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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안 의사의 유묵(遺墨)을 가르치자!

모시지만 말고 본받아야 한다

“폭풍이 야수마냥 울부짖고/~북극의 엄동설한 살을 에는데/그 사나이 지척에서 발포하니/정계의 거물이 피를 쏟았네/~장하다 그 모습, 해와 달 마냥 빛나리/~내가 이 세상을 떠나면/내 무덤 의사(義士)의 무덤과 나란히 있으리/”

중국 근현대사에서 우뚝 솟아 있는 사상가로 유명한 양계초(梁啓超)가 안중근(安重根) 의사(義士)의 의거 소식을 듣고 그를 흠모하여 지은 시다.

대한국인(大韓國人)이었던 안 의사의 의거기념 100주년이 되는 10월 26일을 전후 하여 전국 각지에서 그를 기념하는 여러 행사들이 있어 그도 이제는 외롭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가 그의 형제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아직도 실현되지 않고 있어  필자 비록 그의 후손은 아니나 여간 송구스러운 마음이 아니다.

안 의사는 사형직전에 면회 온 두 동생들에게 이런 유언을 하였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 다오. ~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국민 된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業)을 이루도록 일러라~.”

그는 32살의 짧은 생애를 살면서 자신의 직분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찾기에 여념이 없었고 또 이것이 직분이라고 생각한 이후에는 한시도 게을리 함이 없이 그 직분을 다하는 데에 일생을 바쳤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뜻을 “나라를 위해 몸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라는 휘호로 남겼다.

보물 569-23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글씨는 안 의사가 여순 감옥에 있을 때 경호를 맡았던 일본군 헌병 치바도시치(千葉十七)에게 써준 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의 이 글을 보면 볼수록 이 글은 그 일본 헌병을 넘어 우리에게 보내는 그의 유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군인의 직분을 다하기 위해 교수형을 당하는 것처럼 2천만 동포들도 자신의 직분을 다하라!” 이런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이라 여겨질 뿐이다.

그의 이러한 정신은 그의 유묵(遺墨)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익이 된다 싶으면 의를 생각하고 위태롭다 싶으면 목숨을 바쳐라(견이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見危授命)”라는 보물 제 569-6호로 지정된 이 글 또한 우리의 일상생활의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 그의 유언이 아니겠는가? 그 글의 출처가 어디냐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우리들에게 왜 그런 메시지를 보냈느냐 하는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이(利)만 보면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세상을 그는 한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에 자기 한 몸 살기 위해 뒷걸음질 치는 비겁한 국민이 되지 말라는 경구(警句)다.

안중근 의사 숭모회에서 발간한 자료에 의하면 1910년 2월과 3월에 걸쳐 옥중에서 휘호한 유묵만도 200여폭이 되고 현재 확인된 실물이나 사진 본은 57편이라고 한다. 그중에서 보물로 지정된 것은 26폭(569-1~26)에 이른다. 필자는 이 기록을 보면서 왜 그의 유묵이 보물로만 지정이 되고 살아 있는 교훈으로는 활용되지 않는가 하는 아쉬움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안 의사의 유묵을 유묵으로서가 아니라 국민에 대한 경구로서 살아 있도록 교과서에 실어 후세들에게 가르치자는 얘기다. 영국에서는 넬슨 제독이 마지막 치룬 전투에서 “영국은 각자가 자신의 의무를 다할 것을 기대한다(England expects every man to do his duty)”는 깃발을 자신의 기함(旗艦) 꼭대기에 꽂고 전투를 독려하였던 이 말을 지금까지도 교훈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왜 그렇게 못하고 있나 해서다.

일본은 어느 날 안 의사의 아들을 일본으로 데려가서 이토(伊藤博文)의 아들과 대면을 시킨 적이 있었다. 그때 이토의 아들은 그가 소장하고 있던 안 의사의 여순 감옥생활과 처형장면을 담은 사진 일체를 안 의사의 아들에게 돌려주었다. 일본은 왜 그렇게 하도록 했을까? 그 사진들은 우리 민족의 자산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의 유언인 유묵들을 민족자산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기념관에 가두어 두고만 있는가? 자신의 본분은 잊은 채 이(利)만 앞세워 의(義)를 소홀히 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안 의사가 남긴 유묵보다 더 소중한 교육 자료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김중위
고대 초빙교수/ 초대 환경부장관

64호
200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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