 등이 저마다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반해 혼자 수줍어하고 있는 저 가녀린 모습. 그러나 다른 꽃들과는 일체 미색(美色)을 겨루지 않고, 뭇 잎들 속에서 홀로 피어있는 자태는 사뭇 고고하기까지 하다.

  꽃나무도 감성이 있는 것일까...  지난해 여름 그 호된 홍역과 풍상(風霜)을 겪은 탓인지 저렇듯 자신의 자세를 낮추고 있는 겸허에는 아마도 그 무슨 까닭이 있는 것만 같다. 주변의 꽃들이 화려하면 할수록 내 마음은, 저 무성한 잎들 속에서 고개를 푹 떨구고 있는 한 송이 수국한테 더 기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네 인생살이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오늘날 저마다 난 체하려 드는 과시욕증후군(誇示慾徵候群)을 떠올려 본다. 그 어디서나 자신의 얼굴을 내세우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현대인의 경박한 생리를 생각하다가, 문득 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수국 앞에 와서는 겸허하게 자신을 도야(陶治)하는 은자(隱者)의 교훈을 느끼게 된다.

  정금미옥(精金美玉)도 반드시 뜨거운 열화(熱火) 속에서 단련되듯이 시련과 역경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진정 생의 참 의미를 깨달을 수 없을 것 같다. 때로는 자기 자신이 하나의 들풀이나 돌덩이보다도 약한 것을 안다면 어찌 함부로 고개를 쳐들고 교만을 피울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보면, 잠깐 동안 강한 햇볕만 받아도 금세 시들어 버리는 나약한 꽃들이 어찌 신산인고(辛酸忍苦)를 다 겪은 저 수국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랴 싶은 생각도 든다.

  문득 “늙은 학은 아무리 굶주려도 마음가짐이 너그러우니 어찌 닭이나 오리처럼 먹이를 다투랴” 라고 한 옛 선비들의 경구를 새삼스럽게 되뇌어 본다. 저 채송화나 나팔꽃처럼 너무 예민하고 직설적인 삶보다는 좀 더 은인자중하면서 겸양과 관조의 삶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값지고 귀한 일일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밝은 태양이나 촛불도 실은 스스로 숨어서 몸을 태우고 있는 것이지만 그 덕망의 빛이 너무나 강렬하다 보니 저렇듯 만인의 눈을 부시게 하는 것은 아닐까...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이란 말도 이와 같아, 옛 선비들도 숨어서 도(道)를 닦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지만, 닦으면 닦을수록 그 빛이 이웃으로 번져나가는 데는 스스로도 막을 길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때는 은자(隱者)였던 강태공이나 제갈량 같은 위인들의 입신양명(立身揚名)도 바로 이런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날 자신의 처세에 급급한 나머지 항시 초조와 불안에 쫓기는 사람들의 생활은 한 마디로 말해서 강박관념 속에 사로잡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공사를 막론하고 빈틈없는 일정과 각본에 따라 살아가다 보면 모든 것이 순조롭거나 여유로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일상의 여유를 빼앗긴 현대인들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생활의 여유라는 것은, 반드시 바쁜 일에 쫓긴다고 해서 빼앗기는 것은 아니다. 동중정(動中靜)이란 말이 있듯이 마음의 여유를 지닌 사람은 저 시끄러운 광장의 한가운데서도, 또는 포화(砲火)가 들 끊는 전쟁마당에서도 오히려 한가한 마음을 가꿀 수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마음가짐은 곧 그 사람의 생활태도 여하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다. 한가로운 마음의 경지를 이루지 못한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결국은 자아상실증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진실로 큰 뜻을 품고 큰일을 하려면 사물의 바깥세계에 서서 사물의 내부를 통찰하는 안목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뭇 이파리에 가려진 채 푹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저 한 송이 수국을 통해 나는 새로운 삶의 슬기를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김병권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No.35
2007.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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