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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중국동포를 애틋한 마음으로 보자

나라의 힘이 없어 그곳에 살게 된 동포들을 조금은 따듯하게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긴 역사적 안목으로 보면 우리나라 사람처럼 선량하고 양반스럽고 지사적이고 애국적이고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민족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같다. 고려와 조선이 천년의 역사를 이어가면서 비록 외침속에서 무수한 고난의 시간들을 보내기는 했지만 단 한번도 타민족으로 왕조가 바뀌는 사태에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일제가 그렇게도 끈질기게 창씨개명이나 역사조작을 통해 한민족의 동화정책을 썼지만 결국은 실패한 것도 유사이래로 우리는 단 한번의 예외도 없이 단일민족의 역사로 이어왔다는 긍지와 우리만의 독특하고도 끈질긴 생명력과 자존심 때문이라 할 것이다. 어쩌면 남다른 가족의식이나 민족의식 때문일 것으로도 여겨진다.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의 역사도 2차대전이후의 신생독립국가군에서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빛나는 역사였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 중에서 가장 가슴 아픈 역사가 있다면 그것은 이민의 역사가 아닌가 싶다.

만주이민으로부터 시작해서 하와이와 연해주와 중남미로 이어지는 이민의 역사는 우리들의 아픔의 역사요 눈물의 역사였다. 특히 연해주에서 황무지밖에 없는 척박한 땅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 우리네 동포들의 생활은 더 할 수 없는 피눈물의 역사였다.

이런 역사의 아픔을 동시대적으로 앓고 있었던 시인 이상화(李相和)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이렇게 읊고 있었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그리고 한용운 역시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고 <님의 침묵>에서 노래했다. 모두가 눈물이요 한숨이요 한(恨)이다.

나라를 잃은 일제 치하에서 착취와 수탈에 견디다 못해 떠난 사람들과 어떻게 해서든지 조국을 찾는데 일생을 바치겠다는 각오 하나로 낯선 이국의 찬 서리를 찾아간 사람들을 위한 슬픈 현실을 노래한 것이다.

1945년! 해방은 그들 이민자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족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조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친인척도 있고 고향도 당연히 있을 터였다. 170만에 이르는 연변 조선 이민자들 중에서 70만명 가량이 그 해에 귀국했다. 그리고 오갈 데 없이 터 잡아 살수밖에 없는 이민자들 후예들은 이제 우리들로부터 조선족이나 고려인이 되어 있다.

똑같은 조선의 유민(遺民)으로 미국이나 일본으로 이민간 동포들의 후예들은 재미교포이거나 재일동포이고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해 살고 있는 우리 동포는 고려인이요 중국에 살고 있는 동포는 조선족이라 부르는 연유를 필자는 알지 못한다. 현지에 살면서 현지인으로부터 그렇게 불리움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스스로가 그렇게 자칭하여서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어쩐지 못사는 나라의 동포라고 하여 조금은 차별적인 호칭을 쓰는 것이 아닌가 해서 여간 언짢지가 않다.

얼마 전에는 불법체류 중국동포를 강제 추방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법무부는 불법적으로 체류하는 외국인이 해마다 늘어가자 할 수 없이 중국동포에 대해서도 강경책을 쓸 수밖에 없다는 입장에 있는 모양이다. 우리는 정부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중국동포의 경우에는 최소한 순수 외국인과는 다른 어떤 체류상의 대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중국동포가 되고 싶어 된 사람들이 아니다. 나라가 힘이 없을 때 돌보지 못해 버려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다시 자신의 모국을 찾아와 조금이라도 더 잘살아 보겠다고 하는데 야박한 인심으로 대한다면 그들에게는 얼마나 억울한 일이 될 것이며 우리에게는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 되겠는가!

대한민국의 품안에서 아주 눌러 살고 싶은 사람의 경우와 일정기간만 살고 싶은 사람의 경우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겠지만 이를 정교한 이민정책으로 제도화해 나간다면 고령화 되고 있는 우리나라 또한 이민국인 미국처럼 영원히 젊고 힘 있는 나라를 만드는 데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 것인가를 한번쯤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다.

8월이 되면 해방과 함께 조국 땅을 밟지 못한 숫한 중국동포들을 아련한 마음으로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필자 또한 해방직전에 만주에서 고향 봉화를 거쳐 문경으로 무사히 넘어 올 수 있었던 행운 때문일는지도 모를 일이다.


김중위
전 사상계 편집장/전 환경부장관, 국회의원

49호
2008.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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