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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박근혜와 힐러리

여걸의 침묵이 궁금하다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로서 가장 성공적이고도 존경받았던 영부인을 예로 들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영부인인 일리노어 루스벨트(Anna Eleanor Roosevelt)여사가 아닌가 싶다.

뉴욕 주 상원의원을 거쳐 비록 낙선은 했지만 민주당 부통령후보에까지 오르면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루스벨트가 결혼한 지 18년이나 지난 1921년 40이 채 안되는 한창 나이에 뜻하지 않게 소아미비에 걸려 반신불수가 되었다. 불행도 그런 불행이 없다. 정치를 계속할 수 있을까를 생각할 수조차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의 끈질긴 집념과 그의 부인 일리노어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에 온 정성을 다 한 결과 루스벨트는 휠체어를 탄채 뉴욕주지사를 거쳐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일리노어 여사는 내조의 공을 넘어 그 자신이 빈민구제운동과 인권운동가로 활약하면서 수많은 저서를 남기고 유엔인권위원장으로도 활동하였던 위대한 여걸이었다.

최근의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행보를 보면서 그 또한 일리노어에 못지않은 훌륭한 정치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으로서의 역할을 넘어 스스로가 뉴욕시 상원 의원을 거쳐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나서는 용기와 자신감을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부자(父子) 대통령의 역사를 뒤로 하고 부부대통령의 역사를 만들고자 하는 야심을 들어 내었어도 누구 한사람 거부 반응을 나타낸 적이 없었다.

이런 발상으로 보면 미 국무장관인 힐러리 클린턴과 한나라당의 박근혜 의원은 너무나 많은 부분이 비슷하지 않은가 싶다. 힐러리가 부부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것이나 박근혜 의원이 부녀(父女)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것은 그 용기와 신념에 있어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 똑같은 것은 그런 그들의 용기에 대하여 어느 나라 국민 누구도 낯설다고 생각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미국의 경우나 우리의 경우나 똑같이 독립 이후 단 한번도 여성대통령을 가져 보지 못한 아쉬움이 없지 않다는  공통된 심리적 요인이 한•미 양국민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여성으로서의 매력과 남성을 능가하는 용기와 결단력에 찬사를 보내는 것인가?

보궐선거가 있을 적마다 친박을 표방한 무소속 후보자가 한나라당 공천자를 제치고 당선된 것만을 보아도 박 의원에 대한 대중적 인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또 힐러리 장관은 미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그에게 보내는 지구촌 사람들의 열광을 우리는 눈으로 확인할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힐러리 미 국무장관이 클린턴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로 가슴에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으면서도 늠름하게 처신해 온 것이나 박근혜 의원이 유세도중에 괴한의 칼날에 얼굴이 찢기고도 얼굴 한번 찡그린 적이 없는 담대한 태도를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존경심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두 사람 모두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당황함이 없이 의연하게 대처해 나가는 지도자다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고 느껴진다.

또한 두 사람 모두가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가 당당하게 싸워 패배하고도 흔쾌하게 그 결과에 승복한 것도 비슷하다. 그만큼 그 두 사람의 그릇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우는 다르지만 박근혜 의원 역시 힐러리 장관처럼 퍼스트 레디로서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어쩌면 공통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한쪽은 남편의 내조자로서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한 반면에 다른 한쪽은 어머니의 대역(代役)으로서의 퍼스트 레이디였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 서로가 전혀 같지 않은 것이 한 가지가 있다. 힐러리는 여전히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장관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반해 박근혜의원은 지난 대통령 선거 이후 가끔씩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는 몇 마디 말로 정국을 조용히 리드하고 있을 뿐 계속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도자의 침묵은 훌륭한 리더십일 수도 있다. 그러나 또 때로는 침묵이 저항의 의미로 받아드려 질 때도 있다. 박근혜의원이 대통령특사로 E.U를 향해 떠나는 것을 보고 그의 침묵의 리더십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가 자못 궁금해진다.


김중위
고대 초빙교수/사상계 편집장/초대 환경부장관

62호
2009.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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