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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까치 호랑이

새해에는 살펴보라

금년은 호랑이 해다. 그러나 단군신화는 우리에게 우리 민족은 곰의 후예라고 말해 주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의 실제 생활에서는 곰에 대한 얘기보다는 호랑이에 대한 얘기가 훨씬 많다. 가장 용맹스러워야 할 군부대의 이름에도 맹호부대는 있어도 백곰부대는 없다. 올림픽의 마스코트도 호돌이일 뿐 곰돌이는 아니다. 뭔가 이상하다. 속담을 보아도 호랑이에 대한 것은 수없이 많아도 곰과 관련된 속담은 거의 없다.

왜 그런 것일까? 이유는 알 수 없다. 호랑이를 산신령으로 믿었던 시대도 있었던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 곰은 없고 호랑이는 많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호랑이를 주제로 한 얘기로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연암(燕巖) 박지원의 소설 <호질(虎叱)>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은 나이 40에 저술한 책이 1만5천권이나 되는 선비 북곽(北郭)선생! 그가 어느 날 밤 몰래 찾아 간 과부 집에서 그의 아들들에게 들키는 바람에 줄행랑을 치다가 그만 들판에 있는 거름구덩이에 빠졌다. 천신만고 끝에 그 구덩이에서 빠져 나오는 순간 그 선비 앞에는 호랑이가 떡 버티고 있지 않은가?

공교롭게도 그날 밤 사냥감을 구하기 위해 어슬렁거리던 호랑이와 마주치게 된 것이다. 호랑이는 그 선비를 보자마자 “선비 놈이 몹시 구리구나”라고 말하면서 선비들의 위선(僞善)에 대해 일장 훈시를  해 대는 것이었다. 선비는 혼비백산하여 해가 동천(東天)에 떠오르는지도 모르고 꿇어 엎드려 자신을 변명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른 아침에 밭을 갈러 나온 농부가 이 광경을 보고 묻기를 “선생은 무슨 일로 이렇게 이른 새벽에 들에 나오셔서 경배하고 계십니까“  
“하늘이 높다고들 하니 어찌 감히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있으며 땅이 넓다고 하니 어찌 감히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있겠는가? (吾聞之 謂天盖高 不敢不局 謂地盖厚 不敢不蹐)“
모르기는 하되 연암은 조선선비의 부도덕성을 질타하면서 동시에 이 말을 들려주고 싶어 위선에 넘치는 중국선비를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을 썼는지도 모른다.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수상 요시다(吉田茂)를 만난 자리에서 임진왜란 때 가토(加藤淸正)가 우리 문화재와 함께 호랑이도 다 잡아 갔다고 호통치던 얘기도 자못 재미있는 얘기지만 역시 까치 호랑이 얘기를 빼놓을 수는 없겠다. 민화(民畵)에 관한 얘기다.

민화는 한마디로 말하면 이름 없는 민초들이 그린 그림이다. 과객으로 지방나들이를 하다가 어느 낯선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얻어 먹은 것이 고마워 자기 멋대로 아무렇게나 그린 낙관도 없는 그림이다. 벼슬을 하라고 잉어 그림도 그리고 오래 살라고 고양이 그림도 그려 주었다.

그러나 새해가 되면 복을 많이 받으라는 뜻으로 까치 호랑이 그림을 그려주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음력으로 1월은 인월(寅月) 즉 호랑이 달이고 소나무는 정월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까치 호랑이 그림을 세화(歲畵)라고도 한다.

미술전문가들 설명으로는 중국의 세화에서는 신년희보(新年喜報) 즉“새해를 맞아 기쁜 소식만 있기를 기원합니다”라는 뜻으로 까치 표범을 그리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까치는 희(喜)소식을 알리는 길조(吉鳥•吉兆)요 표범의 표(豹)자는 보(報)자와 발음이 똑같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서의 표범이 왜 우리나라에 건너와서는 호랑이로 바뀌었느냐를 시비 걸 일은 아니다.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할 것은 우리나라의 까치 호랑이 그림은 단순히 신년희보의 뜻으로만 그려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까치를 백성으로 호랑이는 무능하고 부패한 관리로 상징화하여 은유적으로 그려진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까치가 나무 위에 올라 앉아 호랑이를 내려다 보면서 백성의 외침을 알려주면 호랑이는 다소곳이 바보스럽게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모습의 그림이 바로 까치 호랑이 그림이라는 사실도 우리에게는 여간 교훈적이지 않다.
필자는 음력 정월을 맞아 이 글을 통해 까치호랑이 그림을 신년희보라는 뜻으로 한 장 그려 독자 분들께 드리고 또 한 장은 북곽과 같은 위정자(僞政者)들에게 국민의 소리를 겸허하게 받아드리라는 뜻으로 드린다. 낙관도 없이 말이다.


김중위
고대 초빙교수/ 초대 환경부장관

67호
201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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