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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구두보다는 기사가 낫지요

세상이 따분하니 판사들이라도 재미가 있어야 하나?

지난 몇 달 동안은 사형을 시켜도 분이 풀리지 않을 아동 성폭행범에 대해 법원이 겨우 12년의 징역형을 선고하자 이에 분노한 시민들의 목소리로 우리 사회가 온통 들떠 있었다. 범인이 술이 취해서 행한 범죄이기 때문에 형이 가벼울 수밖에 없었다는 판결이 나온 후였다. 그러나 시민들은 죽음보다도 더 숨 가쁜 삶을 살아가야 할 그 피해 아동에 대한 위로와 보상은 무엇으로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절망감으로 법원의 결정에 대한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술 취해서 하는 범죄행위는 어떤 경우라도 정상참작이 된다고 하는 판결을 어떻게 받아 드릴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시민들의 법 감정이었다.

그런데 정기국회가 한창 열리고 있는 최근에 이르러서는 작년 정기국회 때 국회 안에서 벌어진 그 부끄러웠던 폭력행위에 대한 법원의 결정이 공소 기각판결로 매듭을 짓자 이제는 각 언론들이 이에 대한 불만을 대서특필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법원에서는 폭력에 가담한 사람들이 민노당뿐만 아니라 민주당에도 있었는데 왜 민노당 사람들만 처벌받아야 하느냐 하는 것이 기각 판결의 이유였기 때문이다. 언론은 일제히 그것이 어찌 평등권의 문제이며 그렇게 해서야 우리국회가 언제쯤이나 정신을 차리겠느냐고 격렬한 항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엄밀히 말하면 어느 누구도 법원의 판결에 대하여 소송관계자가 아닌 사람들이 가타부타를 말 하거나 당부당(當不當)을 거론하는 것은 사법부의 권위를 위해서나 법관의 독립성을 위해서도 별로 바람직 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판결의 문제가 아니라 법원의 운영과 제도에 관한 문제나 법관의 품행이나 발표한 학술적 이론이나 시민의 법 감정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지 않겠나 싶다.

그 한 예로 법원 내에 조직되어 있다는 “우리법연구회”라는 모임에 대해서도 어느 누구나 그 실체를 묻고 당부당(當不當)을 말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어도 비슷한 성향을 가진 법원 판사들이 모여 연구 활동을 한다고 하면서 단체를 만들었단다. 판사들 역시 대학교수들의 학회와 마찬가지로 시대와 함께 발전해 가는 법사상의 흐름을 연구하는 단체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학회지를 발행하거나 세미나를 하는 것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 단체는 일반적인 학회와 달리 법원 내에서 조차 오랫동안 베일에 싸인 채 정치성향이 짙은 단체로 인식되어 왔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우리법연구회 회장이 말한 것처럼 “판사들은 본질적으로 똑같이 생각할 수 없는 존재이고 똑 같은 생각을 요구해서도 안”되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필자 또한 국회의원 각자가 헌법기관인 것처럼 법관 개개인이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해야 하는 독립된 존재여야 한다는 생각에 다름이 없다.

그러나 학문적인 연구의 차원을 넘어 집단적으로 모여 서로가 서로의 역사의식이나 정치의식을 조율하면서 회원의 눈치를 보아가며 판결을 하도록 유도하는 집단행동이 있다면 이야말로 사법부를 위기의 상항으로 몰고 갈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행동이 아닐까 심히 걱정되는 부분이다. 과거 3차례의 사법파동을 주도한 단체였다는 것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를 눈 여겨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의 판결에 관여한 판사에 대해서는 언론이 지난 1월 공무원의 촛불 집회참여를 독려한 혐의로 기소된 전국 공무원 노조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적이 있고 불법으로 도로점거를 한 시위대에 대한 벌금형까지도 그 선고를 유예한데다가 이번에는 대법원판례에도 반하는 판결을 하였다고 맹렬한 비난을 펼치고 있다. 특히 그 판사가 하필이면 <우리법연구회>의 일원이었다는 사실도 들추어 내면서 말이다.

작년 우리의 국회에서 폭력이 난무 할 즈음에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는 기자회견을 하는 미국의 조지 부시대통령을 향해 웬 구두 한 짝이 “야! 이 개야!”하는 욕설과 함께 날아들었다. 어떤 기자가 던진 것이다. 중동지역에서는 사람을 개라고 욕하면서 신발을 벗어 던지는 것을 최대의 모욕으로 여긴다고 한다. 기사로 말해야할 기자가 구두로 말을 했으니 그의 구두는 구두가 아니라 기사였던 셈이다.

기사대신에 구두로 말한 기자에 비해 구두 대신에 기사로 말하는 우리나라 신문기자는 그래도 이라크의 기자에 비하면 점잖은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중위
고대 초빙교수/ 초대 환경부장관

65호
200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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